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책 이벤트]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알라딘 이벤트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투둑..툭툭…쏴… 20년 전 대구. 한 한옥집 대청에 앉아 쏟아지는 빗방울과 세차게 때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고 있는 정원 안 목련과 산사과 나무를 보고 있다. 그때의 그 기억은 나에게 평온함을 준다. 한여름의 나른함에 더위를 씻어주는 소나기와 함께. 비소리, 비 맞는 나뭇잎 소리. 그 기억들 때문인지 요즘 난 뭔가를 집중해서 일하고 싶을 때 Natural Effects (스트레스 해소와 명상을 위한 자연의 소리) 음반을 듣는다. 그 중에 두 번째 시디에 있는 울창한 숲속의 비오는 소리를 가장 즐겨 듣는다.


이 기억과 함께 겨울 비 내리는 한옥. 따뜻한 아랫목에 담요 뒤집어 쓰고, 바깥 유리문만 닫고 바라 보는 정원 또한 나에겐 잊을 수 없는 평온함이다. 나에게 비 소리와 정원은 이런 평온함의 심리적 촉매제이다.

이 책 '정원 일의 즐거움'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다. 헤세는 평생을 정원에 수목을 돌보면서 살아왔다. 특히나 노년기에는 집필 외에는 모든 시간을 정원에서 보냈다. 헤세에게 정원은 인생의 스승이고 사색의 길잡이였다. 책 중간 중간에 그의 사색의 타래들이 걸려 있다.



"즐거운 봄을 기대하며 내 작은 정원에도 콩, 샐러드, 레세다, 겨자따위의 씨앗을 뿌린다. 앞서 죽어간 식물의 잔해를 그 위에 거름으로 부어주면서 돌아간 것을 추억하고 다가올 식물을 미리 생각해본다. …(중략)… 아주 이따금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어느 한 순간, 땅 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이 이 같은 사물의 순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사물의 불멸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번뿐인 인생인 양 자기만의 것, 별나고 특별한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의기자 기이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아름답고 강인한 나무보다 더 성스럽고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

"나무들은 성스럽다. 나무에 귀 기울이고 나무와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진실을 체험한다. 나무들은 무슨 교훈을 설교한다거나 처방을 내린다거나 하지 않는다. 나무는 개별적인 일에는 무관심하지만 삶의 근원적인 법칙을 알려준다."
데미안 이후 읽은 첫 헤세의 작품이다. 생각이 많은 요즘 읽어서 그런지 읽는 동안 집중이 잘 안되서 약간은 힘들게 읽었다. 아마 학생 때 읽었다면 좀더 깊이 빠져 들 수 있지 않았을까? 읽으면서 법정 스님의 수상록과, 야생초 편지에서 느꼈던 느낌을 받았다. 수상록에서 오는 맑고 단아함과 야생초 편지에서 느낀 섬세함 그 둘을 합친 책이다.

어릴 적 법정스님의 수필이 너무도 좋았다. 스님의 책은 대부분 읽었다. 그 맑음을 뜻하지 않게 헤세의 책에서 느끼게 되다니. 우연히도 이 책 뒤 표지에 법정스님의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 감명을 준 세 권의 책을 추천하라면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과 <걷기 예찬>, <할아버지의 기도>를 꼽을 것이다" - 법정 스님 -
예전의 기억을 되돌려 나름 순수했던 시절을 책과 함께 나누었지만 이런 류의 책을 좋아 하지 않을 이 또한 많을 듯하다. 나 역시 쉽게 읽어 내려간 책은 아니니 말이다. 몇 번이고 다른 생각에 책의 내용을 잊어 버리는 게 허다했다. 또한 평상시 정원에 그리고 수목에 대해 그리 관심이 많지 않았던 이로서 익숙하지 않은 나무들 또한 많이 나온다. 그러니 헤세와 함께 그 감정을 나누기엔 힘들다. 그 만큼 볼 수 없고, 그 만큼 들을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저나 나만의 쉼터를 가꿀 수 있는 여유를 언제나 가질 수 있으려나. 그게 아파트 베란다가 되든 정원이 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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