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es of Korea: An Illustrated Guide to Korean Culture (Paperback)
서울셀렉션 / 201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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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책으로 아주 좋다. 최근 정보가 가득하고 외국인의 시선으로 무엇이 신기하고 색다른지 짚어주고 있어서 가독성도 좋다. 매 페이지마다 필수 한국 단어가 서너 개씩 소개되고 있다. 가을학기에는 한국어 클래스 부교재로 사용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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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꽤 재밌네..
이런 글이 재미있어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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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세계에 대해서 나만이 알고 있는 어떤 비밀을 나만의 언어로 형상화하고 싶었다.” (p.25)

- 이 문장은 벼락처럼 내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글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모름지기 문학이란 반항이고 저항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모든 진부한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가치들……따위는 다 나의 적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언어라는 도구로 나만의 세계를 스스로 창조하려는 야심을 가진 작가이기 때문이다.” (p. 32)

-맞아. 작가정신이란 기본적으로 반항이지.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야. 누워서도 보고, 옆으로도 보고, 내려다보기도 하고…. 반듯이 보는 세상만이 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갇힌 세계를 열어주는 이가 작가이지.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가? 같은 모습, 같은 시간에도 얼마나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가를 안내해 주는 이가 정말 작가이지.

“캠퍼스 가득 피어나는 봄꽃들의 합창을 보고 있으면 기쁘기보다는 슬펐고 젊디젊은 학생들이 넘쳐나는 교정의 활기찬 봄날이 꿈속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보기에 청춘은 참혹한 것이었고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찬 곳이었다.” (p.45)

- 젊음마저 없다면 그 참혹한 여정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청춘이 아름답다는 건, 노인들의 회상에서만 그러하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은 작가가 되지 못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소외시키면서 이 세계가 무엇이고 자신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방법으로 새롭게 규명해 보려고 하니까.” (p. 129)

- 나는 작가의 일탈에 관대하다. 그건 실험정신이고 작가적 고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소외시켜본 자, 그만이 사물들의 핵심에 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를 씻어주고 싶어. 부탁이야.” (p. 160)
“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눈꺼플에 입술을 대고 누르더니 뺨에 입을 맞췄다. 턱에 입술을 갖다 대고 목, 어깨, 가슴, 배 순으로 온몸을 천천히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그는 나를 한없이 소중하게 다뤘다. 눈물겹도록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몸짓으로 나를 애무하고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내 몸속에 들어왔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그는 조용하게 움직였지만 나는 큰 파도를 타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이 세상에 그와 나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중략) 그의 몸은 따뜻하고 슬펐다.” (p.161)

- 압권이다. 눈물이 난다.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섹스장면을 그려낼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있을까? 박경리씨의 『토지』중, 월선과 용이가 처음으로 사랑할 때의 장면에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되풀이 읽었던 감동이 다시 일렁인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섹스 장면, 그건 하나같이 남성적 관점이다. 읽어내기가 힘들다. 어쩜 저렇게 동물처럼 그려낼까? 이러고도 작가인가? 구역질이 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의 작가 문영심씨는 여성이 그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절절히 그려내고 있다.

진정 여성을 사랑하고 싶은 남성, 사랑하는 여성으로부터 지순한 사랑을 받고 싶은 남성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튀니지에 도착한 첫날부터 밤마다 호텔 방에서 혼자 울었다. 왜 눈물이 났는지 알 수 없었다.” (p.259)
“늘 몸담고 살던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지구의 한쪽 끝에서 그 깊은 밤에 내가 만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비로소 대면하게 된 훼손된 자아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두고 흘러내린 것이다. (p.261)

- 훼손된 자아와 정면으로 맞딱드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 용기와 행복을 전해주고 있는 작가에게 깊은 공감과 존경을 보낸다.

훼손되어 보지 않은 자는 유약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훼손된 자아와 맞딱드려보지도 못한 채, 때로는 위악과 위선으로 감추면서 가슴 속에 돌하나 품고 살아갈 것이다. 그 돌을 꺼내어 응시할 수 있는자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이 책의 작가 문영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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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①. 나이 오십
②. 하버드대학 심리학교수 25년
③. 언어심리학의 선두주자
④. 뛰어난 강연
⑤. 여러권의 저술
⑥. 하버드대학 교수 남편
⑦. 변호사 큰딸, 의사 사위, 하버드 졸업
⑧. 의사 아들, 하버드 졸업
⑨. 배우 막내딸
⑩. 1년전에 tenure professor 가 됨 (정년까지 교수로 있을 수 있는 안정된 위치)

2003년 9월 까지 그녀, Alice 를 설명해 주는 단어들이다.

