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Y라고 불리는 유전자는 사람의 절반정도가 지니고 있다.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살인자, 또는 살인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으며,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거나 사고로 사망하거나 또는 노년기에 온갖 질병에 걸려서 죽을 위험이 높다. 하지만 SRY가 나쁜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다. 진화적 적합도의 측면에서, SRY를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차이는 없다. 비록 자손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SRY를 소유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많지만, 역사적으로 후손을 정말 많이 남긴 사람들은 모두 SRY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진화적으로 최고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다.

SRY유전자는 남성의 Y염색체에 존재하는 성을 결정하는 유전자다. SRY유전자는 분자 수준의 복잡한 연쇄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배아를 수컷으로 발생시키는 핵심적인 유전적 지침을 암호화하고 있다. 이러한 지침이 없다면 우리의 신체는 초기 설정을 따라서 암컷으로 발생하게 된다. 오로지 남성들만이 SRY유전자의 복제본들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SRY유전자의 영향을 정말 결정론적이다. 왜냐하면 SRY를 지닌 배아는 모두 생물학적인 수컷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RY 유전자가 수컷 신체를 형성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SRY는 또 다른 유전자들에게 신체를 남성으로 만들 준비를 하라는 신호만 보낼 뿐이다. 만약 SRY로부터 신호가 없다면, 몸은 여성이 될 준비를 한다. 각 유전자들이 어떻게 맡은 바를 수행할 것인지의 여부는 또 다른 수많은 신호의 세기와 타이밍에 달려 있다. 각각의 신호를 주고 받는 데 연관된 유전자가 있으며, 이 유전자의 발현과 그 신호의 효과는 유전자가 존재하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SRY 유전자는 남성성을 결정하지만 그 마지막 결과물은 정말 다양하다. 근육 크기, 체모의 양, 목소리 굵기, 공격성 등 남성과 관련된 모든 특징들이 남성들 간에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나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남성들처럼 여성들도 같은 형질이 개인마다 다양하게 발현되며, 그 형질의 분포 범위는 남성의 것과 다르지만 겹치는 부분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SRY처럼, 남성다움이란 단지 큰 키와 두꺼운 근육과 많은 체모를 갖출 가능성이 증가하는 것이며, 한편으론 살인을 저지를 위험성도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된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살인마가 되는 것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여자가 된다고 해서 살인마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성다움 또는 여성다움도 운명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바비 인형처럼 가장 여성스러운 성향부터 슈퍼맨처럼 가장 남성스러운 성향까지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기는 남성다운 또는 여성다운 형질을 모두 가질 수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만 사람들은 그들의 생물학적 성 정체성을 따라 매우 전형적인 남성 혹은 여성의 신체와 행동을 보인다.

진화생물학자는 복잡한 남녀의 차이 그리고 성 정체성의 복잡한 정의를 다루기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연구가 성차별, 소외, 탄압 등의 현상에 조금이라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연구를 꺼린다. 하지만 성을 결정하는 발생 단계의 단순한 스위치 하나는 분명 우리의 삶에 지속적이고 매우 예측 가능한 영향을 준다. 나는 이 책에서 생물학적인 성차가 어떻게 발생하고, 그 생물학적인 차이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며, 문화, 경제 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어떻게 남성-여성 간의 권력 관계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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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는 마치 매우 중요한 유전자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것처럼 대대적으로 광고한다. 심장병 유전자, 비만 유전자, 게이 유전자, 바람둥이 유전자처럼 말이다. 이러한 유전자는 단지 심장병에 걸리고, 비만이 되고, 게이가 되고, 배우자를 속일 확률을 정말 작은 확률로, 그것도 어떤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 게놈의 몇만 개의 유전자는 서로 다른 형질에 영향을 주며, 결국 우리 삶의 여러 측면에도 영향을 준다. 주어진 형질은 우리 게놈 전체의 유전자들이 수많은 상호작용을 거친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무슨 무슨` 유전자 이야기에 빠져 있고, 이런 현상 때문에 유전자와 운명은 구태의연하고 그릇된 방향으로 연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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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윤리가 하는 일은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서,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상호 작용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를 더 잘 정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신경과학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뇌는 어떤 믿음을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형성하도록 되어 있다. 또 우리는 동료, 연장자, 사회, 종교로부터 배운 것들과 같은 문화적 영향이나 환경을 토대로 믿음을 형성한다. 그러나 예컨대 여성할례 같은 믿음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잘못된 것`으로 판단한다. 이 관습을 근절시키는 것이 서구 문명의 대의명분으로 여겨져 왔다. 교육받은 이들은 그것에 어떤 정당성도 부여할 수 없으므로 아프리카에 가서 그것에 반대하여 싸웠다. 내가 뇌과학을 다루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떤 믿음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이해가 되었다 하더라도, 과학이 우리에게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해 꽤 많은 것을 알려주는 지금 그러한 믿음을 기꺼이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좌뇌의 어떤 시스템에서 우리 자신의 행동, 느낌, 그리고 행위의 의미와 다른 이들이 받는 느낌의 의미나 패턴을 이해한다는 것을 안다. 현재의 실재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 내는 뇌 시스템의 움직임의 특성은 그것이 얻는 정보의 질과 정확성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세계의 본성에 대한 지식이 더 축적되고, 더 완전해지고, 더 좋아질수록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나 믿음 또한 더 축적되고, 더 완전해지고, 더 좋아질 것이다.

