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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토 씨 ㅣ 모두를 위한 그림책 24
다니엘레 모바렐리 지음, 알리체 코피니 그림, 황연재 옮김 / 책빛 / 2019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케렌시아’는 원래 스페인어로 애정, 애착, 귀소본능, 안식처 등을 뜻하는 말로, 투우 경기에서는 싸움 중에 소가 잠시 숨을 고르면서 쉬는 장소를 의미한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바쁜 시간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케렌시아’는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잠시 쉴 수 있는 휴식처와 같은 곳이다.
‘케렌시아’는 호텔의 스위트룸이나 풀빌라 같은 비싼 곳이 아니어도 된다. 나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곳, 너무 빨리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문득 들 때 잠시 멈춰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장소이면 된다. 『첫 번째 질문』 (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 천개의 바람)이라는 그림책은 질문 형태로만 이루어진 시 그림책이다. 책을 펴면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라는 물음이 훅 다가온다.
질문을 받고 나서야 내가 하늘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본다. 바쁜 아침 시간에 아이들을 챙기고 서둘러 출근하느라 하늘을 가만히 바라본 적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고, 옆을 보는 시간조차 내기 힘든 사회에서 자신만을 위한 ‘케렌시아’는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누군가가 “너의 케렌시아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서재방과 동네 책방,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카페(체인점은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답하겠다. ‘케렌시아’가 공간과 시간을 같이 의미한다면 가족이 잠든 ‘조용한 밤’도 거기에 포함시켜야겠다. 마리 도를레앙의 『어떤 약속』에 나오는 그런 조용한 밤 말이다. 학교와 가정 또는 풀리지 않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몸과 마음이 완전히 소진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자기 만의 ‘케렌시아’를 찾아야 한다. 조용한 시공간 속에서 내면의 에너지를 채우고,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말이다.
『포르투나토 씨』는 우리나라에 소개된 다니엘레 모바렐리의 첫 번째 그림책이다. 처음 책빛 출판사에서 그림책 소개를 보았을 때 ‘포르투나토’가 무슨 뜻일지 궁금했다. 나같이 궁금해 할 독자들을 위해 그림책 속에 친절하게 설명을 넣어주는 센스를 보여준다. 포르투나토는 이탈리아어로 ‘행운이 있는’이라는 뜻이다. 제목이 포루투나토 씨인 것을 보니 그림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엄청난 행운이 따르는 사람인가 보다. 그림책의 표지를 보면 주인공이 가운데에 있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유명 화가의 그림, 귀한 화병, 다이아몬드, 왕관 등이 보인다. 물질 사회의 기준에서 본다면 주인공은 백퍼센트 ‘포루투나토’란 이름을 달기에 충분하다.
집은 방이 너무 많아 길을 잃을 정도고 지하에는 스케이트장과 스키장이 있고 다락방은 열대 정글로 이루어져 있다. 무려 초인종 소리를 오케스트라가 대신해준다. 정원에는 동물원, 호수, 피라미드, 놀이공원, 로켓, 요정들이 사는 마을도 있다. 이 정도면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의 외면만 보고 있자면 빌게이츠와 래리페이지, 팀쿡, 제프 베조스도 깜짝 놀라겠다. 나 역시 그림을 보다 보니 부러운 생각이 스물 스물 올라온다.
수십 대의 비행기와 열기구, 기차, 유람선, 잠수함을 가지고 있지만 포르투나토 씨는 오로지 빨간색 스포츠카만 타고 다닌다. 나도 돌이켜보면 사놓고 입지 않는 옷과 쓰지 않는 물건들이 꽤 있다. 스케일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물질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한동안 유행했던 ‘미니멀라이즘’ 도 이런 문제 인식과 맞닿아 있다. 포르투나토 씨는 모자도 수없이 많지만 오직 한 가지 모자만을 쓰고 다닌다. 앞표지와 면지에 나와 있는 그의 모습을 살펴봐도 같은 모자만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모자가 날아가버리면서 이야기는 2막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종일 모자를 찾다가 풀밭에 쓰러져 잠든 포르투나토 씨. 다음날 일어나 마을로 걷는데 걸음을 아주 천천히 걷는다. 그림책에서는 이 장면이 애니메이션의 스톱 모션처럼 겹쳐서 그려진다. 그림에선 보이지 않지만 아마 이때부터 옷 속에 달팽이 껍질이 생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게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보니 등에 달팽이 껍질이 생겨버린 포르투나토 씨.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회사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믿었던 병원에서조차 서로 책임을 미루기 바쁘다. 일반 병원에서는 반은 달팽이니 동물 병원으로 가라 하고, 동물 병원에서는 반은 사람이니 일반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양배추 잎을 먹으며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는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물질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그의 시선이 처음으로 사람을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따뜻한 집이 그리워진 그는 아주 천천히, 값비싼 물건이 하나 없는 등 껍데기 속으로 들어간다. 비록 자세는 불편해 보이지만 마지막 그림에 보이는 그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다비드 칼리의 『최고의 차』처럼 『포르투나토 씨』 역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비슷하다. 다만 『최고의 차』의 주인공은 편안했으나 물질적 욕심이 생기면서 자신의 삶이 얽매여가는 입장이라면, 『포르투나토 씨』의 주인공은 원래 부자였으나 달팽이 껍질이 생기면서 삶의 본질적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처음 접하게 된 다니엘레 모바렐리의 그림책이지만 앞으로 이 작가의 그림책을 찾아서 읽어보게 될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이 좋은 출판사를 만나 어서 빨리 우리한테 다가왔으면 좋겠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림책도 우리들의 ‘케렌시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포르투나토 씨』를 만나 참으로 다행이다. 2020년을 시작하는 첫 달에 이 책을 통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눈은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포르투나토 씨도 달팽이 껍질을 벗고 사람들 속에서 웃음 지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