위에 열거한 내용중 “나이 오십” 이라는 걸 빼고는 앨리스에 그다지 큰 매력을 느낄 순 없다. 더군다나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빨려들진 않았을 것이다.

앨리스는 모든 것을 다 거머쥔 것같은 그 정상의 고지에서 그녀는 early on-set Alzheimer 라는 진단을 받았다. (보통의 알츠하이머는 65세 혹은 70세 이후에 나타나는데, early on-set 란 드물지만 50대에 혹은 더 빠른 경우는 40대 후반에도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나이 오십이 될때까지 실패라는 것은 한번도 허용치않고 오직 수직 급상승만 해왔던 그녀의 인생 앞에, 단 2년만에 (2003년 9월~2005년 9월) 급전직하 라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후는 죽음과 같은 생명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이 책이 나를 사로잡은 이유는,
첫째. 주인공의 나이가 오십이라는 사실이다. 나도 꼭 같은 나이이니까. 인생 이모작 얘기가 낯설지 않은 시대다. 80까지 거뜬히 살아내는 시대이니, 인생 일모작을 끝내는 50대 전후하여 이모작을 준비하라고 보채대는 시절이다. 하버드대학 교수, 즉 최고의 지성은 어떻게 오십을 지내는가 궁금했다.

둘째. 환자 자신이 그 2년의 세월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즉, 환자 시각이다.
흔히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접한 알츠하이머 또는 치매 환자의 경우, 대개 간병인 시각이었다. 얼마나 그들을 돌보기가 힘든가?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시점이 얼마나 여러번 있는가? 그리고 후회하고. 독자 혹은 관객들과 서로 위로하며 공범의식으로 죄책감을 반감시켜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까.

2004년 5월에 Alice 는 자신의 핸드폰 (BlackBerry) 에

She typed:

Alice, answer the following question: (앨리스, 다음의 질문에 답하라)
What month is it? (지금 몇월이지?)
Where do you live? (어디 살지?)
Where is your office? (네 사무실은 어디에 있지?)
When is Anna’s birthday? (큰딸 앤나의 생일은 언제?)
How many children do you have? (네 아이들이 몇명이지?)

If you have trouble answering any of these, go to the file named “Butterfly” on your computer and follow the instructions there immediately.

만약 네가 이 질문에 어떤 것이라도 대답하기 힘들어지거든 네 컴퓨터에서 “나비”라는 이름의 파일을 열고, 거기서 시키는대로 지체없이 행하라. (p.119)

당시 그녀의 답은,
May
34 Poplar Street, Cambridge, MA 02138
William James Hall, room 1002
September 14, 1976
Three (p.122)
이었다.

모든 이들의 존경과 찬사, 항상 옆에 있고 싶어하고 한마디라도 건네보고 싶어했던 위치에서, 불과 2년만에 모든이들이 측은해하고 멀리하고 싶어하는 존재로 바뀌어가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속도를 늦추어 보려는 그녀의 노력이 순간순간 소름끼치게 한다.

2004년 11월에 그녀의 답은,
November
Cambridge
Harvard
September
Three (p.212)

발버둥치듯, 그녀는 가족에의 의존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병원측에 자신과 비슷한 early on-set 환자들의 정보를 얻고, 이메일을 보내고 해서 그들과의 그룹 (환자그룹) 까지 만든다. 그리고 Dementia Advocacy and Support Network International (국제적인 치매환자 지지모임)을 통해 다른 환자들과 채팅도 하면서 공감대를 만들어 간다. 이 대목이 특히 압권이다. 아마 나도 저 상황에서 저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깊은 공감에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나고 했다. 그러나 점점 그것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2004년 12월에는,
December
Harvard Square
Harvard
April
Three (p.226)

이후, 그녀는 더이상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아니 어쩜 이 질문조차 열어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2005년 6월,
환자그룹 멤버 중에 한 명인 Cathy 가 전화를 했다. 이메일을 보낸지 꽤 오래되었는데 왜 답이 없느냐, 새 멤버 2명을 찾았다, 별일없느냐 괜찮냐 걱정하는 전화이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괜찮지 않다. 아주 적은 양만 읽을 수 있고, 컴퓨터 자판을 실수없이 제대로 치는 건 이제 어렵다.

