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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예찬.군주론.방법서설.잠언과 성찰 ㅣ 세계의 사상 7
에라스무스 외 지음 / 을유문화사 / 1995년 5월
평점 :
나는 누구인가? 내가 느끼는 이 공간은 꿈인가? 실재인가?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궁금해하던 내 물음들에 대한 나의 소박한 결론이다. 그래 모르겠다. 뭐가 뭔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난 누군지 모르겠다. 이런 질문들에 나보다 나은 사람들의 답을 듣고 싶어 조그마한 여행을 떠난다. '평화로운 전사'를 시작으로, '뇌를 단련하다'를 거쳐, 폴발레리, 데카르트까지 와버렸다. 조그마한 시작이 이제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의 생각과 고민들로 넘쳐 버렸고, 여전의 그들의 말은 내가 담기에 너무나 컸다. 그 크기에 맞추기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 그릇은 내 욕심에 미치지 못한다.
데카르트에 까지 이어진 나의 관심은 방법서설의 원문을 보는 곳에 도달했다. 필체가 유하고 전개가 소극적이지만 그 내용은 여느 철학서 못지 않게 심오하다. 물론 이 번역본의 난해함으로 인해 한국어를 이해하기가 이리 힘든지 다시금 깨달았지만, 잘 번역된 원문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그의 '코기토'에 의해 자신과, 신, 정신의 존재를 밝히고, 끝까지 의심할 수 없는 명증적인 것에 이르기 까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한 그의 방법적 서설에 감탄한다. 또한 심신 이원론을 통한 정신과 물체의 분리, 신과 과학의 분리를 통해 근대 과학의 기초를 설립한 업적 또한 대단한 것이며, 데카르트의 연역법 또한 간과 할 수 없는 그의 업적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내가 태초에 궁금했던 것 보다 데카르트의 인간적인 면에 좀더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스콜라 철학을 중시하던 시대 상황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지 못하던 소극적인, 용기가 없는 철학자 데카르트. 적극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분출하지 않고 자기에로 한없이 질문을 던진 사나이. 그 성찰의 결과가 '방법서설'이다. 그 시대를 배척할 수 없어서 인지 아니면 그의 생각이 신을 넘어서지 못해서인지 그는 신을 거부하진 않는다. 타협인지, 한계인지 불분명하다.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소심한 철학자의 자기 돌파구를 찾는 그 과정이 가장 인상적이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만 내입을 떠난 질문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6부까지 이어진 그의 생각을 미쳐 다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험난한 고민의 흔적과 두려움에 같이 휘둘렸다. 나는 사랑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은 종교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데카르트를 보아도 대답은 시원치 않다.
글을 읽는 내내 글자가 눈에서 튕겨나가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머리가 굳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고, 집중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법 서설을 읽고 난 후 솔직히 조금은 시원했다. 이해를 했든 못했든, 버거운 책 하나를 다 읽었다는 자기 만족에 그 감정이 생겼나 보다. 이제 고전에 집중하기로 한 내 이야기의 시작이지만, 한 계단을 지났고, 그 계단이 무한루프를 돌지라도 계속하고 싶다. 보다 잘 살기 위해서 일까? 어제의 내가 아니길 바래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