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우리문고 11
박정애 지음 / 우리교육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이야기에 몇 개 축이 있겠지만, 크게는 여자 이야기다. 정신대 할머니, 그 할머니가 기르던 손녀딸 수경과 수향, 할머니가 며느리로 맞고 싶었지만 강간을 당한 남자에게 시집을 갈 수밖에 없던 목순, 이혼한 남자의 아이를 가져 지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혼자서 아이를 낳기로 한 이웃집 아줌마까지.
또 하나의 축은 세월이라고 할까 역사라고 할까. 우리내 근대사-그 가운데에서도 전쟁 이야기다. 전쟁으로 힘없는 이들의 삶의 결이 얼마나 많이 부서지고 망가졌는지를 작가는 생생하게 내보인다. 뒷표지에 적힌 심윤경의 말처럼, 찰떡같이 쫀득한 박정애의 문체에 이야기는 든든하게 힘을 받아 펄떡이며 살아 있다. 대단한 필력이다. 책을 손에 잡자마자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 눈물을 꾹꾹 참아가며 열심히 읽었다.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여자 얘기를 하는 여자 소설가들의 소설에서 감동받는 어떤 게 있다면, 아픔을 속으로 끌어안으면서 받아들이고 삭여서, 그걸 자양분으로 성장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말로 하니 재미없지만, 대단한 감동을 준다. 가시뭉치를 안으로 끌어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책이다. 많이들 읽었으면 좋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이 책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다), 섣부른 바람일지 모르지만 신나고 재밌는 여자 이야기를 보고 싶다. 늘 슬프고 아프고 힘겨운 얘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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