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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선물, 북유럽 - 홀로 떠난 북유럽 5개국 여행기
윤길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12월
평점 :
'북유럽'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름다운 오로라와 피요르 지형? 잘 갖춰진 복지제도? 감각적인 디자인? 혹독한 날씨와 거친 바이킹의 전설? 아마 하나로 단정짓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매력적인 곳이 북유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다고 막연히 꿈을 품고 있던 차에, 작년 여름 드디어 북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생생한 자연과 선진적인 문화가 어우러진 북유럽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여행지였습니다. 떠나기 전부터 많이 기대해온 만큼, 짧은 일정을 쪼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까지 무려 4개국의 수도를 돌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자 했지만, 제게 주어진 열흘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은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행을 가기 전에도 관련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최근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 관광지로서는 인기가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론리 플래닛 같은 가이드북은 물론이고, [그리움은 모두 북유럽에서 왔다] 같은 여행 에세이 책들도 열심히 찾아읽어가며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을 다녀온 후, 좋았던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정리하며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또 막막해졌습니다. 역시나 자료가 너무 없어서 답답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신의 선물, 북유럽
책의 표지만 보면 굉장히 심플하고 담백합니다. 이런 저런 설명 없이 중요한 키워드만 제시합니다.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을 배경으로 제목과 저자, 부제가 새겨져 있습니다.
저 역시 '혼행'을 다녀와서인지 '홀로 떠난' 여행기라는 부제가 유독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자는 30여 년의 공직을 마친 후 35일간 혼자서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아일랜드 등 5개 나라를 여행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집을 떠나 한 달 이상 먼 타지에서 지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더군다나 시니어로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에서 홀로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할텐데, 저자는 주변의 만류에도 과감하게 도전하게 됩니다. 책의 앞 부분에 적힌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감탄하기도 했고 스스로 반성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문구에서 이제까지 용기가 없어 차마 시도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세계를 향한 보다 넓은 안목을 위한 도전의 기회를 갖기를기대하는 마음에서"
구성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듯 합니다. 우선, 여행을 떠나기 전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주요 여행기록으로 각 나라별로 나누어 총 다섯 개의 챕터가 일정 순으로 나열되며, 마지막으로 여행을 마친 후 소감과 부록으로 여행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사진도 풍성하게 담겨있고 레이아웃이나 글자의 크기 같은 것들도 깔끔하게 편집되어 있어 가독성이 좋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저자의 문체도 읽기 쉽습니다.
호수와 삼림의 나라, 핀란드
본격적인 관광 겸 여행에 나서기 전 각 나라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지리적 환경, 인구수 및 특이사항, 핀란드 출신 위인 또는 유명인, 그 외 문화 등 저자가 꼼꼼하게 조사했다는 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의 경우 특정 개인의 경험이나 그에 따른 느낌, 개인적인 생각 등이 중심을 이루는데, 그런 부분도 물론 중요하고 재밌지만, 여행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 대한 배경지식이 바탕이 되어야만 이해하거나 공감할수 있는 코드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구요.
아무래도 저 역시 북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와서인지 제 경험과 비교하면서 보게 되는데, 제가 가보지 못했던 소도시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어 그 부분도 좋았습니다. 도시 하나만 하루 이틀 머무르면서 그 나라, 그 곳의 사람들에 대해 판단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겠죠. 좀 더 많은 경험들을 통해 제 시야까지 넓어지는 기분입니다. 저자는 핀란드에서 포르보, 이마트라, 콜리 국립공원, 라플란드 등을 거쳐갑니다.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은, 수오무살미 지역의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레이오 켈라의 작품으로 도로변 들판에 허수아비처럼 나무 십자가를 천 여 개 세우고 그 위에 옷을 입혔습니다. 언뜻 사진을 보면 오싹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어딘지 모르게 회한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핀란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산타클로스와의 만남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저 역시 꼭 가보고 싶었지만 빠듯한 일정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역시 꼭 갈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언젠간 꼭 가보고 싶네요.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 스웨덴
스웨덴은 대부분 수도 스톡홀름 중심으로 여행을 한다고 합니다. 저도 그랬고, 저자 역시 스톡홀름 그 중에서도 감라스탄 중심으로, 나가더라도 그 근교인 마리에프레드 정도로 스웨덴 일정을 진행하였습니다. 스톡홀름의 스웨덴 왕궁, 바사호 박물관은 저 역시 여행하며 방문했던 곳이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감라스탄의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에 얽힌 이야기는 몰랐던 부분이었습니다. 그저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에 빠져 사진을 몇 번 찍었는데, 책에 따르면 1520년 덴마크의 왕이었던 크리스티안 2세가 이 광장에서 자신의 권력 강화와 스웨덴 항거 진압을 위해 스톡홀름 피바다라는 대학살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렇게 슬픈 역사를 알고 나니 그 곳에서 찍어온 사진을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할듯 합니다.
명소에 대한 정보나 감상 외에 여행자라면 한 번쯤 겪을 법한 소소한 트러블이나 에피소드들 역시 안타까운 동시에 흥미롭습니다. 여행 중 카메라가 고장나는 사고가 발생하거나 보관함을 잘못 쓰는 실수같은 것들은 저도 비슷하게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막상 제가 당했을 때는 굉장히 괴롭고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여행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는데, 책을 통해 읽고 있으니 이마저도 여행의 특별함인 것 같다 느껴집니다.
