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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읽다 - 세계의 도시 열다섯 곳에서 만나는 인간과 건축 이야기
장친난 지음, 양성희 옮김 / 안그라픽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직업상 세계 여러 곳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귀빈들을 영접하다보면 우리나라 땅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관념들이 들어맞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대학 때 문화인류학 수업을 들어본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대응하거나 매번 부딪쳐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한데, 이번에 우연히 도서 이벤트에 당첨되는 행운이 따랐고, 거기에 더해 개인적으로 흥미를 끄는 ‘도시를 읽다’를 읽게 되었다. 처음엔 세계 여러 도시에 대해 지역적 특색과 함께 사회, 문화를 일러주는 가이드 역할 정도를 기대했었나보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읽어 가다보니 건축물을 중심으로 도시의 고유 정서를 읽어내는 독특한 안내서였다.
건축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로서 책을 얼마나 소화해 낼 수 있을지가 개인적인 걱정거리였다.
34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책을 들고 있자니 적잖이 근심이 쌓일 수밖에.
그러나 책을 펼쳐 개설에 해당하는 1장을 읽다보면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상하이 출신의 전직 건축가이자 교수였던 작가는 나와 같은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까다로울 것만 같은 기본적인 건축 이론을 세심하게 설명해 준다. 덕분에 인지도 수준에서 머물던 얄팍한 지식이 콜린 로우 교수의 콜라주시티 이론과 알도 로시의 랜드마크와 모체건축물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론도 어설프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1장에서 개설을 충분히 습득한 뒤 작가가 선정한 15개 도시를 ‘리딩’하는 실전코스 2장으로 넘어갔다.
전 세계의 다양한 도시를 내심 기대했는데,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맨해튼 세 곳의 미국 도시들이 선정되다보니 선정됨직도 한 여타 도시들이 등장하지 않는 아쉬움은 있다. 작가는 각 도시가 계획에 따라 형성된 곳인지를 먼저 설명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장하게 되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그들의 철학이 도시의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한다. 곳곳에 드러나는 작가의 건축철학은 바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는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계획에 의해 조성된 브라질리아와 캔버라를 비교하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의식이 지배하는 곳과 자연과 조화를 중시하는 곳의 차이가 어떻게 드러나는 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마지막 3장은 도시 형태와 건축문화, 그리고 작가가 피력했던 관점을 총정리하여 요약한 챕터. 사실 1장과 3장을 여러 번 읽고 충분히 습득한다면, 2장은 작가의 설명에 따라 즐겁게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2장을 다 읽고 나면 그 외 다른 도시들의 구조, 문화에 대해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도시를 문학 장르에 비유하는 작가의 인식도 신선했다. 덕분에 도시를 단순히 도시로만 바라보지 않게 되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삶이라는 한 페이지를 써내려간다는 공동의 연대감이 새삼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나의 일과 연관하여서는 대한민국 땅을 밟는 분들의 이면에 쓰인 삶의 뿌리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건축물에 담긴 그 지역 거주자들의 영혼이 도시를 형성하며, 도시는 문화를 이해하는 데 실질적인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을 알았다. 덕분에 아주 유용한 정보를 얻기도 했고, 앞으로 다양한 도시를 접할 때 좀 더 깊이 있게 그 지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한 셈이다. 더불어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도 새삼 다시 바라보게 되었으니, 이 책은 꽤나 성공한 문화가이드가 아닐는지.
어려울 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시작한 독서가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세상에 대한 흥미가 가득한 채 즐거운 마음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당장 여행을 떠나기는 어렵지만 그 도시에 대해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이 적절하겠다. 지금 당장 책을 펼쳐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