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편지 - 유혹
정일근 지음 / 새로운눈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진 산문들 중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글들을 아름다운 사진들과 묶은 시인 정일근의 산문집이다. 상념과 사색의 계절 가을에 잘 어울리는 책이다. 책 속에는 우리 산과 들이 활짝 대문을 열고 변화무쌍한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시인이 발길 머무는 인상적인 곳들의 풍경과 사색들이 오롯이 빛나고 있다.

‘유혹’이란 제목처럼 시인은 독자들을 어디론가 유혹한다. 그곳은 콘크리트 더미로 이루어진 우리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난 곳이다. 자유와 순수가 숨쉬는 곳이다. 맑은 공기와 대지가 있고 꽃과 들풀들이 춤추는 곳이다. 바로 자연인 것이다. 그냥 존재하는 자연은 시인의 맑은 눈에 투영돼 그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 같다. 시인은 작은 꽃과 풀 하나에 숨어 있는 진실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우리의 인생과 연결해 사색을 전개한다. 이 사색은 상상 속의 세계만이 아니라 시인이 찍은 수수한 사진들의 이미지와 겹쳐져 빨리 우리 마음에 와 닿는다.

“처음에는 손톱 밑의 그믐달 크기 정도의 그리움이 물들기 시작하다가 끝내는 온몸으로 불태우는 그 열기를 나는 사랑이라 이름하고 싶습니다.”(‘그 잎새가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중)

“능소화는 나무 위에서 시드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꽃이 지는 순간까지도 만개할 때의 싱싱함 그대로 유지하다가 만개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낙화한다고 합니다. 그런 능소화는 나에게 이별의 자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웠을 때 꽃이 지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별도 능소화처럼 빛깔과 향기가 아름다울 때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능소화 혹은 이별의 자세’ 중)

자연은 시인에게 최고의 교사인 모양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감성을 자극하고 사색에 빠져들게 하고 깨우침을 주니 말이다. 시인의 감수성을 배워 얼마 있으면 붉게 타오를 이 가을 단풍들의 축제를 온몸으로 껴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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