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없는 뽑기 기계 - 2020 비룡소 문학상 대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곽유진 지음, 차상미 그림 / 비룡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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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비룡소에서 서평 이벤트를 한다고 해서 바로 신청을 했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서평이벤트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문자를 받은 지 3일 후에 송방순 작가의 <내 마음 배송완료>처럼 집으로 배송이 되었네요.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받자마자 삼남매에게 바로 읽어줬습니다. 책의 분량은 전체 66쪽 정도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적절한 글밥을 가지고 있는 창작 동화입니다. 책의 앞표지를 보면 한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가 뽑기 기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네요. 그 주위에는 신비한 색감을 뽐내는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고요. 전체적인 그림체는 부드러운 느낌으로 책 내용도 부드럽게 전개될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뒷표지를 살펴보니 제 9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으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네요.

어느 처음 보는 문구점 앞 '꽝 없는 뽑기 기계'

오백 원짜리 동전을 넣고 돌리면 펼쳐지는 마법 같은 이야기

<꽝 없는 뽑기 기계>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빠 바지에서 땡그랑 하고 동전이 떨어졌어. 500원짜리 동전이었어.

'분명히 아까 주머니를 확인했는데......'

동전은 내 주머니에 넣고 바지는 헌옷 수거함에 넣었어. 쿵 하고 소리가 났어.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이 문장들이 책을 끝까지 덮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어찌나 슬프게 다가오던지요. 아빠 바지를 헌옷 수거함에 넣는 희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작가는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를 음악 빠르기 기호인 렌토처럼 느리고 무겁게도, 프레스토처럼 매우 빠르게도 끌고 가지 않습니다. 그저 어린 희수의 눈과 마음을 따라 모데라토 정도로 독자들을 천천히 책 속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학교 앞 문구점에 있는 뽑기 기계에서 1등이 나오면 변신 공룡 로봇인 '다이노폴리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희수도 친구가 1등을 뽑아 장난감을 받는 것을 보고 '다이노폴리스'를 뽑기를 간절히 원하지요. 그런 희수가 500원짜리 동전을 가지고 있고 뽑기 기계가 눈앞에 있는데도 뽑기를 하지 않습니다.

희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책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시원한 바람'을 이용해 투명하게 넘나듭니다. 현실에서 환상의 세계로 넘어가는 장면이 큰 사건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이지요. 처음 보는 곳에서 보게 된 꽝 없는 뽑기 기계와 어느새 나타난 남자아이. 낯선 장소에서 처음 본 남자아이는 뽑기를 망설이는 희수에게, 뽑기를 좋아하는 것 알고 있다고 얼른 뽑아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희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뽑는 것을 망설이네요.

나는...... 난 뽑기를 하면 안돼.

남자아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뽑기 하는데 무슨 겁을 먹느냐는 남자아이의 툭 던지는 격려에 희수는 뽑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뽑기를 드르륵 돌리니 1등 종이가 나오게 됩니다. 문구점 안에 들어가서 주인 아저씨를 불러도 아무도 없고, 단지 이런 말이 써져 있는 상자만 놓여 있습니다.

'1등 상품! 알아서 가져가도 괜찮음' 희수는 이 가게가 이상하고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1등 상품이 무엇인지 궁금하긴 합니다. 과연 1등 상품은 무엇일까요? 희수의 큰 기대와는 달리 1등 상품은 누가 사용한 것 같은 칫솔 2개. 희수는 실망해서 칫솔을 버리려는 마음도 먹지만, 남자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그냥 칫솔을 가져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환상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희수를 데리고 나오는 장치는 '알람 시계'입니다. 알람 시계가 울리고 희수는 미술치료 학원을 갈 시간입니다. 하지만 희수는 어쩐 일인지 한번도 미술 치료 학원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치과처럼 미술 치료 학원도 무서운 마음이 드니까, 그런데 희수는 왜 미술치료 학원을 다녀야 하는 걸까요? 책의 반절이 지나왔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발생합니다.

작가는 수거함에 버린 아빠의 바지, 꽝 없는 뽑기 기계, 미술치료학원 등 희수를 둘러싼 다양한 장치를 이곳저곳 펼쳐놓았습니다. 희수가 놀이터에서 영준이 엄마를 만나는 장면도 한 부분인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가족 외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선택적 함구증에 걸려버린 것이지요.

집에 오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고 언니의 방문은 굳게 닫혀있습니다. 독자들이 느끼는 이상한 기류와는 달리 집안에 흐르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던 언니는 칫솔과 치약을 떨어트리며 갑자기 큰소리로 울어버립니다.

이제 우리 엄마 아빠 칫솔이 없어.

이제야 머릿 속을 감싸고 있던 안개가 걷혀집니다. 아니 이미 대충은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다만 삼남매를 가진 아빠 입장에서 제발 아빠와 엄마가 없는 상황은 아니길 빌었어요. 휴... 그런데 이제 명확해졌네요. 집안에 흐르는 기류가 왜 따뜻하면서도 이상하게 신경 쓰였는지 말이지죠. 희수가 뽑았던 1등 선물인 칫솔 2개는 엄마와 아빠의 칫솔을 상징하는 것이었나 봅니다.

희수는 500원을 가지고 다시 한번 꽝 없는 뽑기 기계를 뽑으러 가고 거기에서 이번엔 여자 아이를 만납니다. 어제 봤던 남자 아이는 어디있냐는 희수의 질문에 여자 아이는 이렇게 답을 해요.

글쎄, 걔는 이제 안 보일지도 몰라.

그리고 어제 남자아이처럼 뽑기를 하라는 여자아이의 말에 뽑기를 하고 이번에도 1등이 나옵니다. 조금은 기대하고 있는 희수에게 이번 1등 상품도 낡은 책과 색연필입니다. 아마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어렸을 때 아빠와 엄마의 모습인 것 같아요. 실제로 희수가 꿈을 꿨을 때 본 엄마의 옷과 문구점에서 만난 여자아이의 옷이 같았으니까요.

희수 가족이 여행을 가던 중 희수가 뽑기를 해야 한다며 떼를 씁니다. 결국 학교 앞으로 차를 돌려서 가던 중 사고가 나고 그 사고로 엄마와 아빠는 돌아가시고 희수와 언니만 남게 됩니다. 희수는 자기가 뽑기를 하자고 했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죄책감을 마음 깊은 곳에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뽑기를 할 수 없다고 하고 언니가 울 때도 달래주러 가지 못하고 식탁에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이지요. 휴...만약 내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견딜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희수의 가족들은 어린 희수가 다시 설 수 있도록 옆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희수를 대해줍니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지 않고 희수의 탓으로 돌리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희수가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가족들의 격려에 희수 역시 힘을 냅니다. 무서워서 가지 못하던 치과도 가고, 영준이 엄마에게 저번에 먹은 라볶이도 감사하다고 말하고, 오랜 만에 학교에 가서 교실 문을 열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 동화책은 처음 읽었을 때와 두번째 읽었을 때 느껴지는 맛이 또 다릅니다. 처음 읽었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다시 읽으니 내 마음속에 콱 들어오더라고요. 그러면서 희수의 마음이, 언니의 마음이, 가족들의 사랑이 칸타빌레처럼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짧은 단편동화지만 그 안에서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다림과 격려, 응원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 이 글은 비룡소 서평이벤트에 참여해서 올리긴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용으로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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