동화의 나라, 덴마크
저는 나라(도시)간 이동할 때 주로 비행기를 이용했습니다. 한 번 크루즈를 이용한 것을 제외하면, 일정이 촉박했기 때문에 최대한 이동시간을 줄일수 있는 저가 항공을 이용했는데, 책속에서의 이동수단은 꽤나 다양하게 느껴졌습니다. 크루즈는 물론, 스웨덴에서 덴마크를 향해 갈 때는 기차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기차 여행은 이처럼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도 한 번 가보았던 친숙한 명소들이 책에서도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그래서인지 책에서도 인상깊게 느껴졌던 부분이 바로 '뉘하운 운하 투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삶의 터전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순간 속에는 그저 세심한 아름다움으로 남는 풍경들이 몇 번이고 지나쳐갑니다. 저자의 말대로 운하 투어는 여유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뿐더러 코펜하겐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을 대부분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강추할만 합니다.
하나 더, 티볼리 공원 또한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디즈니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전세계의 놀이공원들의 모태라고 할 만한 티볼리 공원은 그 역사에 맞지 않게 발랄하면서 트렌디한 느낌이 물씬 납니다. 저자 역시 슬롯머신에서 '대박'을 누려서 특별한 곳으로 기억에 남지 않을까요.
덴마크를 대표하는 사람 하면 몇 명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안데르센이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요. 안데르센은 퓨넨섬의 오덴세에서 태어나 배우가 되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배우가 아닌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저자는 이러한 스토리 역시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피오르드의 나라, 노르웨이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을 가진 나라입니다. 주변 다른 나라들보다 노르웨이의 자연은 좀 더 마더네이쳐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저자 역시 노르웨이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며 '노르웨이의 자연은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그 엄청난 자연의 정점에는 피오르드 지형이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투어버스를 타고 콩스베르그를 거쳐 노르웨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시라는 베르겐을 지나 송네피오르드에서 크루즈투어를 합니다. 이러한 순간을 남긴 사진이 책에도 실려 있지만, 역시 실물로 마주했을 때의 전율이나 아우라 같은 것들이 사진에는 느껴지지 않는 듯 합니다.
피오르드 투어를 제외하고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도 잊지 못할 명소들이 몇 곳 있습니다. 갈색 치즈 두 덩어리라고도 불린다는 오슬로의 시청사 건물이 그 첫 번째입니다. 특히 시청사의 1층 넓은 홀은 어딘지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대형 벽화로 둘러싸여있습니다. 벽화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던 먹먹함은, 독일군에게 점령당했을 때의 고뇌를 담아내고 있다는 설명을 듣자 완전하게 이해됩니다.
또 다른 명소는 비겔란 공원입니다. 제가 여행을 갔을 때는, 조각보단 회화에 관심이 더 많았어서 굳이 비겔란 공원을 가야할까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다녀왔을 때 후회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이 곳의 작품들을 보고 여러 이야기를 읽다보니 점점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그 중에서도 17미터 높이의 기둥으로 된 모노리텐이라는 작품이 첫 번째로 꼽힐 것입니다.
녹색의 나라, 아일랜드
사실 제 여행은 앞서 봤던 네 군데에서 끝이었고, 아일랜드에 대한 이미지는 꽃보다 청춘 정도로나 남아 있어서 책을 읽기 전에는 혹시 지루하거나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고민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이 담긴 사진이나 현란한 아이리시 댄싱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을 볼 때면 그 어느 챕터보다 몰입하게 됩니다.
모허 절벽 같은 경우 마치 영화에서 본 듯한 모습에 괜시리 사진만 봐도 설레면서 동시에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됩니다.
"세찬 바람과 추위 때문에 절벽 언덕에 있는 오브라이언 타워엔 가지 말까 생각도 했지만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여기 오겠는가 생각하니 힘이 솟는다"
위와 같은 문구를 읽고 있자니 제 여행관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저 역시 여행을 다닐 때면 지친 순간도 오고 계속되는 피로 누적에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괜히 입장료나 교통비 같은 비용이 아까워서 갈까 말까 해볼까 말까 고민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오겠어', '이때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어' 라고 생각하고 힘내서 도전하게 됩니다.
영화로도 유명한 바로 그 '타이타닉' 호가 기항했던 곳, 코브항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극적인 역사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인기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곳을 방문하며 저자가 소개하는 타이타닉에 얽힌 이야기들 역시 흥미진진하면서도 당시 묘사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느껴져 좋았습니다.
이밖에 문학 작품 '더블린 사람들'을 통해 지명만 익숙해진 더블린이나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유명한 트리니티 대학의 도서관과 캠퍼스 전경 등을 보고 있으니 저 역시 덩달아 아일랜드를 여행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책으로 떠나는 간접 여행을 마무리하며
북유럽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여행지일 것 같습니다.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와서, 깊이 있는 정보도 많이 공유되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었고,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있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던 여행지였던 만큼, 책에 대한 기대도 컸었는데, 역시 제가 본 부분은 극히 일부였다는 점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홀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 부담감이 컸던 분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습니다. 황당한 사고도, 아쉬웠던 기억도, 언젠가는 혼자만의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