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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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 글은 불편하다. 읽으면 너무 잘 읽히고 생각도 공감가는 지점이 있고 그래서 무언가 불편하다. 닮은 지점이 많아서 더 그런 것 같다. 그의 삶은 나와 다른데 이상하게 그가 나와 닮아있는 게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의 삶에 대해 궁금한 지점이 많았다. 거기에 대해 충분히 해소시켜주는 책이었다. 그의 삶을 따라 가다 보면 그를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불편한 책을 읽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정리하니 7가지의 소제목이 나왔다. 해당되는 소제목마다 인상 깊었던 구절과 감상을 기록한다.


1. 불편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우리에게 주어진 독서 시간은 물리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도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들춰내기 전까지 세계의 신비는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의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우리를 먹고살게 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게 하며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세계의 전부라면 그 삶은 너무나도 아쉽다. 우리는 노동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즐기고 여행하고 놀라워하기 위해 온 것일 테니까.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세계의 다양한 영역을 모험하는 가장 괜찮은 방법은 불편한 책을 읽는 것이다.

이 챕터가 이 책의 가장 처음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주 적절하다. 채사장은 이 챕터를 통해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 또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아주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채사장의 책이 불편하다며 피하고 싶었던 나를 저격해서 이 책으로 끌고 들어온다. 계속해서 ‘편하다’는 이유로 표류하는 삶을 택할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그것은 ‘성장’을 바라는 나 같은 사람들의 심중을 꿰뚫는 통쾌한 저격이다.

2. 자기만의 세계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친 사람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여행의 장단점과 주의사항을 말해줘봤자 소용없다. 스스로 밟아가야 한다. 직접 경험하고 실패하고 배우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행을 시작한 사람은 여행이 끝날 무렵에 자신이 처음 들었던 이야기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제 그만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건 바로 그때였다. 그 순간 너무나도 맑은 정신 속에서 나는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나의 삶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그것은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느낌이었다. 잠시나마 인생 전체를 조망한 느낌. 아름다운 자연 속에 너무도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함께 있는 완벽한 순간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신이 준비해놓은 가장 완벽한 순간임을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더 살아간다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무의미한 삶을 구차하게 끌고 간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계단에 머무를지, 아니면 한 걸음 더 오를지.

나는 실패가 유독 싫었다. 그걸 피하기 위해 애썼고, 타인에게 전하곤 했다. 이제야 그 과정이 필연적이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말하기를 꺼려해서는 안되는 것 같다. 늘 그렇듯 오지랖과 조언의 경계는 흐리다.

나의 작은 세계로 충분했던 시절에, 나 또한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유사하게도 거대한 자연은 작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는 존재인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일까. 이것을 설계라 느끼는 순간이 오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때의 충만함 이후로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했다. 나 또한 완벽한 하나의 진리를 찾고 있었기에 스스로가 세상은 단순하게 보고 복잡성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관점의 전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진리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면 이 모든 것은 명쾌해질 터인데 찾기를 포기하고 관점을 바꾸는 건 당시의 나로서는 한심하게 느껴졌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의 진리가 있을 거라는 믿음은 포기하질 못했다. 이 수많은 세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정들을 더는 외면하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단순한 진리조차 개인의 관점에서 무조건적으로 우기기에 우리가 보아야 하는 관점들이 너무 많아졌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은 지금에 와서 복잡해진 게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그랬음에도 나의 작은 세계에서는 360도로 시선을 아무리 돌려보아도 좁은 시야가 전부였기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는 걸.

