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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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사람들 사이에서의 상호작용만으로도 피곤함을 느낄 때가 있다. 정확히 1달 전이 내겐 그런 시점이었다. 우연히 이 책과 마추쳤을 때, 책 타이틀 속에서 날 바라보고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눈으로는 읽히는 단어가, 너무도 오래전 기억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책을 꺼내들고 겉장을 펼쳐들었다. 역시 상상한 대로의 이미지를 지닌 시인의 모습과 작가의 여러 책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부끄럽지만 대표작 사평역에서를 제외하고는 잘 알지 못한다. 시 한 편에서 받은 감동이 잊혀지지 않아서였을까. 작가의 책을 들고 이리저리 가늠을 해 보았다. 중간 쯤 펼친 곳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타고르의 시, ‘삶의 노래’.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이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멈추어 서고 싶을 때 마음이 머물 곳을 찾았다.

 

시인은 20097월 홀연 인도 산티니케탄으로 떠난다. 시인의 마음에 작은 천국을 선사했던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시편들을 직접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타고르의 모국어인 벵골어를 익혀 한국어로 직접 번역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시인의 열정이었다. 덕분에 나처럼, 시인이 아니었다면 산티니케탄이란 지명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사람들이, 벵골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세찬 물길이 되어 자신이 어디로 떠밀려 가는 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요즘 세상,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비로소 나는 멈추어 서서 사람들의 내밀하고 따뜻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첫 장, 크와이의 벼룩시장에서 작가는 한 어린 소녀에게서 색색의 그림이 그려진 작은 종이배를 산다. 마음속에 번지는 작은 물결. , 그래 내게도 그런 적이 있었지. 시인이 소녀에게서 산 작은 종이배는 시인을 행복하게 만들고, 글을 읽는 내게도 전해져 어느덧 꿈과 사랑이 되돌아왔다.

어느덧 책을 단숨에 읽기가 아까워졌다. 동생 몰래 숨겨둔 과자처럼 야금야금 꺼내 먹고 싶었다. 작가가 선물한 삶의 빛이, 11초로 모두 나누어져 하나하나 다가왔다. 어느 한 순간도 버릴 일이 없었다. 소중하고 감사한 삶의 순간순간들이 느껴졌다.

 

작가는 산티니케탄에 여장을 푼 이후로 하루하루의 생활을 사진 찍듯 글로 보여준다. 산티니케탄의 번화가 라딴빨리의 가게들, 노천카페 테이블에 앉아 시를 적는 일상, 비슈와바라티 대학 유학생들과의 이야기들. 비슈와바라티 대학 부속 초등학교 빠따바반의 천사같은 아이들과의 교류. 야외수업 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져 속으로 웃음을 웃어넘겼다. 압권은 릭샤왈라들의 이야기였다. 여기저기 보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보니 시인은 자연히 릭샤왈라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꽃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수보르에게 흠뻑빠진 시인. 덕분에 나도 지나던 길에 슬그머니 걸음을 멈추고 꽃들에게 살짝 눈웃음을 건네보았다.

 

책의 후반부 중 일부는 작가가 산티니케탄에 거주하면서 겪은 마시들과의 해프닝이 일기형식으로 소개되어 있다. 우리에게 가정부쯤되는 마시라는 직종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가정부와는 달랐다. 작가가 많은 일을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읽다보면 두 마시, 미나와 소루밀라가 이 집의 주인인건지 약간 혼동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부리는 일이지만 마치 한 가족과 진배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며, 적절한 웃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작가의 따뜻한 속내에 내 마음마저 녹아내렸다. 사람과의 유대에 힘들어 하던 내 마음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치유가 되어가고 있었다. 작가와 벵골 사람들의 잔잔한 드라마를 보며, 어느덧 내 마음이 다시 밝은 태양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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