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열에 아홉은 재미있었다는 주변의 말에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지라, 마음 한켠엔 야릇한 반감같은 것이 미리 출동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흠..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자신을 나누어 상처와 조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익혔다는 작가의 말이 청승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자신의 냉소적인 자세를 과시한다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자신의 불리한 조건을 계속해서 푸념함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화자가 비웃듯 이야기하는 주변인들의 다양한 생활사와 그들의 같잖은 행동들은 너무도 내 자신과 내 주위의 이야기와 닮아있어 슬며시 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이 이런 사람들과 저런 행동들을 보았다면 대놓고 구역질을 하여 자신의 혐오감을 드러내고 마음껏 우울해 하였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서는 그런 반응이 더 반가울 뿐이다. 화자는 그마저도 하지 않고 내부에 꽁꽁 숨어있으면서 그들을 관찰한다...흠...

하지만 은작가의 이야기 솜씨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에는 그녀가 하려는 이야기에 어느정도 공감하게 되었고 책 속의 화자 또한 하나의 약한 인간일 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었으니까. 이 성장소설은 열두살 짜리 여자애만의 것은 아닌듯 싶다. 마음에 많이 와닿는 이모라는 캐릭터 또한 책 한 권이 끝날 동안 많은 성장을 함으로써 또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이르든 조금 늦든 사람들이 세상의 가식과 환멸을 알아가는 것은 언제고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나 자신 또한 누가 보더라도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일탈만을 꿈꾸고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으로 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한 발짝 떨어져 연기하는 나를 내세울 때가 많음을 알기에 이 소설이 더욱 측은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자신의 삶에 냉소적인 사람이 삶에 더 충실하며, 자신의 삶에 집착할 수록 불평과 불만으로만 삶을 허비한다'는 대목에서 나는 의아해진다. 나자신의 삶이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차 있고, 항상 어디론가 도망부터 치려는 것은 내가 내 삶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인걸까? 삶이란 본디 의미가 없고 허망한 것이란 걸 알고 있다고 늘 생각했는데...그게 아니었단 말일까?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불교만화 시리즈-돼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에서 부처의 말씀중에 '나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되면 그 귀착지는 바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나 자신과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귀중한 비밀을 알게 된 후에 과연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더 도망가고 싶지 않고? 라는 의문을 가졌던 나는 비슷한(?) 이야기에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한다.

삶에 충실한 건 잠시 쉬고만 싶은 나에게 또 하나의 생각거리를 남겨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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