3. 이상적인 인간

이상에 가깝다 X 이상을 품은 인간 O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안 병장의 판단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는 무수히 많은 생각의 가지를 뻗었다. 자신의 시간을 포기할 만큼 군대라는 집단이 그렇게 윤리적인 집단이 아님을 생각했고, 한국의 군대문화가 만들어낸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를 생각했으며, 국수주의와 애국주의가 어떻게 전체주의적 폭력으로 귀결되는가를 생각했다. 안 병장을 만나면 이런 것들을 말해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그 모든 이유와 무관하게 옳다. 그는 자기 삶의 입법자이고, 자기 삶의 대지를 걸어가는 자가 아닌가.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자의 평가는 이상적인 인간에게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대부분의 인간은 환경을 버텨내거나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애쓴다. 적응해내는 게 8할이라면 적응하지 못해 버티거나 튕겨나가고 마는 게 1.9할 정도가 될 것이다. 남은 0.1할은 그러면? 환경을 나에게 맞추는 사람이다. 이들은 ‘이상을 품은 인간’이다. 이들은 환경을 자신의 이상에 맞춰 바꾸어 나간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 바꾼 환경은 처음에는 이미 환경에 적응한 8할의 거센 저항을 받지만 이들에게 감화된 인간들과 함께 구체적이고 확연한 변화가 된다. 이런 식으로 사회는, 환경은 변화해온 것은 아닐까. 그들이 ‘이상적인 인간’으로 불려도 되는 의미가 있다면 여기에 있다.

4. 사람은 변한다

우리는 선입견이 있다. 내면의 성숙은 고결한 방식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선입견. 그것만으로는 얻지 못하는 절반의 배움이 있다. 고결하지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 세계에서의 경험들. 부당함에 굴복하고, 부조리에 타협하고, 옳은 주장을 꺾고, 스스로의 초라함에 몸부림칠 때에만 얻게 되는 그런 배움이 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세계에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나와 타인의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나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

내가 분을 삭이며 말했다. “사람들은 변하지 않아.” 누나가 대답했다. “그래, 사람들은 변하지 않지. 그런데 우리 동생은 그동안 많이 변했구나.”

어떤 사람이든 자기만의 울타리를 부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울타리 자체가 아주 넓어 그 순간이 와도 그 안에서 겪은 것들로 손쉽게 "아! 보수해야 하는구나!" 하는 사람도 있지만 좁은 울타리로 인해 그 안에서 겪은 게 적은 사람은 부당함, 부조리, 초라함, 한심함 같은 것들을 마주하고 부수고 더 넓은 울타리를 세워야 함을 또, 그 경계를 지정해야 하는 일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겪는 시점에 따라 책에서 말하는 나약함을 부정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현실에 적응해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물론 좁은 울타리는 상대적으로 여전히 좁고, 넓은 울타리도 또한 그렇다. 울타리 자체의 재질이나 소재도 쉬이 바뀌는 일은 잘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은 변한다.

5. 삶을 수용한다는 것

그 순간이 가장 완벽한 순간임을. 더 이상 그렇게 행복한 순간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더 살아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무의미한 삶을 구차하게 끌고 간다는 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제 그만 살아도 되겠다 싶다. 너무 오래 끌어가고 있다. 당시의 나는 한없이 나약해져 있었다.

삶에서 발생한 고통을 그저 받아들이라고요? 아뇨. 그건 너무 무책임한 말이에요. 자신에게 발생한 상실과 고통을 수용하라는 충고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해결책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눈감으라는 비겁하고 나약한 제안이에요.

직접적인 저항도 필요하지만, 주어진 삶의 고통을 인내하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생각해보면, 세상에 정말 힘든 일 같은 건 없다.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충분한 시간과 집중할 수 있는 여건.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든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힘들지 않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주어질 때 발생한다. 정신은 분산되고 신경은 예민해진다. 간신히 처리하던 일들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긴다. 도미노처럼 일들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모든 일에서 문제가 연쇄적으로 터진다.

어느 순간 모든 일을 망쳤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자연의 거대한 아름다움을 마주했을 때 나 또한 느껴본 적이 있는 감상이라 조금 어색했다. 인생을 굴곡있는 선으로 계속 표현해야 한다면 그 선이 고점을 찍는 한순간 이후로는 다시는 그 고점보다 높은 순간이 오지 않을 거라고 느끼는 내 자신이 있다.

노력은 보답받지 못할 수도 있고, 반드시 보답받을 이유도 없다.

참 공감이 간다. 연쇄적으로 문제가 터지면 힘들어진다. 그리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모든 걸 리셋하고 싶다. 현대인 중에 리셋증후군을 겪지 않는 이가 있기나 할까?

