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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을 읽다.
사람은 씨팔 ......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거야
책의 종반을 항해 눈길을 옮길 때쯤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다소 격한 표현이지만 가슴에 박혔다. 삶에 치여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가슴을 후비는 표현이 있을까?
과거에 집착하고, 오지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사는 우리들에게 이 대목은 많은 의미를 남긴다.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이에게 미래는 없으며, 과거는 힘겹게 지낸 오늘의 흔적일 뿐이다.
개밥바라기별은 황석영의 자전적 소설이다. 전작 "바리데기"에 심취에 신간이 나와 바로 질렀다. 바리데기에서의 느낌을 아직 떨쳐버리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을 들었다.
2008/08/22 - [독서 흔적] - 바리데기
어릴때부터 난 소심한 아이였다. 생각은 많지만 부모님이 바라는 모습에서 어긋날까 늘 걱정하고 스스로 갓길로 가지 않기위해 고민했었다. 그런 시기에 사춘기라는 것이 왔고, 내가 누군지 왜 사는지에 대해서 풋내기 친구와 시덥잖은 이야기로 밤하늘을 지우곤 했다.
돌이켜 보건데, 잠깐이었던 그 시절에 고민을 더 하지 못하고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을 가끔 후회 하곤 한다. 그 이후 정해진 각본처럼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특례에 이르기까지 별 고민없이 흘러왔다. 그렇게 가야할 곳이 있고, 넘어야 할 산이 있을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 시간들을 견디면서 왔다.
그러나 특례를 마치자 공허한 감정이 스믈스믈 기어 나왔다. 가야할 곳 넘어야 할 산이 없었다.
거기서 부터는 이제 내 스스로 길을 만들고 산을 지목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았다. 내가 진정 원하는게 뭔지 몰랐으며, 지난 시간들의 노력들은 나를 위한 행동이 아닌 것만 같았다. 홀로 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나 스스로를 깨닫지도, 넘어서지도 못했다.
지금 역시나 그 위치에서 한발짝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 시절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좀 달라졌을까? 물음에 답은 생각나지 않지만, 분명 그 시절 나는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었을 것 같다. 나를 위한 여행에 좀더 시간을 할애 했을지 모른다. 이런 때늦은 열병따윈 지금쯤 피식거리며 지낼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사창가를 가거나 어두운 대폿집을 드나들며 퇴폐의 흉내도 냈지만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지도자가 되는 길인가도 잘 알았다. 절대로 자기 자신을 정말 방기하지는 않았다. 인호나 나처럼 온몸을 던지는 일은 곁에서 지켜보기에는 신나는 모험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끝내는 신중한 충고를 하며 한 걸음 비켜섰다.
인호나 준처럼 온몸을 던지는 일 따윈 하진 않았다. 내 문제인데도 남들이 해결해 줄꺼라는 철없는 생각으로 방기했다. 내 인생에서 한걸음 비켜섰다. 이는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내가 영길이 너나 중길이를 왜 첨부터 어린애 취급했는지 알아? 아주 좋은 것들은 숨기거나 슬쩍 거리를 둬야 하는 거야. 너희는 언제나 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구. 별은 보지 않구 별이라구 글씨만 쓰구.
자아에 대한 처절한 고민없이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별을 보지 않고 별이라는 글씨는 쓰는 영길이나 중길이와 다름없다.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영길이나 중길이 아닐까 한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지나도, 황석영작가가 느꼈던 그 자아의 고민은 변함이 없다. 그 때나 지금이나 자신을 찾는 문제는 쉽게 풀리지도 않을 뿐더러 남이 해결해 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지낸 이들의 충고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상상의 산물이 아닌 경험에서 나오는 글들은 생동감이 배가 된다. 황석영 자신의 분신인 준, 그런 의미에서 그 캐릭터는 생동감이 넘친다. 그의 행동과 나의 행동이 오버랩되며, 그의 말에서 나의 과거와 현실은 교차한다.
한번에 다 읽지는 못했지만 오늘 오후를 온전히 쏟아서 읽었다. 내가 주인공인양 생각하며 때로는 비켜서서 나를 지켜보기도 했으며, 지나온 시간을 다시금 곱씹었다.
물론 지금도 내안에 나를 찾는 과정이기에 책을 덮으면서도 한구석 맘은 무거웠다. 즐기며 오늘을 살기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 답을 빨리 찾아야한다.
20살 격정의 준을 거쳐 대한민국 문단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저자 처럼 풋내기 어른의 껍질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오늘도 계속된다. 죽기전 한 세상 잘 살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나를 찾는 여행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