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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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 글은 불편하다. 읽으면 너무 잘 읽히고 생각도 공감가는 지점이 있고 그래서 무언가 불편하다. 닮은 지점이 많아서 더 그런 것 같다. 그의 삶은 나와 다른데 이상하게 그가 나와 닮아있는 게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의 삶에 대해 궁금한 지점이 많았다. 거기에 대해 충분히 해소시켜주는 책이었다. 그의 삶을 따라 가다 보면 그를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불편한 책을 읽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정리하니 7가지의 소제목이 나왔다. 해당되는 소제목마다 인상 깊었던 구절과 감상을 기록한다.


1. 불편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우리에게 주어진 독서 시간은 물리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도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들춰내기 전까지 세계의 신비는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의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우리를 먹고살게 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게 하며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세계의 전부라면 그 삶은 너무나도 아쉽다. 우리는 노동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즐기고 여행하고 놀라워하기 위해 온 것일 테니까.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세계의 다양한 영역을 모험하는 가장 괜찮은 방법은 불편한 책을 읽는 것이다.

이 챕터가 이 책의 가장 처음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주 적절하다. 채사장은 이 챕터를 통해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 또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아주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채사장의 책이 불편하다며 피하고 싶었던 나를 저격해서 이 책으로 끌고 들어온다. 계속해서 ‘편하다’는 이유로 표류하는 삶을 택할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그것은 ‘성장’을 바라는 나 같은 사람들의 심중을 꿰뚫는 통쾌한 저격이다.

2. 자기만의 세계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친 사람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여행의 장단점과 주의사항을 말해줘봤자 소용없다. 스스로 밟아가야 한다. 직접 경험하고 실패하고 배우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행을 시작한 사람은 여행이 끝날 무렵에 자신이 처음 들었던 이야기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제 그만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건 바로 그때였다. 그 순간 너무나도 맑은 정신 속에서 나는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나의 삶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그것은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느낌이었다. 잠시나마 인생 전체를 조망한 느낌. 아름다운 자연 속에 너무도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함께 있는 완벽한 순간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신이 준비해놓은 가장 완벽한 순간임을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더 살아간다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무의미한 삶을 구차하게 끌고 간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계단에 머무를지, 아니면 한 걸음 더 오를지.

나는 실패가 유독 싫었다. 그걸 피하기 위해 애썼고, 타인에게 전하곤 했다. 이제야 그 과정이 필연적이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말하기를 꺼려해서는 안되는 것 같다. 늘 그렇듯 오지랖과 조언의 경계는 흐리다.

나의 작은 세계로 충분했던 시절에, 나 또한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유사하게도 거대한 자연은 작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는 존재인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일까. 이것을 설계라 느끼는 순간이 오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때의 충만함 이후로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했다. 나 또한 완벽한 하나의 진리를 찾고 있었기에 스스로가 세상은 단순하게 보고 복잡성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관점의 전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진리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면 이 모든 것은 명쾌해질 터인데 찾기를 포기하고 관점을 바꾸는 건 당시의 나로서는 한심하게 느껴졌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의 진리가 있을 거라는 믿음은 포기하질 못했다. 이 수많은 세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정들을 더는 외면하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단순한 진리조차 개인의 관점에서 무조건적으로 우기기에 우리가 보아야 하는 관점들이 너무 많아졌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은 지금에 와서 복잡해진 게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그랬음에도 나의 작은 세계에서는 360도로 시선을 아무리 돌려보아도 좁은 시야가 전부였기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는 걸.

3. 이상적인 인간

이상에 가깝다 X 이상을 품은 인간 O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안 병장의 판단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는 무수히 많은 생각의 가지를 뻗었다. 자신의 시간을 포기할 만큼 군대라는 집단이 그렇게 윤리적인 집단이 아님을 생각했고, 한국의 군대문화가 만들어낸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를 생각했으며, 국수주의와 애국주의가 어떻게 전체주의적 폭력으로 귀결되는가를 생각했다. 안 병장을 만나면 이런 것들을 말해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그 모든 이유와 무관하게 옳다. 그는 자기 삶의 입법자이고, 자기 삶의 대지를 걸어가는 자가 아닌가.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자의 평가는 이상적인 인간에게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대부분의 인간은 환경을 버텨내거나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애쓴다. 적응해내는 게 8할이라면 적응하지 못해 버티거나 튕겨나가고 마는 게 1.9할 정도가 될 것이다. 남은 0.1할은 그러면? 환경을 나에게 맞추는 사람이다. 이들은 ‘이상을 품은 인간’이다. 이들은 환경을 자신의 이상에 맞춰 바꾸어 나간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 바꾼 환경은 처음에는 이미 환경에 적응한 8할의 거센 저항을 받지만 이들에게 감화된 인간들과 함께 구체적이고 확연한 변화가 된다. 이런 식으로 사회는, 환경은 변화해온 것은 아닐까. 그들이 ‘이상적인 인간’으로 불려도 되는 의미가 있다면 여기에 있다.