6. 죽음에 대하여

모든 것은 내 마음의 투영물이다. 내 외부에 실재하는 절대적 심판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행위를 평가하는 건 사실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나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이건 처음부터 잘못된 접근이었는지도 모른다. 삶 안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안에 삶이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포괄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는 육체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상식적인 견해를 넘어서게 해준다. 둘째는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존재로서의 나의 의미를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죽음은 삶이 끝난 뒤에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나에서 벗어나는 것이 죽음이라 여겼다. 그게 내가 육체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었다는 걸 깨닫자 죽음까지도 나의 삶이고, 내 마음에 있는 것이었구나 싶어졌다.

7. 나는 나다

세상과 단절된 나의 작은 공간에서 나는 회복되어갔다. 그것은 마치 차라투스트라의 동굴과도 같았다. 세상에 나가서 자신을 비워낸 차라투스트라가 스스로의 내면을 다시 채워나가는 공간. 물론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잔이 채워지면 다시 비워내야 한다.

나라는 구면의 밖으로는 어떻게 나가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우리는 이 의식의 지평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나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고정적이지 않다. 나는 나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의 영역을 넓히되 그 속이 채워지면 다시 비워내며 나를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나를 넓힐 기회도 생긴다. 채우고 비우며 나를 드러내야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나라는 걸, 내가 모르던 나조차 나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결국 모든 건 내 안에 있고 내가 마주하는 외부의 것들조차 나에서 비롯되어 나로 귀결된다는 걸. 환경이 나를 옭아매는 듯 해도 그걸 받아들이거나 바꿀 의지는 나에게 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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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바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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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읽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꽤 정적인 분위기를 느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의 출판연도가 1986년이었다. 아무리 고립된 산 속의 산장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놀 거리가 없고 아날로그적일 이유가 있단 말인가라든가 의아하던 지점들이 단숨에 해소되었다.

책의 시작점은 단순한 편이다. 여행 중이던 오빠가 자살을 했다는 산장에 그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은 여동생과 그 친구과 함께 방문하면서다. 소설의 앞쪽에 이들이 어떻게 산장에 합류하게 되는지, 또 여동생이 친구에게 동행을 설득하는 과정이 제법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그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앞부분이 캐릭터의 언행에 힘을 실어주는 중요한 단락이었음을 깨닫고 나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호흡 분배에 경탄할 수 밖에 없다.

이 작가의 작품을 팬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종종 읽을 때마다 세심한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을 느끼고는 한다. 그의 추리소설은 상황이나 트릭보다도 거기에 처해진 캐릭터들의 숨결 덕분에 더 치밀하고 생동감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마더구스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마더구스의 해석에의 차이가 주는 맛도 있다.

에필로그까지 여운이 남는다는 점에서 참 좋았다. 고립된 장소이기에 추리의 맛을 더하기 위해서라도 인물이 꽤 많이 등장하는 편인데도 인물들이 어느 쪽에 크게 쏠리지 않고 다양하게 조명받는다는 점과 탐정의 역할이 스무스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게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 작품이 연작으로 나왔다면 아주 흥미로운 콤비물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작품을 알지는 못해서 아직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혹시 연작이 있을까?

아직 찾아보지 못한 시점에서 연작이 아니라는 가정을 하고 생각해보면, 출판연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을 거란 예측도 든다. 아마 그런 이유로 등장했던 또, 행적을 보인 캐릭터로 추정되는 인물도 있어서 그렇다.

그래도 순식간에 몰입해서 이 산장의 쌓인 눈이 녹기를 바라게 되는 차갑지만 따뜻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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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 2021 뉴베리상 대상 수상작 꿈꾸는돌 28
태 켈러 지음, 강나은 옮김 / 돌베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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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내용이 책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주의.

이 책의 저자인 태 켈러는 한국인 할머니를 둔 쿼터 혼혈이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을 썼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릴리는 ‘조아여’ (조용한 아시아 여자애의 줄임말)의 고정관념 같이 보이는 여자 아이이고, 릴리의 언니는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탈색을 하고, 까만 립스틱을 바르고, 거칠게 말을 뱉는다. 릴리의 어머니는 병에 걸린 어머니 즉, 릴리의 외할머니와 살기 위해 두 딸과 함께 할머니가 살고 있던 집으로 이사한다.

