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숄트 어페어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앨런 홀링허스트의 장편 소설 ”스파숄트 어페어“를 읽었다. 데이비드 스파숄트와 그의 아들 조너던 스파숄트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그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게이 정체성이란 것을 언급해야만 한다. 데이비드 스파숄트는 소설 속에서 시종 암시되는 ‘스파숄트 스캔들’ 또는 ‘스파숄트 어페어’로 인해 숨겨왔던 게이 정체성이 탄로가 난 유명한 기업인이고, 그의 아들 조너던은 커밍아웃한 게이로 항상 데이비드 스파숄트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영국에서 동성애가 죄악으로 여겨지고 실제로 그런 성지향성에 관한 대가를 치뤄야만 하는 시대에 동성애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살아야만 했던 데이비드 스파숄트에게 연민을 느낀다. 데이비드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떨쳐내려는 듯 더욱더 깊은 곳으로 숨어 자신의 성지향성을 부인하는 삶을 살았다. 첫 번째 부인과 이혼을 하고 자신의 비서였던 여자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리고 커밍아웃한 화가인 자신의 아들, 조너던과 죽는 그날까지 어색한 거리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조너던은 그런 아버지의 스캔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삶이 자식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단정과 동정이 그를 오히려 당혹감에 가뒀기 때문이다.
작가는 양성애자, 혹은 디나이얼 동성애자로 보이는 데이비드 스파숄트의 정체성을 단일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수려한 외모로 대학 시절부터 스캔들을 일으켰다. 군인으로서 활약했으며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아들 조너던에게는 근엄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작가는 데이비드와 조너던을 마냥 불행하게 그리지 않는다. 어떤 시선에도 불구하고 결코 망가지기 쉽지 않은 사람들로 그린다. 오히려 망가진 건 ’스파숄트 스캔들‘을 잊지 못하고 그에 관해 입에 올리면서도 떳떳하게 말하지는 못하는 타인들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소설의 뒤로 갈수록 소설의 처음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데이비드 스파숄트의 대학생 시절에 그에게 매혹됐던 젊은이들은 노년을 맞거나 노년을 맞이하지 못한 채 청년 시절에 세상을 떴다.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이야기에 신중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조너던 스파숄트가 유일하다. 그들의 중심에는 조너던의 아버지, 데이비드가 있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는다. 자신을 좋아해줬던 자신과 섹스를 했던 에버트에게만 다가선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피어났던 일은 좀체 언급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앨리슨 백델의 “펀 홈”이 떠오른다. 데이비드 스파숄트에게서 앨리슨 백델의 부친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성지향성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었던 시절을 살다 갔다. “스파숄트 어페어”와 “펀 홈”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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