4. 사람은 변한다

우리는 선입견이 있다. 내면의 성숙은 고결한 방식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선입견. 그것만으로는 얻지 못하는 절반의 배움이 있다. 고결하지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 세계에서의 경험들. 부당함에 굴복하고, 부조리에 타협하고, 옳은 주장을 꺾고, 스스로의 초라함에 몸부림칠 때에만 얻게 되는 그런 배움이 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세계에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나와 타인의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나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

내가 분을 삭이며 말했다. “사람들은 변하지 않아.” 누나가 대답했다. “그래, 사람들은 변하지 않지. 그런데 우리 동생은 그동안 많이 변했구나.”

어떤 사람이든 자기만의 울타리를 부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울타리 자체가 아주 넓어 그 순간이 와도 그 안에서 겪은 것들로 손쉽게 "아! 보수해야 하는구나!" 하는 사람도 있지만 좁은 울타리로 인해 그 안에서 겪은 게 적은 사람은 부당함, 부조리, 초라함, 한심함 같은 것들을 마주하고 부수고 더 넓은 울타리를 세워야 함을 또, 그 경계를 지정해야 하는 일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겪는 시점에 따라 책에서 말하는 나약함을 부정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현실에 적응해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물론 좁은 울타리는 상대적으로 여전히 좁고, 넓은 울타리도 또한 그렇다. 울타리 자체의 재질이나 소재도 쉬이 바뀌는 일은 잘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은 변한다.

5. 삶을 수용한다는 것

그 순간이 가장 완벽한 순간임을. 더 이상 그렇게 행복한 순간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더 살아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무의미한 삶을 구차하게 끌고 간다는 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제 그만 살아도 되겠다 싶다. 너무 오래 끌어가고 있다. 당시의 나는 한없이 나약해져 있었다.

삶에서 발생한 고통을 그저 받아들이라고요? 아뇨. 그건 너무 무책임한 말이에요. 자신에게 발생한 상실과 고통을 수용하라는 충고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해결책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눈감으라는 비겁하고 나약한 제안이에요.

직접적인 저항도 필요하지만, 주어진 삶의 고통을 인내하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생각해보면, 세상에 정말 힘든 일 같은 건 없다.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충분한 시간과 집중할 수 있는 여건.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든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힘들지 않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주어질 때 발생한다. 정신은 분산되고 신경은 예민해진다. 간신히 처리하던 일들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긴다. 도미노처럼 일들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모든 일에서 문제가 연쇄적으로 터진다.

어느 순간 모든 일을 망쳤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자연의 거대한 아름다움을 마주했을 때 나 또한 느껴본 적이 있는 감상이라 조금 어색했다. 인생을 굴곡있는 선으로 계속 표현해야 한다면 그 선이 고점을 찍는 한순간 이후로는 다시는 그 고점보다 높은 순간이 오지 않을 거라고 느끼는 내 자신이 있다.

노력은 보답받지 못할 수도 있고, 반드시 보답받을 이유도 없다.

참 공감이 간다. 연쇄적으로 문제가 터지면 힘들어진다. 그리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모든 걸 리셋하고 싶다. 현대인 중에 리셋증후군을 겪지 않는 이가 있기나 할까?

6. 죽음에 대하여

모든 것은 내 마음의 투영물이다. 내 외부에 실재하는 절대적 심판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행위를 평가하는 건 사실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나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이건 처음부터 잘못된 접근이었는지도 모른다. 삶 안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안에 삶이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포괄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는 육체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상식적인 견해를 넘어서게 해준다. 둘째는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존재로서의 나의 의미를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죽음은 삶이 끝난 뒤에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나에서 벗어나는 것이 죽음이라 여겼다. 그게 내가 육체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었다는 걸 깨닫자 죽음까지도 나의 삶이고, 내 마음에 있는 것이었구나 싶어졌다.

7. 나는 나다

세상과 단절된 나의 작은 공간에서 나는 회복되어갔다. 그것은 마치 차라투스트라의 동굴과도 같았다. 세상에 나가서 자신을 비워낸 차라투스트라가 스스로의 내면을 다시 채워나가는 공간. 물론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잔이 채워지면 다시 비워내야 한다.

나라는 구면의 밖으로는 어떻게 나가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우리는 이 의식의 지평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나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고정적이지 않다. 나는 나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의 영역을 넓히되 그 속이 채워지면 다시 비워내며 나를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나를 넓힐 기회도 생긴다. 채우고 비우며 나를 드러내야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나라는 걸, 내가 모르던 나조차 나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결국 모든 건 내 안에 있고 내가 마주하는 외부의 것들조차 나에서 비롯되어 나로 귀결된다는 걸. 환경이 나를 옭아매는 듯 해도 그걸 받아들이거나 바꿀 의지는 나에게 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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