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 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 화성 테마 한국문화사 3
김동욱 지음 / 돌베개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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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강력한 왕권을 위한 왕조통치이념으로 중국 한나라를 모델로 삼았다. 

어려서 당파싸움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이 산은 누구보다 강한 왕으로써   

시파와 벽파를 넘어선 인재(실학+서학)를 등용하여,  

정치, 경제, 문화 18세기말 국가정책 전체에 대하여 개혁을 꿈꾼 개혁군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개혁의 최종목표는 다름아닌 자신이 강한 왕이었음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게한다. 

책에 나오는 내용으로 화성성역의궤 권2[연설]- 이 역은 기호요충의 땅을 위해서만도 아니고,   

5천명마의 무리를 위해서 만도 아니다. 

하나는 현륭원을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행궁을 위해서다 라고 쓰여있다. 

 수원화성은 동서양의 발달된 과학적 특징이 통합된 18세기의 동양성곽을 대표하는 군사건축물의 뛰어난 사례로 평가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거기에는 화성성역의궤라는 대단한 기록이 한국전쟁의 폐허가 된 수원이란 도시의 위상을  돋보이게 하는 메뉴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조대왕이 수 많은 인재를 알아보는 혜안이 없었다면  수원은 그저 잊혀진 작은 읍으로 남아 용인민속촌이나 양동 하회마을 정도의 평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더 봐야겠다. [수정국역화성성역의궤]와 [홍재전서]등 정조대왕과 관련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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