가장 변화시키기 어려운 믿음은 종교적 믿음이다. 깊게 뿌리박힌 종교적 믿음을 포기하는 것은 어떤 도덕적 지도 원리나 의미도 없는 세계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끔찍하다. 그래도 현대 신경과학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우리에게 확실시켜 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적 믿음들은, 인간의 고유한 도덕적 추론 능력으로 실재를 설명하려 하는 과정에서 역사의 다양한 시기들에 생겨난 이야기들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이 가장 그럴싸하다. 요약하면,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보편적인 생물학적 반응들, 즉 우리 뇌 안에 각인된 윤리학이 있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바람은 우리가 곧 그런 윤리를 드러내고, 확인하고 그것에 의해 더 완전하게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는 대략 그것들에 의존해 살지만, 만약 우리가 더 의식적으로 그런 윤리를 이용하여 산다면 많은 고통이나 전쟁, 그리고 갈등이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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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토론과 경험을 통해 능히 시정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으며, 경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토론이 필요하다. 잘못된 의견과 행동은 점차로 사실과 논증 앞에 굴복 당한다. 그러나 사실과 논증이 인간의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력 앞에 제시되어 판단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한 아무런 주석도 덧붙이지 않은 채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의미가 설명되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인간의 판단력의 힘과 가치는 만약 판단이 잘못되더라도 시정이 가능하다는 유일한 특성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시정할 수 있는 수단이 항상 손 가까이에 갖추어져 있을 때만 그 판단은 믿을 수 있게 ㅗ딘다.

어떤 사람의 판단이 참으로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어째서 그런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자신의 의견과 행위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모든 반대 의견을 귀담아 듣고, 그 중에서 올바른 것은 취하여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동시에 잘못된 허위성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는 것이 그의 일상적인 습관으로 되어 왔기 때문이며, 인간이 어떤 문제에 관한 완전한 지식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문제에 대해서 여러모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될 수 있는대로 귀담아 들을 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관찰할 수 있는 모든 관찰방법을 연구하는데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느껴왔기 때문이다.

어떤 현인도 이 이외의 방법으로 지혜를 얻은 적은 없었다.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어질로 총명하게 된다는 것은 인간 지성의 본질로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의 의견과 서로 대조해 봄으로써 자신의 의견 가운데 잘못된 점을 시정하여 완전한 것으로 마드는 습관은 그것을 실행으로 옮길 때 회의나 망설임을 갖게 하기는 커녕 도리어 자신의 의견에 대하여 정당한 신뢰감을 갖게 하는 확실한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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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운이 좋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자신들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충분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일반적으로 그들이 자신 외에 아무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적인 관심이나 사적인 관심 중 어느 것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즐거움은 많이 줄어들고, 어떤 경우든 모든 이기적 관심이 끝나는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 가치 면에서 줄어든다. 그러나 자신들이 죽은 이후에도 애정과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특히 인류의 집단적 이익을 염두에 두고 인류에 대한 동포애를 배양한 사람들은 죽기 전날에조차 젊고 건강했던 시절처럼 삶에 대해 생생한 관심을 가진다. 이기심 다음으로 인생을 불만족스럽게 하는 주된 원인은 정신계발을 하지 않는 것이다.

행운과 불운의 부침과 세상형편과 관련되어 있는 다른 여러 가지 문제들은 주로 개인적으로 사려 깊지 않은 행동들, 잘 통제되지 않은 욕망, 혹은 악하거나 불완전한 사회제도들의 결과들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인간 고통의 모든 중요한 원인들은 인간의 관심과 노력에 의해서 상당한 정도로 그리고 그 중 많은 것들은 거의 전적으로 극복될 수 있다. 비록 그런 것들의 극복이 슬프게도 느리게 진행되고 있고, 그런 정복이 완성되기 전에, 즉 사람들이 이 세상을 개선할 의지와 지식이 부족하지 않았더라면 쉽게 실현되었을 그런 세상이 되기 전에 많은 세대들이 그런 극복의 과정에서 사라지겠지만, 그런 극복의 과정에서 아무리 작고 눈에 띄지 않을지라도 그 중 한 부분을 맡을 정도로 충분히 지적이고 관대한 사람이라면 그런 정복의 과정 자체에서 고귀한 즐거움을 이끌어낼 것이고, 어떤 형태의 이기적인 탐닉을 위해서도 그런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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