그녀는 컴퓨터를 키고 이메일을 열었다. 73개의 새편지가 와 있다. 힘들다. 하나도 열어보지 않고 껐다. 바탕화면에 3개의 폴더가 있다. “Hard Drive”, “Alice”, “Butterfly” 그녀는 “Alice” 를 클릭했다.

“Abstracts” (개요, 또는 논문 요약)
“Administrative” (교수행정)
“Classes” (수업)
“Conferences” (회의)
“Figures” (숫자 또는 통계자료)
“Grand Proposals” (기금마련을 위한 제안서)
“Home” (가정)
“John” (존-남편 이름)
“Kids” (아이들)
“Lunch Seminars” (점심시간 회의, 세미나)
“Molecules to Mind” (마음 속의 분자들. 일기장 혹은 단상)
“Papers” (논문, 문서…)
“Presentations” (프레젠테이션)
“Students” (학생들)

그녀는 그 폴더들의 안을 들여다 볼 자신이 없다. 대신에 그녀는 “Butterfly” 를 클릭했다. (p.270)


사랑하는 앨리스에게

이 편지는 네 정신이 말짱했을 때 네가 쓴거다. 만일 네가 이글을 읽는다면, 그리고 다음의 질문에 하나 혹은 그 이상 답을 할 수 없다면, 그건 네 정신이 더이상 말짱하지 않다는 뜻이다.

지금 몇월이지?
어디 살지?
네 사무실은 어디에 있지?
큰딸 앤나의 생일은 언제?
네 아이들이 몇명이지?

너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있다. 지나치게 너 자신-네가 사랑해 왔던-을 잃었다. 너는 지금 네가 살고 싶어했던 삶을 살고 있지않다. 이 병에는 좋은 치료법이 없다. 그러나 너는, 너와 너의 가족에게 가장 품위있고 공정하고 존경할만한 치료법을 선택했다. 지금은 더이상 너자신의 판단을 믿을수 없지만, 그러나 내판단-즉, 이전의 너의 판단-을 믿을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너, 알츠하이머가 너로부터 지나치게 많을 것을 앗아가기 이전의 너 말이다.

너는 아주 특별하고 가치있는 삶을 살아왔다. 너와 네 남편 존은 건강하고 훌륭한 세 아이를 키웠으며 그들 모두 세상에서 사랑받고 잘 살고 있다. 또한 너는, 하버드에서 도전적이고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연구성과를 거두어 길이 남을만한 업적도 남겼다.

알츠하이머 환자로서의 네 삶의 마지막 국면, 조심스럽게 선택한 이 마지막은 비극이다. 그러나 너는 결코 비극적으로 살진 않았다. 네가 살아왔던 방식, 그리고 네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해낸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자랑스럽다.

이제, 네 침실로 가라. 침대 옆의 파란색 램프가 놓여져 있는 검은색 탁자로 가라. 그 탁자의 서랍을 열어라. 서랍의 뒤쪽에 알약이 가득한 병이 하나 있다. 그 병에는 하얀 라벨이 붙어있는데, ‘앨리스를 위하여’하고 검정색 글씨로 쓰여있다. 그병안에는 알약이 아주 많다. 큰 컵의 물과 함께 그 알약 전부를 삼켜라. 전부를 삼켜야만 한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라.

잊어버리기 전에 지금 가라. 누구에게도 네가 하고 있는 일을 말하지 마라. 나를 믿어주길 바란다.

사랑을 담아서,
앨리스 호우랜드


그녀는 읽고 또 읽었다. 그녀의 편지는 그녀를 슬프고 자랑스럽고 힘있고 그리고 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무얼하려고 했는지 생각이 안난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컴퓨터 스크린을 들여다 보았다. 다시 읽고는 올라갔다. 침대 옆의 탁자 서랍을 열었다. 티슈, 펜, 포스트잇 페퍼, 로션병, 가래삭힘용 사탕, 치실, 동전 등을 끄집어내었다. 침대 위에 잔뜩 펼쳐놓고 하나하나 집어갔다. 티슈, 펜, 펜, 펜, 포스트잇 페퍼, 동전, 사탕, 사탕, 치실, 로션. (p.272)

