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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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사무적으로 들리는 제목에 비해 이야기가 제법 묵직하다. 살면서 창경궁 대온실은 사진으로만 봐 온 지라 소재가 참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면서 당대 동양 최대 규모였다는 창경궁 대온실. 세계의 식물을 옮겨 놓은 듯한 화원은 존재로서 조선의 근대를 알리는 곳이었으나, 그 속의 '이름' 들은 모두 일본식 이름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애석했다. 이름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인지하고 나와 매개시키는 방식일 텐데 그 모든 것들이 일본을 거쳐 이루어져야 하고, 광복 이후 폭격에 의한 손상이 한국 역사의 파편적 재현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했다. 중간중간 아재개그는 취향이 아닌데 그럼에도 작가님이 글을 쓰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하셨을 거 같다는 인상이다.

"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지만 잔류 일본인이라는 설정에 대해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특정 캐릭터를 바라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두렵지만 직시해야만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폭격과 함께 폐허가 되었다는 이유로 외면하기 보다는 그때의 트라우마와 나를 '수리' 를 통해 다시 한번 마주 보며 보듬어 삶의 일부로 복원시키는 노력이 어쩌면 필요할지도 모른다.

광고 및 협찬으로서 창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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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업 캐피털리즘 - 시장급진주의자가 꿈꾸는 민주주의 없는 세계 Philos 시리즈 30
퀸 슬로보디언 지음, 김승우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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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슬로보디안Quinn Slobodian 저자의 <크랙업 캐피털리즘(Crack-Up Capitalism)> 을 읽었다. 사실 처음엔 제목부터 무슨 소린지 생소했다. 자본주의를 쪼개어 대체재를 만들자는 건지, 시장급진주의자가 언급되는 걸로 봐서는 그건 또 아닐 것 같은데 등의 의문. 서평단의 매력은 이런 점일지도 모른다.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책을 읽기 위해 개념을 검색하고 관련 뉴스를 찾아보고 더 나아가 저자의 인터뷰 등을 찾아보는 과정이 동반된다는 점. 작년에 꽤 핫했던 건지 저자인 교수님이 여기저기 나와서 인터뷰를 하셨길래 몇 편 찾아보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이 글은 해당 분야 문외한인 내가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기록한 최소한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저자가 주장하는 크랙업 캐피털리즘Crack-Up Capitalism 이란 무엇인가? 아마 극단적인 탈규제주의자들, 즉 시장 급진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자본주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말로 바꿔보면 균열자본주의, 구멍내기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말 그대로 도시, 국가 전체에 '구멍' 을 낸다. 이 구멍을 낼 수 있었던 기반은 법의 손길이 가해지지 않는 구역zone 을 찾거나 심지어 그들이 자체적으로 구역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든 비의도적으로든 중앙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치외법권과 마찬가지인 구역에서 시장 시스템을 뒤흔드는 이들은 사회적 구성원 다수의 합의를 기반으로 지탱되는 민주주의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왜냐하면 다수의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를 불신함과 동시에 '경제적 자유' 의 장애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에 따르면 민주 정부는 규제가 너무 많고 시장 역동성에 장애물이 될 뿐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움직임은 결코 다수의 국민들이 합의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소수의 특권층만을 위한 혜택으로 변모된다.

책은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들과 마찬가지로 마가렛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의 부상을 분석하면서 전개된다. 자본의 사유화, 탈규제, 정부 역할의 축소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작용이 고스란히 '크랙업 캐피털리즘' 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책은 특히나 사례 연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홍콩과 두바이와 같은 도시들을 통해 경제특구Special Economic Zones (SEZs) 및 인가 도시Charter Cities 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두 유형은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경제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중앙 정부의 법과 규제를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적용한다. 이로 인해 기업 친화적 환경이 만들어지나 동시에 민주적 감독이 부재한 까닭에 경제적 불평등이 야기되고 더 나아가 환경적 악영향까지 끼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시장급진주의자들은 사람이 없고, 비어 있는 공간에서의 자본주의 최적화를 이루기 위해 위 모든 것들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저자의 말마따나 구역에는 사람이 거주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음에 분명하다. "비어 있는 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연대를 통해 "물이 되어" 이곳에 존재하는 이들이 있으며 그들은 결코 깨지지도, 부서지지도 않다는 사실을 끝없는 목소리를 통해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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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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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 모르겠다."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하승민 작가의 <멜라닌> 은 작품의 첫머리에서부터 자기 존재에 대한 대담한 문제를 제기하며 시작된다. 주인공 재일은 파란 피부를 가진 '소수인종' 으로 패싱 되는 존재이며,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의 피부와 어머니의 출신 국가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차별과 멸시를 견디다 못한 그는 가족 자체의 미국 이주를 계획하게 되나, 그 과정 속에 어머니가 고향 벹남으로 종적을 감춘다. 미국 이주 이후 재일의 삶은 역사적 삶을 관통하는 재현적 삶에 가깝다. 테러, 총기사건, 탄핵 등 풍파와도 같은 삶의 급류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재일은 마모되기는커녕 오히려 단단해지는 듯 보인다.


이 작품이 그렇다. 차별과 혐오를 주제로 한다 해서 주인공이 마냥 주눅 들어있다기보다는 그 반대라 하는 것이 적합하겠다. "존재하는 것이 저항하는 것이다. To exist is to resist." 라는 말마따나 작품 속 재일은 현존하는 삶으로서 자신을 옥죄는 규범의 폭력에 대담히 맞서고자 한다. 작품은 주류 경계 속에 함께하고자 애쓰는 이들을 끊임없이 경계 밖으로 밀어내는 규범적 폭력을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재현한다. 파란 피부와 혼혈이라는 점이 삶을 방해하는 그 어떤 은유로 끝나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 자체로 세상에 맞서는 삶을 살아내는 재일의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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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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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성을 억압하는 규범에 대해 낙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딛고 일어나 세상에 맞서고자 하는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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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이데올로기 - 수저 계급 사회에 던지는 20가지 질문
조돈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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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는 피지배층을 착취하고 계층 간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자본주의와 결합한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빈익빈 부익부를 야기하고, 그와 더불어 발생하는 다양한 불평등 양상을 초래한다. 이 책 <불평등 이데올로기> 는 자본주의 사회에 결합된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여러 양상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종류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그 이데올로기는 타당한지, 더불어 무수한 불평등 쟁점들 속에서 과연 '평등' 이데올로기는 실현 불가능한 가치인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다양한 도표와 그래프를 통해 객관성을 더하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에 만연한 '보편성' 과 '객관성' 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 가치가 있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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