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3.11 20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10월
평점 :
품절


이민자로 넘쳐나는 구대륙은 동시에 냉소주의가 팽배한 곳이기도 하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난민 문제는 이제 경제적 이유로 이주하고자 하는 이들을 배제하고자 하고, 이들이 끼칠 피해에 대한 목소리가 넘실 거린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는 생존의 문제와 전혀 별개의 것인가? 당장의 생계가 막막한 이들의 경우, 특히나 그 궁극적 원인이 유럽 국가들이 일으킨 문제인 경우, 그 문제가 분쟁 지역 난민의 문제와 무엇이 크게 다른지 모르겠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각종 문제로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다. 수십 년에 걸쳐 이미 이스라엘의 식민지화 돼버린 팔레스타인. 두 집단의 관계가 공생 관계가 되어버렸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전쟁의 뿌리를 안다고 한들 이미 얽히고설켜버린 두 나라를 분리해 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위키피디아는 다수의 민중이 백과사전 편집 권력에 저항하여 만들어낸 사이트였다. 다양한 변용은 '위키' 형식을 현대인들의 삶에 스며들게 했으나, 문제는 이를 정치적 이익에 따라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위키' 의 이름을 달고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이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시민들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이번 11월 호가 나한텐 꽤 어렵게 느껴졌는데 읽다 보니 결국 또다시 돈의 문제로 수렴되는 것이 읽혀서 심란했다. 물론 권력과 자본 앞에 아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은 중국 엘리트층도, 쿠데타 정권을 옹호하는 제1세계 백인들도 마찬가지지만. 경제적 요인을 배제하고 현실의 정의를 논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구나. 권력과 자본을 독점하기 위해 시민들을 통제하는, 곳곳에 편재된 파놉티콘을 어떻게 인지하고 비판해야 할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니에르 드 부아르 13호 Maniere de voir 2023 - 언어는 권력이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 Maniere de voir 13
필리프 데캉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권력이란 물리적 힘의 행사가 아닌 독점과 배제를 행하는 언설의 작동으로, 폭력이 언어로 구현된다. (미셸 푸코)"

 

인쇄술과 함께 하는 문명의 발달은 국가 간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제국주의의 팽창은 단일언어 확장을 가속화시켰다. 실용주의를 기조로 한 국제어 사용 풍조는 "누구를 중심으로 한 실용주의인가, 왜 그들을 위해 그들의 언어를 따라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가리고, 신자유주의 체제에 따라 자본과 지배자의 언어인 영어가 각국의 모국어를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영국은 EU를 탈퇴했으나 독일어와 프랑스어가 절대다수의 모국어인 유럽연합 티비 토론회에서는 영어를 통해 유럽의 비전을 이야기한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야기가 가능하기는 한가?

 

혹자는 영어로의 단일언어화는 다언어주의보다 비용이 '덜 드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간과되고 있는 점은 영어만 사용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기업에만 유리할 뿐, 여러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언어를 사용하는 유럽이라 할지라도 모든 분야에서 정교한 사고 과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모국어의 능력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으며, 정책적으로 다중 언어를 장려하는 국가의 경우 필연적으로 학생들의 학업 성취 저하가 발생한다. 통번역·출판·교육 등의 영역에서 영국의 특권적 지위만 공고히 할 뿐이다.

 

한편, 영어의 세계화를 경계하는 흐름 속에서 프랑스어권 (과거) 식민지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영어 사용을 택한다. 특히 식민지 시대 피지배국의 위치에 있던 아프리카 대륙은 제국의 언어인 프랑스에 대항해 대안 언어로서의 영어를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 젤렌스키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은 제국의 언어인 러시아어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우크라이나어를 강제하며,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권 화자들에게 불이익을 감내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역사적으로 제국의 언어는 영어,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아랍어, 중국어, 로마 문자 체계의 논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경어 구어가 아닌 한자라는 문자 체계를 통해 국가 통합을 이루었다. 이는 엘리트적일 수밖에 없었고, 근대 이후 하나의 문자 체계에 다양한 구어 체계의 혼용을 감수했으나, 최근 미디어의 성장과 함께 보통화를 중심으로 한 구어의 통합 또한 이루고자 한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병음(핀인) 표기를 위한 서구 로마자 체계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언어 통합' 은 순기능만 존재할까? 민주주의는 다언어주의에 기반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봤을 때 결코 긍정적으로만은 볼 수 없다.

 

다양한 국가의 이해관계를 조율한 결괏값으로서의 국제법이 특정 언어들을 중심으로 기술된다는 것은 모종의 불평등을 함의한다. 특히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에서부터 국가 간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그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불어 가장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능력을 벼려야 하는 고등교육기관인 한 나라에서 대학에서조차 '영어 전용 수업' 을 진행한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번 편의 말미에서는 코리안학과 코리안어를 이야기하는 프랑스 학자들의 견해를 이야기하며 마무리된다. '한국학' 과 '한국어' 가 아닌 '코리안학' 과 '코리안어' 라고 지칭되는 이유는 <코리안> 이 한국만의 전통과 언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전통과 언어 또한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코리아 자체에 대한 학문을 구축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으며, 이는 결코 코리안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 윤석열 정부 600일, 각자도생 대한민국
신장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각자도생의 기조를 통해 굴러가는 (주)대한민국.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철저히 뒷전이 되어가는 세태 속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는 희미해져만 간다.

