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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휴..이 길다란 제목이 바로 책 제목이자 단편소설의 제목이다.
레이몬드 카버라는 작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는데(누군들 들어본 이름이랴..무식한 독자다 난),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책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해설을 보고 어떤 책인지 궁금해졌다. 난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기에 이 책이 그와 비슷한 성향일 경우 실망이 클까 두려웠지만, 아무래도 칭찬을 받는 작가란 칭찬하는 작가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리란 믿음에 책을 사게 된 것이다.
카버는 단편소설집이 3권 정도 있다는데-일본에 3권이라는 건지, 미국에서 그렇게 출간했단건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책은 비교적 후기작품에 비중을 두고 3권의 여러 작품을 추려서 모아놓은 것이라 한다.
처음 글을 읽을 때에는 뭐랄까.....음..."아니 이게 끝이야?" 이런 느낌이었다. 성큼성큼 걸어와선 확 치고 빠지는..그런 느낌..
단편을 많이 읽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소설을 많이 접해보질 않아서일 수도 있겠지만...참 낯설었다.
첨엔 생경했지만, 읽을 수록 색다른 맛이 났다...스토리가 빡빡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읽을 맛이 났다...이런게 글맛인가?
하지만, 번역본인 만큼 100% 카버의 글맛은 아니리라..다만 작가가 정말 쉽고 짧은 문장만을 썼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맘에 드네.
그런데 내용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다.
카버는 온유하고 인간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었다-과거형이다..그는 단명했다고 한다-고 소개되었지만, 그는 늘 소통에 대해 고민한 외로운 이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
신기하게도 이 책에 나온 작품들의 등장인물은 거의가 "부부"이다. 이혼했거나, 별거중이거나, 아이가 있거나 아이 없이 함께 사는 부부, 부부, 부부들.
그리고 신기하게도 작품마다 거의 모든 인물들이 서로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이것이 내 맘을 많이 답답하게 한 것 같다. 그들은 전화기를 앞에 두고 사랑했던 이, 전에 알던 이, 혹은 누군지 모를 이와 가느다란 전화선을 통해 소통하려 애쓴다.
하루키는 카버의 글에서 소통의 희망을 발견했을지 모르지만, 나에겐...안쓰러웠고 외로움이 느껴졌다...
어쨌든.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신기한 제목의 글이다. 영어 원제는 "Small, good thing" 이래나..
주문해 놓은 생일 케잌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 아이와 그 부모에 대한 이야기다. 교통사고의 순간도, 아이의 혼수상태도, 숨이 끊어지는 순간도 이 작품속에서는 다이나믹하다기 보단 고요하기만 하다...호흡을 크게 내뱉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소설을 잘 따라오게끔 하는 작가가 참 맘에 든다.
그리고 계속해서 걸려오는 괴전화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제과점을 찾아가는 부부..그리고 새벽 빵공장에서의 따뜻한 빵대접과 대화로 마무리되는...그래..작은 것이지만 큰 도움이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상처받은 부부의 손에 느껴졌을 작은 빵의 온기가 너무나 뿌듯하고 고맙다..
카버는 영화 숏컷의 원작자라고들 한다. 난 숏컷을 보지 못했지만, 책을 보고 나니 영화가 궁금해진다.
책처럼 멋진 치고 빠지기에 간결한 호흡이 살아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