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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민주적 사회주의’를 자신의 신념이자 목표로 선택하고 ‘전체주의’를 적으로 규정한 뒤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에릭 블레어 Eric Blair)의 「동물농장 Animal Farm」을 이해하기에, 옮긴이 도정일의 작품해설은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그의 해설을 통해 작품 성격을 먼저 들어 보죠.
풍자 Satire는 무엇보다 당대성의 서사 장르이다. 풍자가 물어뜯고 비꼬고 우스갯감으로 만드는 것은 그 풍자가 생산되어 나온 당대 사회의 실존 인물, 사회환경과 제도, 이데올로기, 사건, 편견 같은 것들이다. 당대의 것들에 대한 비판, 공격, 희화화가 아니라면 풍자는 사실상 무의미하다.(147쪽) 풍자문학으로만 읽었을 때 「동물농장」의 화살은 소련, 더 정확히는 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라는 과녁을 향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146쪽) 그런데 「동물농장」이 특정의 시대에 얽매이는 역사적 풍자이기만 한가? 이 지점에서 현대 독자는 「동물농장」이 시대적 배경문맥에 묶인 이야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와 함의의 폭이 훨씬 넓은 우화 Fable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따라서 우화 장르에 합당한 읽기의 방법과 수용태도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시대적 사회풍자의 경우와는 달리, 우화는 당대의 현실문맥에 반드시 매이지 않아도 되는 서사 형식이다.(150쪽)
옮긴이의 말처럼 「동물농장」이 단지 풍자문학으로만 구분된다면 공산주의가 붕괴한 요즘, 작품의 중요성은 무척이나 줄어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화의 성격을 가진 작품으로써 「동물농장」은 21세기 우리나라에서 읽혀지기에도 그 뜻하는 바가 작지 않습니다.

존즈의 메이너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던 수많은 동물들은 평소 비참하고 고달픈 삶에, 늙은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유언에 따라 반란을 일으킵니다. 농장주인과 하인들은 쫓겨나고, 동물들은 동물농장이라 이름을 바꿔 희망찬 미래를 꿈꿉니다. 그들의 지도자는 수퇘지인 스노볼과 나폴레옹인데, 스노볼은 풍차를 건설해서 동물들에게 좀 더 편한 농장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당초 반대하던 나폴레옹은 개들을 키워 이상주의자 스노볼을 위협하여 추방하고, 반대하거나 적극 추종하지 않는 동물들을 차례로 처형해서 독재자로 군림합니다. 나폴레옹은 언제 그랬냐는 듯 풍차건설을 명령하고 한 번은 바람으로, 두 번째는 농장을 찾으려는 존즈에 의해 무너지지만, 동물들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노력합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일만 하던 말인 복서도 결국 과로로 쓰러지고, 목초지에서 은퇴를 꿈꾸던 복서는 폐마로 도살업자에게 넘겨집니다. 수년 후 풍차는 완성되어 생산은 향상되지만, 돼지 이외의 기타 동물들 생활은 존즈 시절에 비해 나아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착취에서 벗어나 모든 동물들의 평등한 행복을 꿈꿔 왔던 동물동장. 그러나 다른 농장주들과 두 다리로 서서 건배를 주고 받는 돼지들의 모습에서 이제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가를 식별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정리해 본다면, 풍자로 본 「동물농장」은 옮긴이의 설명에 따라 아래의 표같이 스탈린시대 상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존즈(메이너 농장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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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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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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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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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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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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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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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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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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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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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서(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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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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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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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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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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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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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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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시대의 대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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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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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의 독일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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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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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5개년 계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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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즈(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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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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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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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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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화로 읽는다면, 나폴레옹을 부패한 독재자로 바꿔 볼 수도 있겠죠. 볼셰비키를 의미하는 돼지들이나, 프롤레타리아트로 비유된 복서(말), 비밀경찰로 풍자된 개들에게서도 오늘날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진 않습니다.
글쓴이 조지 오웰이야 ‘무비판적 맹목적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비판적 사회주의자였고, 그의 비판적 양심은 그가 진실이라 생각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제국주의이건 사회주의이건 혹은 그 무엇이건 간에 언제나 화살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154쪽)’지만, 아직 정치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부족하고, 뚜렷한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한 저에게 모든 동물이나 각각의 사건을 작품에서 현실로 연결 짓는다는 건 물론 욕심이겠죠.
그러나, 종교인이나 지식인을 떠오르게 만드는 아래의 「동물농장」 속 짧은 글귀에서도 책이 쓰여 졌던 1944년과 책을 읽는 2010년을 비교해 오늘의 우리를 반성토록 합니다.
그는 전혀 변한 데가 없었고 여전히 일에는 손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전 버릇 그대로 그 <슈가캔디 마운틴>이라는 하늘나라 얘기도 계속했다. 그는 나무 등걸에 올라앉아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자기 얘길 들어주는 동물은 누구든 붙들고 한 시간씩 그 하늘나라 얘기를 했다. 「저기 저 위에 말이야, 동무들」그는 커다란 부리로 하늘을 가리키며 엄숙하게 말하곤 했다. 「저 검은 구름 너머에 말야, 우리 불쌍한 동물들이 영원히 노동에서 해방되어 편안히 쉴 수 있는 슈가캔디 마운틴이 있어!」자기가 언젠가 한번 하늘 높이 날다가 실제로 그 나라에 들어가본 적이 있고 거기서 사시장철 클로버와 아마씨 케이크가 자라는 풀밭과 각설탕이 자라는 울타리도 제 눈으로 보았다고 그는 말했다. 많은 동물들이 그 말을 믿었다. 그들 생각으로는 지금 그들이 배고프고 몸 고달픈 이승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어딘가 더 나은 세상이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는 건 너무도 옳고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한 가지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까마귀 모지즈에 대한 돼지들의 태도였다. 돼지들은 슈가캔디 마운틴에 대한 모지즈의 얘기가 모두 헛소리라며 경멸조로 말하면서도 그 모지즈가 농장에 머물도록 허락했을 뿐 아니라 일도 하지 않는 그에게 매일 맥주 1/4 파인트 씩을 분배해 주었다. (102~103쪽)
당나귀 벤자민은 농장에서 나이가 가장 많고 성질도 제일 고약했다. 그는 좀체 입을 떼는 일이 없었지만 뗐다하면 시큼씁쓸한 논평을 내뱉기 일쑤였다. 이를테면 하느님이 파리를 쫓으라고 그에게 꼬리를 달아준 모양이지만 자기로선 차라리 파리도 없고 꼬리도 없었으면 좋겠어, 라는 식이었다. 농장 동물들 중에 유일하게 절대로 웃지 않는 것도 그 벤자민이었다. 왜 웃지 않느냐 물으면 웃을 만한 일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내놓고 인정한 적은 없지만 그는 내심 복서를 존경하고 있었다. 일요일이면 그들 둘은 과수원 너머 작은 목장에서 말 없이 나란히 풀을 뜯곤 했다. (9쪽) 그날 무밭에서 돼지 한 마리의 감독을 받아가며 무 떡잎을 뜯어내고 있던 동물들은 농장 축사 쪽에서 벤자민이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달음박질로 뛰어오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동물들이 흥분한 벤자민을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니, 도대체 벤자민이 달음박질치는 걸 본 것도 그게 처음이었다. 「빨리, 빨리!」 하고 벤자민은 고함을 질렀다. 「빨리 와! 복서를 끌어가고 있어!」 동물들은 돼지의 명령을 기다릴 생각도 않고 일제히 일손을 멈추고는 농장 건물 쪽으로 내달았다. (1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