 

노동자가 죽어도 죄가 되지 않는 나라. 존중은커녕 염치도 두려움도 가질 이유가 없는 나라.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이들의 존재가 '그림자화' 되고 '전과 22범'이 될 수밖에 없는 나라. 누가 그들을 그림자로 만들고, 누가 그들에게 전과 부여를 했는지에 대한 물음은 없고, 계속되는 <시장화> 와 <산업화> 의 주장은 재난마저 시장화하고 산업화할 것을 주장한다.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슈퍼맨을 요구하는 사회. 공동의 약속과 그로 말미암은 책임이 부재한 사회. 이제, 그 토대 위에 세워진 '기억' 이 무엇을 보편적 가치로 설정하고자 하는 선택의 기억인지 함께 묻고 목소리 내야 할 때이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 외 지음, 치명타 그림, 전주희 해제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디스 버틀러는 "취약한 사람이란 곧 취약한 조건 속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이며, 취약한 조건에 처해 있으면서 그 취약한 조건에 저항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그제야 그들을 둘러싼 이중성이 드러난다" 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한겨레 출판에서 발행된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선언 그 이후, 정부와 공기업의 계속되는 기만과 차별에 맞서 투쟁의 시공간을 이어간 톨게이트 노동자 12인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정규직화가 아닌 직접고용을 향한 투쟁. 한 사회가 의도적으로 비가시화하고 묵인하고 경멸하며 목소리를 빼앗았던 존재들, 결국 캐노피에 매달리게 만든 존재들. 캐노피에 올라서고서야 그들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자격을 갖추고, 그제야 세상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이도 많으면서, 결혼도 했으면서, 장애도 있으면서, 학력도 별로면서, 편한 일을 하면서, ···. 연령·성별·장애·학력 "차이" 를 이유로 "표 끊는 아줌마들" 이 어찌 감히 정규직화를 바라느냐 조롱하는 시선들. 능력주의라는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목소리들.

 

"지워지고 대체되어 마땅한 존재들" 이라는 압박 속에 <왜 싸우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뚜렷해진다. 정부와 기업의 자동화 시스템 구축은 무수한 대체 가능한 직업의 소멸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동화라는 편리함으로 야기된 현장의 과잉착취는, 결코 대체 불가능한 존엄과 평등의 자격이 있는 구체적인 얼굴들이 존재함을 일러준다. 한 사회 속에 그 얼굴들의 존재를, 자리를, 웃음을 지켜주기 위해 필요한 연대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천성 희귀 질병으로 인해 남들과 다른 외관을 가지게 하는 장애를 가진 클로이 쿠퍼 존스. <이지 뷰티> 는 그녀의 사유이자 세상에 대한 기록이자 성장 에세이인데, 저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이유로 육체적 경험의 기회뿐만 아니라, 사랑, 섹스, 출산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통제하려 드는 사회를 경험한다. 특히 자신을 눈앞에 두고도 우생학적 논리를 들며 자신의 권리를, 존재 자체를 '부당한' 무언가로 낙인찍으려는 이들을 보며 분노와 무력감과 환멸이 뒤섞인다. 그녀는 세상이 그녀를 향해 내뱉는 '안돼' 혹은 은연 중의 네 존재 자체가 오점이라는 말에 반발을 하면서도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려 외피 속 중립의 방으로 끝없이 숨어든다.

 

중립의 방에서 그녀는 수많은 생각을 펼친다. 특히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숱한 철학자들에 대한 생각,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예술품들을 떠올리고 마주하며, 현실 속 자신이 욕망하는 바와 저지당한 욕망을 생각하곤 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 저지당한 욕망 중 하나였다. 현대 의학의 권위와 다름없는 의사가 클로이에게 "절대 아이를 낳을 <수 없다>" 단언했었고, "그녀는 절대로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된다>" 는 말을 내비치는 이들이 있었고, <그녀조차>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임신이 '있을 수 없는 일' 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클로이는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었고, 자신의 몸을 통해 사랑하는 아이를 세상에 내놓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제 그녀는 태어난 아이와 함께 세상에 스며들기 시작하고 다시금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고찰하게 된다.

 

신체적 장애와 그 신체를 둘러싼 일종의 사회 규범 및 시선의 정치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개인을 두고 네가 누구고 네가 이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규명해주려 한다. 그들이 정한 기준과 다르거나 변형이 되어 있으면 오류로 결점으로 낙인찍는다. 개인은 살아가며 그런 생각을 내재화하고, 그렇게 자리 잡은 생각은 쉽사리 깨기가 힘들다. 저자는 그런 생각에 상처받을 때마다 과거의 철학과 예술로 회피하곤 했으나, 사실 이런 회피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삶에 있어서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밖에, 타인의 생각 속에, 그리고 타인과의 대화 속에 있음을 무수한 철학자들과의 대화 속에 은연중에 깨달았던 거기도 하기에. 저자는 자신의 삶과 대조되는 버나드 보전켓의 "Easy Beauty" 라는 말을 제목으로 택했다. 일견 아이러니해 보이는 이러한 선택은 역설적으로 "Difficult Beauty" 라 여겨지는 삶이 드러내는 존재감, 가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장애와 젠더를 둘러싼 저자의 경험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에세이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시선을 파고 들어가 표현해 내는 언어도 놀랍다. 한 사람의 사유와 경험과 시선이 확장되어 가는 것을 목격하고 동행하고 싶은 이들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