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어머니가 별안간 눈을 크게 떴다. 처음엔 눈이 부신 듯이 가늘게그러다가 점점 크게 열리며 내 눈과 마주쳤다.
"엄마, 나예요. 경아."
나는 벅찬 탄성을 질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의 눈에 부연안개가 걷히고 어떤 감정이 담겼다. 나는 내 시선을 조금이라도 어머니로부터 비끼면 모처럼 돌아온 어머니의 영혼이 다시 훌쩍 떠나버릴 것 같아 열심히 어머니의 눈에 눈을 맞추었다.
tap그러나 빛나던 어머니의 눈이 점점 귀찮다는 듯이 게슴츠레 감기며 나에게 잡혔던 손을 슬그머니 빼내고 부시시 돌아눕더니 휴 하고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남겨놓으셨노."
나는 비실비실 일어섰다. 간신히 안방 미닫이를 열고 대청으로나왔다. 시야가 부옇게 흐려 보였다. 나는 그 부연 것을 헤치려고자꾸만 눈을 꿈벅이며 북창문을 열었다. 우수수하고 스산한 바람이치마폭으로 펄렁 안겨왔다. 나는 맥없이 몸을 떨었다. 바람이 다시뒷마당을 골고루 휩쓸었다. 솨아 하고 정원수들이 상쾌하고도 춥디추운 소리를 냈다. 나는 비로소 자지러지게 노오란 은행나무를 보았다. 화려한 광경이었다.
그는 얼마나 풍부한 의상을 걸쳤기에 저렇게 노오란 빛들을 마구쏟아놓고도 저렇게 변함없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 그것은 꽃보

다도 훨씬 찬란했다.
나는 휘청휘청 뒷마당으로 내려섰다. 나무 밑은 노오란 융단을깐 것처럼 알맞게 푹신했다. 나는 그 화려한 융단 위에 몸을 던졌다. ‘어쩌면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 원성과도 같은, 주문과도 같은 끔찍한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만 그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또 흔들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몸을 뒹굴렸다. 우수수 금빛 조각들이 때로는 한 잎 두잎 날고, 때로는 한꺼번에 쏟아져왔다.
나는 돌연 뒹굴기를 멈추고 세차게 흐느꼈다. 오열은 한번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노오란 잎들이 땅으로 쏟아지듯이 나는 그렇게 울었다. 노오란 잎이 하나라도 나무에 있는 한 낙엽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내 속에 축적된 눈물만큼만 울면 되는 것이다.
조금치의 슬픔도 동반되지 않은 그냥 순수한 울음일 따름인 울음끝에 나는 부드러운 융단 위에서 혼곤한 숙면에 빠졌다.
그 후부터 나는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기보다는 은행나무 밑에서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쏟아져도 다할 날이 없을 것같이 풍성하던 황금빛 의상도점점 희박해갔다. 나는 두터운 융단 위에 누워, 성깃한 노란 잎 사이로 푸른 하늘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시간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다는 것이 조금도 거리낌없어 좋았다.
그날 이후 나는 어머니를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있었다. 어머니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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