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세계에 대해서 나만이 알고 있는 어떤 비밀을 나만의 언어로 형상화하고 싶었다.” (p.25)

- 이 문장은 벼락처럼 내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글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모름지기 문학이란 반항이고 저항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모든 진부한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가치들……따위는 다 나의 적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언어라는 도구로 나만의 세계를 스스로 창조하려는 야심을 가진 작가이기 때문이다.” (p. 32)

-맞아. 작가정신이란 기본적으로 반항이지.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야. 누워서도 보고, 옆으로도 보고, 내려다보기도 하고…. 반듯이 보는 세상만이 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갇힌 세계를 열어주는 이가 작가이지.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가? 같은 모습, 같은 시간에도 얼마나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가를 안내해 주는 이가 정말 작가이지.

“캠퍼스 가득 피어나는 봄꽃들의 합창을 보고 있으면 기쁘기보다는 슬펐고 젊디젊은 학생들이 넘쳐나는 교정의 활기찬 봄날이 꿈속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보기에 청춘은 참혹한 것이었고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찬 곳이었다.” (p.45)

- 젊음마저 없다면 그 참혹한 여정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청춘이 아름답다는 건, 노인들의 회상에서만 그러하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은 작가가 되지 못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소외시키면서 이 세계가 무엇이고 자신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방법으로 새롭게 규명해 보려고 하니까.” (p. 129)

- 나는 작가의 일탈에 관대하다. 그건 실험정신이고 작가적 고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소외시켜본 자, 그만이 사물들의 핵심에 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를 씻어주고 싶어. 부탁이야.” (p. 160)
“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눈꺼플에 입술을 대고 누르더니 뺨에 입을 맞췄다. 턱에 입술을 갖다 대고 목, 어깨, 가슴, 배 순으로 온몸을 천천히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그는 나를 한없이 소중하게 다뤘다. 눈물겹도록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몸짓으로 나를 애무하고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내 몸속에 들어왔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그는 조용하게 움직였지만 나는 큰 파도를 타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이 세상에 그와 나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중략) 그의 몸은 따뜻하고 슬펐다.” (p.161)

- 압권이다. 눈물이 난다.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섹스장면을 그려낼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있을까? 박경리씨의 『토지』중, 월선과 용이가 처음으로 사랑할 때의 장면에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되풀이 읽었던 감동이 다시 일렁인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섹스 장면, 그건 하나같이 남성적 관점이다. 읽어내기가 힘들다. 어쩜 저렇게 동물처럼 그려낼까? 이러고도 작가인가? 구역질이 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의 작가 문영심씨는 여성이 그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절절히 그려내고 있다.

진정 여성을 사랑하고 싶은 남성, 사랑하는 여성으로부터 지순한 사랑을 받고 싶은 남성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튀니지에 도착한 첫날부터 밤마다 호텔 방에서 혼자 울었다. 왜 눈물이 났는지 알 수 없었다.” (p.259)
“늘 몸담고 살던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지구의 한쪽 끝에서 그 깊은 밤에 내가 만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비로소 대면하게 된 훼손된 자아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두고 흘러내린 것이다. (p.261)

- 훼손된 자아와 정면으로 맞딱드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 용기와 행복을 전해주고 있는 작가에게 깊은 공감과 존경을 보낸다.

훼손되어 보지 않은 자는 유약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훼손된 자아와 맞딱드려보지도 못한 채, 때로는 위악과 위선으로 감추면서 가슴 속에 돌하나 품고 살아갈 것이다. 그 돌을 꺼내어 응시할 수 있는자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이 책의 작가 문영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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