릴리는 이사 오던 길에 ‘호랑이’를 목격하고 그 호랑이는 릴리에게만 나타나 할머니가 옛날 옛적에 훔쳐간 걸 돌려주면 할머니를 낫게 해주겠다고 한다. 처음에 릴리는 새로 알게 된 친구 리키의 말을 듣고 함께 호랑이를 잡기 위한 덫을 만들어 놓는 등 최선을 다한다. 마법과도 같은 호랑이와 하나씩 풀리는 옛날 이야기들에 어우러진 한국계 미국 소녀 릴리가 고군분투하며 여러 감정들을 느끼고 어떻게든 소화하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자꾸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일까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응원을 보내게 된다.

마법 호랑이와 릴리가 분투하는 동안 릴리의 시선에서는 잘 알 수 없는 언니의 싸움, 엄마의 싸움, 할머니의 싸움 또한 이어지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아시아계로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 가족에 대한 정과 약간의 마법적인 (아마 그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것들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릴리는 성장한다. 그러면서 마주 보기 어려웠던 진실을, 마법이 걷히는 순간을, 제대로 보는 힘이 생긴다.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나에게도 성장의 한 순간이 되는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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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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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픽션인줄 알았지만 픽션처럼 쓰인 에세이라고 한다.

이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의 일대기를 쫓으며 주인공이 자신의 삶 또한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그는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다시 보게 되면서 자신, 즉 ‘우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특별하지 않고,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결국 주인공은 새로운 관점을 깨닫고 받아들임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데이비드에게 빠져서 그에 대해 알아가려한 것이지만 알아갈수록 드러나는 그의 우생학적 면모는 주인공이 점차 그를 객관적으로 보게 했고, 주인공 자신의 삶 또한 돌아보게 한다.

데이비드는 ‘어류’라는 범주에 갇힌 채 평생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붙잡고 살았다. 그는 긍정적으로 자신의 믿음과 환상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갔지만 주인공은 그와 달리 그 목표와 믿음 바깥에 존재하는 진실된 세상을 보는 시야를 갖게 됐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진실을 알기 위한 도구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관계를 배신하는 행위를 한 주인공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배반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미 거기서부터 그 사람의 근본을 부정하게 되곤 한다. 이 책을 보고 나서, 모든 사람이 고결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관계에 대한 배신은 내게 있어 엄청나게 큰 부분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이건 개인적인 트리거라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게 픽션이었어도 화가 났을 텐데 논픽션이라는 부분에서 저자가 이 부분을 자신의 훌륭한 문체로 덮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주인공 또한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후반부에 가면 처절하게 깨닫고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포기하고 나서 새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게 되지만 앞부분에서 그가 스스로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부분은 너무도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책 자체에 대한 놀라움은 대단했기에 그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평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처음에는 해당 부분을 읽었을 때, "뭐야 이 미친, 설마 범죄 행위를 한건가?"라고 생각했는데 끝에 가서 저자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단순히 관계에 대한 배신 행위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봐야 범죄가 아니게 된 것뿐 내게 미친 충격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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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마지막 경고 - 북극곰의 위기는 인류 위기의 예고편
서형석 지음 / 문예춘추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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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마지막 경고>는 이번 여름은 일찍부터 폭염과 다양한 재해를 겪고, 주위에 기후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는 인물들이 많아지면서 내게도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생겨서 그 시작점으로 삼은 책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저자와 내가 환경 문제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주체로 여기는 지점이 달라서 내심 그의 주장에 반박을 조금 더 많이 하게 되었던 책이다. 하지만 기후 위기에 관한 문제 제시를 통해 경각심을 일으키고, 다양한 사례를 소개해주는 점이나 환경 관련 키워드에 대한 설명 등이 있어 개괄적인 파악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래는 일부 장(Chapter)의 내용과 감상을 내 나름대로 정리했다.



