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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존 던의 시처럼 이제 나도 조용히 헤어지는 데 익숙해질 나이가 되었다. 죽음이 이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울 때가 되었으며, 수많은 이별 연습을 통해 나 자신도 존 던의 시처럼 내 영혼에게 조용히 “이제 그만 떠납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지혜와 경륜을 배울 때가 된 것이다.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영혼에게 가만히 가자고 속삭이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 인연, 14쪽, 최인호,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1.
담담한 글로 시작되는 책, <인연>은 2010년 1월 발간된 최인호의 산문모음집이다. 조용히 헤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지금 암투병 중이다. 2007년 봄 침샘암을 발견하고, 수술과 항암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2008년 8월부터 7개월간 집필 활동을 중단한 채 통원치료를 받다가 2009년 말에는 <가족> 연재 종료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가족... 이 짧은 단어는 최인호의 모든 것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깊은 단어다. 1975년부터 35년 6개월 동안 ‘월간 샘터’에 연재하다가, 2010년 올해 1월 막을 내린 그의 소설 이름이 <가족>이기 때문이며, 이번 산문집을 통해 자신의 지나온 육십 육년 세월을 되짚어 ‘인연’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는데, 가장 소중한 연결고리가 ‘가족’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인호...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최연소 신문 연재 소설가, 가장 많은 작품이 영화화된 작가로서 그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로 그의 곁을 지켜왔던 것일까? 사랑을 남겨 두신 채 먼저 가신 아버지, 자식과 세월을 망설임없이 바꾸셨던 어머니, 언제나 나를 꿋꿋히 일으켜 세운 형, 은은히 아름다운 완두콩 꽃 닮은 아내... 소설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가족이란 ‘나의 영원한 동지이자 우군이자 나의 어깨뼈이며, 나의 척추와 내 머리에서 자라나는 검은 머리카락이자 나의 눈동자, 내 몸을 이루는 그 모든 기관 (236쪽)’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노(老)작가의 진심어린 육십 육년 지난 인생을 조심스럽게 덮으며, 투병의 고통 중에서도 우리를 위해 마련한, 잔잔한 미소가 담긴 그의 인사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 인생의 밤하늘에서 인연의 빛을 밝혀 나를 반짝이게 해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삼라와 만상에게 고맙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009년 초겨울 (머리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