“앨리스?”
“뭐?”
그녀는 뒤돌았다. 존이 문가에 서있다.
“뭐 찾고 있는거야? 여기서”
“응. 뭘 좀 찾고 있어.”
“난 사무실로 급히 돌아가야 해. 잊어버린 자료를 가지러 잠깐 왔어. 금방 다시 돌아올게.”
“응”
“아 참, 약 먹을 시간이다. 잊어버리기 전에 약 먹어.”
하면서 그는 그녀에게 한웅큼의 약과 물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하나씩 삼켰다.
“고마와” 그녀가 말했다.
“괜찮아. 내 금방 올게”
그는 빈 물컵을 받아들고 방을 나갔다. 그녀는 침대위 잡동사니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좀전처럼 슬프고 자랑스럽고 힘있고 편한 느낌을 느끼면서. (p. 273)

같은 달, 2005년 6월
그녀는 그녀가 박사과정 논문을 마지막으로 지도한 학생, Daniel Maloney 의 박사학위 수여식에 참가했다.


2005년 9월,
남편 존은, 자신이2004년 6월에 의사와 합의해서 Alice에게 복용시키기로 한 약 Amylix 에 대한 실험이 실패로 끝났기에 더 이상 복용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뉴욕타임즈 건강 섹션에서 읽었다.
그는 통곡하듯 소리내어 크게 울었다.

에필로그
그녀는 자신의 두딸이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로 그들과 손자들과 함께 지내는 장면으로 소설이 끝난다.

하버드대학 교수. 그건 지성을 대표한다.
알츠하이머. 그건 백치를 의미한다.
하버드대학 교수와 대척점(對蹠點)에 알츠하이머가 있다.

앨리스는 거침없이 정상에 도달했던 것처럼 그 반대의 지점까지도 단숨에 도달하고 있다.
현기증이 난다.

끝까지 품위를 잃지않으려고, 자존심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눈물겹도록.
책을 읽는 동안 결국 내가 그녀의 편이 되었다. 빈틈없이 세련되고 똑똑한 대학교수로서의 그녀가 아니라, 알츠하이머 환자로서의 그녀 말이다.
“됐어. 앨리스. 이제 좀 내려 놓아도 돼. 품위를 잃어도 돼. 그냥 백치로 살아도 돼. 그래도 돼.그럴 수도 있는거야. 전 인생을 통틀어 다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찌보면 과욕일지도 몰라.”
어느새 나는 그녀를 껴안고 울고 있었다.

특히 앨리스가 자신에게 쓴 유서를 보면서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아마 내 경우도 나이50 이라는 시점에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불치병 진단을 받는다면 저런 글을 써놓지 않을까 싶다. 쉬지않고 열심히 살아왔지 않은가? 이제 좀 쉴틈도 가져야지. 그런 후에 세상을 천천히 마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나 자신이라도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어야지. 잘했어. 잘 살아왔다구. 너는 최선을 다했다구. 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품위있게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을 때,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걸 뛰어 넘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은 똑똑한 사람들만 대접받고 살아야 하는가? 세상은 강한 사람들만 누리고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와 무엇이 다른가? 너도 나도 더러 약해질 때가 있다. 약한 내모습도 인정하고 끌어안을 수 있어야, 약한 타인을 진정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 게다. 자선이나 측은지심이 아니라, 비로소 사랑할 수 있을 게다.

세상은 그렇게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음과양, 남과여가 어우러져 있는 곳이 세상이듯이, 강한자와 약한자, 건강한자와 병든자가 어우러져 있는 곳이 세상이다. 다 품어안아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거다.

동시에 나의 생을 들여다 보았다.
인생을 하루에 비유한다면, 나는 지금 정오를 넘어 하오의 어느 시점에 있지.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면, 나는 지금 정상을 넘어 하산의 어느 지점에 있지.
공통점이라면, 떠오르고 지고, 오르고 내린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연상할 수 있는 것이 포물선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차함수의 전형적인 포물선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포물선을 그리기를 원한다.
가파른 기울기로 오르고, 아주 완만한 기울기로 내려가기를…
아니, 어쩌면 내려감없이 평평한 고원상태를 유지하기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고원상태로 생을 마감한 분들을 참 존경한다.

그러나 인생에는 상승국면과 하강국면이 있다. 어떤 형태로 찾아오든지 말이다.
하강국면이라 해서 주눅들거나 질투할 필요없다. 이미 정상을 넘었지 않았는가..
상승국면이라고 자만해서도 안되지. 그에게도 곧 하강국면이 기다리고 있다.

내 앞에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내야하는 과제가 생각보다 크게 놓여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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