1부 1장

기후 위기에 관한 사례를 얘기하면서 수치로 우리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위기에 대해 언급한다. 이 부분은 첫 장부터 위기에 대한 구체적 사례보다는 수치와 숫자가 줄줄줄 나열되어 이해가 쉽게 되지는 않았다. 차라리 중간중간 삽입되는 위기로 인한 동물들의 피해와 같은 사진이 좀 더 와닿았다. 앞부분에 위치한 챕터였던 만큼 기후 위기에 대해 잘 모르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직관적인 어필이 되도록 조금 더 쉬운 접근법을 써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례를 나름의 기준에 맞게 분류하여 제시하고 있는 점은 좋았다.

1부 2장

저자는 국민 전체가 함께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세먼지에 대해 언급하는 파트에서도 [더 알아보기]로 조리시 발생하는 오염 물질에 대해 설명하면서 마치 조리시 발생하는 오염 물질이 미세 먼지로 인한 위기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한 구성이었다. 하지만 그가 책에서 언급한 미세먼지 인위적 발생 원인은 비중에 대한 내용 없이 그저 원인에 해당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기후 위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야 하겠지만 그 원인이 되는 여러 행위들이 있고, 분명 그 비중이 다를 텐데 뭉뚱그려 모두가 노력하자는 식으로 귀결되는 듯한 귀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내가 기후 위기 같은 전지구적인 문제는 개인의 노력보다 국가와 사회, 그 연합체들의 노력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환경을 위협하는 원인의 비중을 명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대체하려면 개개인의 노력보다 집합의 노력이 더 효과적일 것이고, 또 위기를 빠르게 벗어나려면 위기의 원인 중 가장 크고 직접적인 것부터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거대한 위기에서는 '티끌 모아 태산'은 큰 의기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노력에 가치는 분명하게 있고, 나 또한 소소하게 개인적인 노력들을 하는 걸 포기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저자와 같은 권위 있는 사람이나 전문가의 주장은 개인보다는 국가나 사회에 더 호소해주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기후와 같은 전지구적인 문제는 개인의 노력은 국가와 사회의 인식을 바꾸면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소비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나는 저자와 관점이 다른 편이다. 최근 소비자들은 환경 키워드에 민감한 편이고 그에 따른 가치 있는 소비를 하려는 행태를 보이지만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선택적 소비를 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소비자의 죄책감이나 문제의식에 기댈 것이 아니라 생산자를 규제하는 것이 환경 측면에서는 더 도움이 된다. 소비자가 환경을 위해 자신의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면 생산자들 또한 그들의 이윤을 줄여서라도 노력하는 게 맞지 않은가?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지는 뻔하다. 생산자가 먼저 바뀌면 선택적 소비를 할 수 없는 이들도 자연스레 환경친화적 소비를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생산자는 자신의 이윤을 줄여야 하지 소비자에게 그 비용을 전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가 사는 지구의 문제이므로 죄책감과 문제의식은 모두가 가져야 한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모두란 개개인의 합이 아니라 개인과 국가, 사회 또 그런 집합의 집합 같이 행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모든 걸 이야기한다. 생산되지 않으면 소비되지도 않는다.

1부 3장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 관련 미디어와 그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주어 '대체 어떻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서 아주 좋은 챕터였다. 흥미가 생기면 미디어를 접하고 위기를 조금 더 느끼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어서다.

2부 4장

기업이 실행하고 있는 환경 관련 경영 전략들을 보여주면서 구체적 사례를 설명해준다. 다만 이것을 이미 실행되고 있는 것을 소개하고 있고, 이 뒤부터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제안이 더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2부 5장

세계 친환경 도시들은 소개해준다. 여기서 느끼는 바는 환경 문제에 공감하여 개선된 시민 의식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으로 친환경 도시 계획이 실행된 도시들이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내게는 이것이 도시 차원에서 계획을 갖고, 도시 전체를 친환경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거기에 개인도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친환경 도시를 만들어내려면 단순하게 몇 가지 정책만 벤치마킹해서는 안되고 도시 전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는 의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이 필요하다. 그러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동참할 거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해봤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나와 저자의 견해가 완전히 다르단 생각에, 앞으로 돌아가 저자의 들어가는 말을 다시 읽어보니 저자가 '국민 각자가 노력하면 문제의 절반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나와 생각의 방향성은 다르지만 책의 내용에는 일부 동의하는 주장들이 있고, 기후 위기와 여러 관련 개념은 파악하기 위해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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