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지만, 1930년대의 딕슨 카는 멋진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았을까요? 일단 파리 유학을 끝냈고 아름다운 부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살기 시작했죠. 새로운 필명을 고안했던 걸로 보아 출판사와도 얘기가 잘 되었을 테고, 추리소설 사에 길이 남을 기디온 펠 박사와 헨리 메리베일 경이라는 두 캐릭터도 이때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후세까지 언급되는 딕슨 카의 걸작들은 모두 이 시기에 출간됐습니다. <세 개의 관>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구부러진 경첩> <유다의 창> <화형법정> 등등등.
<유다의 창>은 처칠을 닮은 헨리 메리베일 경이 등장하는 스물두 권 중 한 권입니다. 1938년 작으로 카터 딕슨 명의로 발표됐으며, 딕슨 카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을 얻고 있습니다. 밀실을 다룬 추리소설 중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죠. 하지만 그 명성만큼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했던 아픔들도 있었습니다. 여러 책에서 이 작품의 트릭을 무심코 혹은 당당히 공개하곤 했죠. 그래서인지 <유다의 창>의 트릭은 웬만한 독자에게 꽤 익숙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딱히 흠잡을 곳 없는 제임스 캐플런 앤스웰은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미래의 장인이 될 에이버리 흄의 허락을 받고자 초대를 받고 그의 집에 방문하게 되죠. 그런데 분위기는 좀 묘합니다. 아무튼 앤스웰은 예비 장인이 권한 위스키를 냉큼 마시는데, 곧 정신을 잃게 됩니다; 깨어난 그 앞에 놓여 있는 건 예비 장인의 시체. 장인의 심장을 꿰뚫고 있는 건 벽에 걸린 화살이었죠. 화살에는 앤스웰의 선명한 지문이 남겨져 있습니다. 틈 없고 흠 없는 문과 창은 단단하게 안에서 잠귄 상태였죠.
헨리 메리베일 경은 왕실 고문 변호사 직을 수락하고 앤스웰의 변호에 나섭니다. 그리고 이 불가능한 범죄를 해체하기 시작하죠.
먼저 제목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는 대치할 우리말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Judas Window'의 사전적 어의는 'an aperture or glass pane that permits safe or surreptitious observation through a door or wall'입니다. 안전을 확인하거나 은밀하게 엿보기 위한, 문이나 벽에 달린, 구멍이나 유리창 정도로 해석될 것 같은데요. 보통 현관문에 달린 아이홀과는 또 다른 의미입니다. 다른 출처를 확인해 보면 교도소 감방 문에 달린,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고 밖에서만 안을 확인할 수 있는 사각형 창을 말한다고 하는데요. 이게 사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기 때문에 그렇게 잘 와 닿지는 않습니다; (음 그래서 비슷한 이미지를 찾아봤답니다)
‘유다의 창’이란 제목에서 바로 연상할 수 있는 형태가 국내 독자들에게는 없습니다. 오히려 보통명사의 측면보다는 ‘유다’라는 단어가 갖는 상징성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덕분에 제목은 은은한 서정성(?)을 갖게 됐는데요. 물론 이 또한 딕슨 카가 의도하는 바이긴 하겠으나, ‘Judas Window’라는 단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좀 세밀하게 짚지 않을 수밖에 없었네요.
보다 쉽게 이해를 하기 위해 작품 속 한 부분에서 ‘유다의 창->우유투입구’로 바꿔 보았습니다.
‘우유투입구’는 좀 불길한 느낌이 드는 말이었다. 딱 하나의 관념으로 잡히지 않고 여러 가지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면 누군가 어둠 속에서 창 안을 몰래 훔쳐보는 장면이라든지…….
“하지만 젠장, 그게 모두 사실이라면 말이 안 되잖아요! 창문이 있든 없든 간에, 그…… 창이라는 게 건축가가 간과하고 넘어간 뭔가 특별한 그 방의 특색이 아니라면…….”
내가 말하자 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아니야. 바로 그게 이 사건이 재미있는 부분이지. 그 방에는 여느 방하고 다른 점이 조금도 없다네. 자네도 아마 자네 방에 우유투입구를 가지고 있을 테고 심지어 이 방에도 우유투입구는 있어. 물론 형사 법원의 법정에도 우유투입구는 있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차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지.”
음 이거 괜한 짓인가요?;;;; 아무튼 저런 느낌이라는 것이죠;
자; <유다의 창>은 밀실을 다룬 미스터리이자, 법정 미스터리이기도 합니다. 정의의 여신상이 보우하는 올드 베일리(영국 런던에 위치한 중앙 형사 재판소)에서 불가능 범죄를 두고 벌어지는 건곤일척(?)의 공방전은 이 소설의 압권이죠. 바킨 판사와 배심원 그리고 스톰 경과 메리베일 경이 그리는 사각형은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공방의 기술들은 무척 현실적이고, <유다의 창>은 법정 미스터리가 가져야 할 모든 미덕을 황홀하게 보여줍니다. 메리베일 경은 날카롭게 불가능 범죄의 가능성을 파헤치고 능글맞게 검찰 측을 농락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유다의 창을 열어젖히고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는 것이죠.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추리소설의 트릭은 이미 만들어질 만큼 만들어졌고 쓰일 만큼 쓰였으며 응용될 만큼 응용됐습니다. 읽는 방법으로 사각이 만들어진다거나, 사유와 인식을 의심해야할 만큼 놀라운 일들이 당연한 듯 일어나는 곳이 바로 추리소설의 세계입니다. <유다의 창>의 트릭은 경천동지할 만한 요즘 트릭에 비하면 매우 볼품없습니다. 마치 태초의 트릭인 듯 원초적인 모습이죠.
하지만 문제는 트릭이 아닙니다. 그것을 제시하는 방법과 드러내는 기술 그리고 집중시키는 힘이 중요한 것이죠. <유다의 창>은 이 지점에서 거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건의 형태를 보여주는 전지적 시점의 프롤로그, 켄 블레이크와 헨리 메리베일 경이라는 추리소설 특유의 관찰자 시점으로 이어지는 법정 장면, 간단한 트릭을 완결성 있게 만들어주는 사라진 증거, 알리바이표로 분석한 사건의 전모, 범인을 보여주는 방식, 에필로그의 여운. 모두 너무나도 감탄스럽습니다. 진정한 마스터의 마스터피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