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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레이하 눈을 뜨다 ㅣ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3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 지음, 강동희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속한 시리즈에 관심이 있었는데, 러시아어로 활동하지만 타타르스탄 (타타르스탄이 어디야?!) 작가라는 소개와 소련 강제 이주에 대해 다룬다길래 궁금해서 구입했다.
거의 700쪽 가량의 이야기이지만 휴가를 맞아 일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읽었다.
율바시에서 가부정적인 남편과 사악한 시어머니에게 학대 및 무시당하는 줄레이하,
남편이 살해당하고 모든 재산을 국가에 다 빼앗긴 후, 강제이주 당하면서 살아남는 줄레이하,
생존에 필요한 게 거의 없는 미개척지에 버려지다시피 하여 아사 위험 속에서도 아들을 낳고 살아남는 줄레이하,
이제는 풍요로운 개척지 (라고 하지만 강제수용소) 에서 미처 몰랐던 사냥꾼으로서의 재능과 간호사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뜻하지 않게 만난 사랑에 고통받는 줄레이하 등
소련의 반노동계급 교화 정책이라는 시대 배경 속에서 살해당한 부농의 아내였던 약자인 줄레이하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작가가 (아니라면 누구라고 설명할 수 없는 내레이터 같은 존재가) 자주 튀어나와 상황을 묘사하고 독자에게 어떤 인상을 불어넣는 문장들이 재미있다. 마치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으로 시청자에게 간접적으로 말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라고만 예상했었는데, 줄레이하의 인생에서 강제 이주 정책은 좋은 모습으로도, 나쁜 모습으로도 나타난다는 게 읽는 이로 하여금 삶의 복잡성을 곱씹게 한다. 강제 이주가 아니었으면 줄레이하는 사냥꾼과 간호사로서 탁월한 자신을 평생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결국은 삶이 어떤 형태로 펼쳐지든 그에 맞춰 응답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줄레이하의 모습을 짠하게 바라보면서 응원하게 된다.
분량이 그렇게 길다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교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좀 유감이다. 예를 들어, 물감이 등장하는 장면들에서 계속 카드늄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미술 전문가가 아니지만) 카드뮴이 아닌가... 하고 검색을 해보았다.
카드늄이라고 구글에서 검색하면 카드뮴으로 바로잡는데... 물감 중에 카드뮴 안료로 구현하는 색깔이 있다. 러시아어에서는 다르게 표현할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카드뮴을 카드늄이라고 하는 것과 그 밖에 오타들을 보면 이 재밌는 소설의 옥의 티인 것 같아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