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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랑전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6월
평점 :
『삼체』의 번역가로 잘 알려진 켄 리우의 두 번째 SF단편집이다.
켄 리우는 이력이 매우 특이하다. 1976년 중국에서 태어나 11살 때 미국으로 이민, 하버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한 후 하버드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7년간 일했다. 그래서인지 동양의 소재들을 이야기에 잘 버무려 사용하는 듯 하다.
이번 소설집에는 1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발표된 작품들이다. 아무래도 스마트폰, SNS, 암호화폐, 인공지능, 테라포밍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여서 일까? 기존 소설집에서보다 더욱 트롤링, 타인의 고통, 식민지에 대한 고민이 깊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우선 전시되는 고통과 트롤링에 대한 소설로 「추모와 기도」, 「비잔티움 엠퍼시움」이 있다. 「추모와 기도」에서는 총기사고로 딸을 잃은 어머니가 추도 영상을 공유하지만, 트롤링으로 딸의 죽음은 조롱거리가 되어 고통받는 이야기다. 「비잔티움 엠퍼시움」 은 제3세계의 고통을 1인칭으로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공유, 암호화폐를 통해 직접 후원하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직접적인 고통의 경험 역시 또다른 콘텐츠로 소모되고 마는 씁슬한 현실을 읽어낼 수 있다.
인류는 결국 지구를 망가뜨리고 다른 행성으로 또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일곱 번의 생일」에서는 마인드 업로딩을 통한 시뮬레이션 세계로, 「메시지」에서는 여러 행성으로, 「혼령이 돌아오는 날」에서는 테라포밍에 성공한 행성에 살던 멸망한 외계인과의 혼혈 인간을 만들기도 하고, 「은둔자」에서는 화성을 테라포밍 하는 시기에 다시 예전 지구로 돌아온 특이한 은둔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인류는 끊임없이 우주로 뻗어 나가지만 마치 식민지처럼 그 행성을 착취하기도,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지구를 찾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동양적인 소재를 잘 사용한 소설도 있다.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여성 자객 이야기인 「은랑전」, 『삼국지』 도웡 결의를 새롭게 쓴 「회색 토끼, 진홍 암말, 칠흙 표범」, 민들레왕조 연대기인 「폭풍너머 추격전」 등은 익숙한 듯 낯선 환상 세계이다.
우리가 SF를 읽는 이유는 현재를 비틀어 낯설게 보고, 이를 통해 현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일 것이다. 켄 리우가 보여주는 세상은 차가운 기계의 세상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 남아있는 인간적인 미래다. 마치 「메시지」 에서 외계인들의 문명을 연구하며 그들과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고, 미래에 멸망한 자신들의 문명을 방문한 누군가를 위해 경고 표시를 한 외계인들처럼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