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294
주나이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9월
평점 :
'굉장히 두껍네!'
주나이다 작가의 <길> 이라는 그림책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이다. 초등 그림책 신작 읽기 모임에서 그림책 서평단을 모집하기에 신청했다. 룰렛을 돌렸고 당첨이 되었다. 갑자기 나르시시즘이 발동한다. '역시 난 운이 따르는 사람이군'이라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머리에 떠오른다. 정유정 작가가 <완전한 행복>이라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르시시즘은 굉장히 위험한 거라고 했는데... 이제 자제를 좀 해야겠다.
일반적인 그림책과는 다르다. 무엇이 그리 다르냐 묻는다면 직접 구입해서 보는게 좋다고 말씀드려야겠다. 말로 아무리 설명해도 눈으로 한 번, 손으로 한 번 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할 테니까. 그래도 난 친절하니까 몇 가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드리려한다. 우선 일반적인 그림책과 종이의 두께가 다르다. 그림책 속 페이지는 면지 포함 23장이지만 컷 하나의 종이 두께가 무척 두텁다. 글이 없이 그림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림책 구성이 끝에서 시작해 가운데로 모이는 형태다. 책을 어디 부분을 펼치든 이야기가 이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그림책 <행운을 찾아서>도 이런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사건이 일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적인 부분이다.
빨간색 머플러를 두른 남자 아이가 있는 부분부터 읽어나가도 되고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여자아이 쪽부터 읽어나가도 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를 펼치든 이야기가 이어지며 우리를 환상의 세상으로 안내한다. 처음 그림책을 볼 때는 당연하게 앞 부분부터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머플러를 두른 남자아이의 뒤를 따라가면서 말이다. 문을 열고 나선 남자 아이 앞에는 순백색의 길이 펼쳐져 있다. 그 길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남자아이가 지나가는 마을들은 동화 속 세상 같다. 어렸을 때 했던 게임 속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림책을 천천히 살피다보면 내가 꿈 속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분 좋은 설렘, 현실 세계의 고민을 잠시 놓아두고 환상의 세상으로 들어가 맘껏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기차 마을, 책 마을, 나무 마을, 폭포 마을, 눈 마을, 우주 정거장 마을 등을 지나서 중간쯤 가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뒤에 그려져 있는 양 갈래 머리를 묶은 여자 아이다.
<길>은 남자 아이가 걸어온 길과 여자 아이가 걸어온 길을 함께 담아서 보여준다. 그러다 둘은 책의 중간에서 서로를 만나게 된다. 길에서 마주한 두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까? 이제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아니면 얼굴만 마주보고 지나쳤을까? 둘은 함께 길을 걷게 될까? 아니면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될까? 글이 없는 그림책의 매력은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 없는 그림책' 안에서 독자는 자유로움을 맛본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자유. <길>에 나온 다양한 길처럼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생각의 길을 펼쳐낼 수 있다.
라울 니에토 구리디의 <두 갈래 길>처럼 우리들 앞에는 무수히 많은 길들이 놓여있다. 우리 인생은 어떤 시점에 놓여진 길을 계속 선택해 가면서 각자의 길을 걸어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예전에 알았던 사람을 놓기도 하면서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것일테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다. 굉장히 많은 선택의 길이 있었고 그 선택에 의해 나의 삶이 만들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길이 나타날 것이다. 3년 후에 나의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중요한 것은 그림책에 나온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처럼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집 밖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움직여야 한다. 나는 더 다양한 세상을 만나고 싶다. 두려움과 설렘을 데리고!
#길
#주나이다
#비룡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