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고래바위 - 어른이 읽는 동화
이순원 지음, 홍원표 그림 / 굿북(GoodBook)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푸른 산맥 꼭대기, 햇볕과 비, 바람과 눈 속에 커다란 고래바위는 언젠가 바다에 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의 그림자를 가진, 작은 새 한 마리가 대왕고래 살고 있는 파란 바다를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고래바위는 번개와 천둥에 두 동강나 굴러 떨어져 너르고 평평한 산중턱 너럭바위가 됩니다. 이번엔 지진이네요. 고래바위는 깨지고 부서져 계곡까지 떠밀려가 뾰족 바위가 되었습니다. 바다를 향하는 고래바위가 꿈을 잃은 건 아닐까요?

‘고래바위는 이제 자신이 바로 그 바위였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몸뚱이의 반이 아직 산 위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지난날 고래바위의 영광은 사라지고 말았다. (65쪽)’

   ‘처음의 꿈은 고래바위의 온전한 모습으로 바다에 가는 것이었다. 그래야 진짜 고래와 몸도 대보고 키도 맞추어볼 수 있었다. 그 꿈은 자신의 몸처럼 산산조각 깨어져 부서졌다. (98쪽)’

     계곡을 따라 큰 물살, 작은 물살에 쓸려가며 징검돌로, 빨랫돌로, 그리고 주먹돌로… 고래바위는 아직도 작아지기만 합니다. 하지만, 송어와 연어를 만나고, 동그란 친구 돌의 이야기를 들으며 꿈과 바다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희생을 치러야 저들이 올라온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바다에 대한 꿈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몸은 점점 닳아 작아지고 있었다. (137쪽)’

   ‘그때서야 주먹돌은 애초 고래바위에서 강 중간까지 내려오는 동안 처음으로 자기 몸이 작아진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래, 조금만 더 컸다면 나는 바다로 갈 수 없었을 거야.” (151쪽)’

     넓은 강에 다다른 고래바위는 조약돌이 되었답니다. 공깃돌, 모래가 되어 이젠 반짝이는 명개흙이 된 고래바위. 비록 몸은 산산조각 깨어져 부서졌지만, 드디어 그토록 꿈꾸던 바다에 도착합니다.

‘너를 처음 만난 뾰족 바위 시절엔 내 몸이 자꾸자꾸 줄어드는 게 안타까웠어. 그러다 한 알의 모래가 된 다음에야 알았어. 작아지지 않고는 올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170쪽)’

   ‘분말처럼 흔적조차 없이 녹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작은 몸으로 바다 전체를 끌어안자, 바다가 명개의 마음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래 그리워했어. 너를.” “그래, 나도 네가 오기를 기다렸어.” 흰 명개가 말하고 바다가 말했다. (182~183쪽)’

     누구나 꿈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젊은 날, 저 역시 세상을 다 가질 거라 꿈꾸곤 했습니다. 그래서 고래바위마냥 번개와 천둥, 물살에 휩쓸려 작아지는 제 자신을 미워하기도 했죠. 하지만 다행입니다. 깨지고 부숴 진 건 제 꿈이 아니라 제가 가진 욕심이었으니까요.

     바다를 향해 가면서 행여 작아지는 것에 슬퍼할 우리에게, 글쓴이는 이렇게 토닥여주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한 세상을 사는 일도 이렇지 않나 싶습니다. 처음 가졌던 마음 안의 욕심들을 살아오는 길섶에 하나하나 버리고 비워가며 마침내 더 큰 세상을 만나고, 더 큰 자기를 완성해 가는 것이 아닐까요? (5쪽)”

     세상을 다 가진다는 것. 붉게 물든 노을 녘, 꼭 커다랗고 단단한 몸뚱이로 바다를 맞이하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군요. 세상 속으로 내가 녹아 들어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바다와 만나는 올바른 방법일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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