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처음 보았을 때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짐작이 잘 되지 않았다. 책을 손에 쥔 느낌은 그림책 같지 않고 묵직한 소설책 같은 느낌이었다. 표지는 유화로 그린듯한 하얀 구름과 호수, 나무와 들판이 펼쳐져 있고 위쪽에는 누구에게 보내는 듯한 편지 한편을 보는 듯했다. 왼쪽에는 볼로냐 라가치 2020 오페라 프리마 멘션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볼로냐 라가치 상에는 여러 부문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오페라 프리마 멘션'이다. '오페라 프리마 멘션'은 우리나라로 치면 신인상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작가의 첫 그림책이 상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될 것이다.

그림책의 구성이 상당히 독특하다. 일반적인 그림책 구성, 앞표지-면지-속표지-본문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표지를 넘기면 오래된 크라프트지 같은 곳에 5개의 문장이 적혀있다.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다.

방학 내내 공책에 하루 한 문장씩 일기를 썼다.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해 적었다.

2학년으로 올라가는 조건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공책을 간직하고 있다.

여덟살 소년이 2학년으로 올라가는 조건으로 하루 한 문장씩 일기를 쓴 것을 바탕으로 이 그림책은 이루어진다. 이 책은 글을 쓴 작가인 미하우 스키빈스키의 일기장을 바탕으로 했고 그는 지금도 생존해 있다고 한다. 또한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과 그림 사이 사이에 그가 실제로 적은 일기가 끼워져 있어 읽는 독자를 책 속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소년이 쓴 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지명이 나온다. 처음에는 이 소년이 속해 있는 나라가 어디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바르샤바'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그림책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장소는 독일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으킨 제 2차 세계대전을 바탕에 두고 있다. 처음 부분과 중반 부분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그림책의 리듬감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한다.

1939년 9월 1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9월 1일에 적은 소년의 일기장에 적힌 단 하나의 문장이다. 전쟁이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은 나는 이 문장에 담긴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진 못한다. 다만 그 뒤로 이어지는 소년의 일기장을 통해 그가 겪은 전쟁의 아픔을 미뤄 짐작할 뿐이다. 확실히 그림의 색감도 앞부분에 비해서 뒤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쓴 일기는 1939년 9월 15일까지만 적혀있다. 일기장에는 9월 16일과 9월 17일도 적혀있지만 한 문장은 쓰여있지 않다. 그걸 미루어 짐작했을 때 전쟁의 위협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장면 역시 문장은 없고 검푸른 안개가 쏟아 오르는 그림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을 견뎌야 했던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상상만 해도 두렵고 무섭다.

마지막 면지에 적힌 글도 꼼꼼하게 읽으면 좋겠다. 마지막 면지에 쓰여져 있는 글을 읽으니 아버지는 조종사로 폭격부대를 이끌고 있었으나 9월 9일 전사했다고 나온다. 아마 소년은 아버지가 그날 전사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앞으로 돌아가 9월 9일에 뭐라고 쓰여져 있는지 살펴보았다.

1939. 9. 9.

비행기들이 계속 날아다닌다.

아마 그날 본 비행기에 아버지가 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휴...전쟁은 승자나 패자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소중한 것들을 앗아간다. 내가 평화로운 한국에 살고 있는 동안에도 세계의 어느 곳에서는 내전이 일어나고, 테러를 일으키고 전쟁이 발발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생명의 무게를 조금은 무겁게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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