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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성년의 날, 동생에게 선물한 책을 내가 먼저 다 읽어 버렸다. 그것도 넉 달이나 지난 후에. 사실 이런 류의 책들과 비교해서 딱히 두드러지는 교훈이 있는 책은 아니었다. 이미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을 한 노 교수의 입으로 되풀이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주어진 삶을 소중하게 받아 들이고 삶 자체에 솔직하며 오늘의 현실을 만끽하라.
하지만 현학적이고 화려한 수식어들로 포장된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에서는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책을 읽는 동안 친근하게 말을 거는 노 교수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모리의 말은 오랜 시간을 우려낸 고깃국처럼 담백하고 부담이 없었다. 지금껏 내 삶을 짓누르는 것은 나를 둘러싼 현실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바뀌어도 현실은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변화를 거부하는 나 자신을 합리화했었다.
책을 덮으면서 얼마 전 책에서 읽은 철학 이론이 하나 생각났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우리는 物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통해 받아 들인 하나의 '형상'을 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인식론'의 요체라고 한다. 나의 삶도 구체적인 공간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 속에 받아 들이는 풍경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인식' 이전의 현실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 들이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모리가 품었던, 삶을 긍정하게끔 만드는 감성을 이제 나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