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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도시 경주의 탄생 - 수도 경주에 신라의 모든 비밀이 숨어 있다
이기봉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신라는 정복국가의 길을 걸었다. 이제까지 한국사서술에 따르면
한반도 내부에서 벌어진 고대의 전쟁은 “통일전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래 하나가 아니었던 서로 다른 국가나 민족사이의 전쟁은 통일전쟁이 아니라
상대방을 멸망시키고자하는 정복전쟁이다.~~~
신라는 정복된 소국에게 자신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으므로
신라는 진한소국과 연합한 것이 아니라 진한소국을 정복한 것이다.
-책중에서 작가
나의 이야기- 정리해보면
신라 전성기에 왕경(수도)에는 17만 9천 여 가구(1가구 5인 기준 895,000여 명)가
살았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나 가구 수가 아닌 인구수로 일부 학자들은 주장을 한다.
수도가 반경 5.5km라는 논리로.
이 책에서는 그 주장에 반한 가설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6촌의 경계를 문헌과 지역을 돌아보면서 정치, 종교, 경제, 지리학 등 종합적으로
전후관계를 면밀히 퍼즐을 맞추듯.., 지금까지 알고 있던 역사와는 다른 견해,
신라는 유이민(혁거세)과 토착민(6촌)의 결합으로 형성된 정복국가이다.
초창기부터, 성골, 진골, 6두품의 철저한 차별이 있는 계급사회였다.
지금의 경주시내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신성한 지역이었으나 법흥왕 때 이후 사찰을 지어
신성함을 유지함과 동시에 치수의 수단으로 삼았다. 지금 경주(6촌의 중심)에 황룡사를 세우고,
선덕여왕 때 그 옆에 분황사를 세웠다.
법흥왕은 불교의 수용으로 직선적인 골품제 중심의 신라사회를 개혁하려 했으며,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을 분리하려 하였다.
4월 7일 경주답사여행 때문일까..
어렵게 읽다. 생각의 다양성과 식민사관 아래 우리가 받은 교육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