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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흙집일기
전남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나의 아버지도 시인 전남진처럼 가족들을 위해 집을 지으셨던 적이 있다. 철없던 코흘리개 시절 보았던 나무를 깎아 집을 만들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슴프레 생각이 난다. 비록 전통 흙집이 아닌 도시 변두리에 얼기설기 지은 판자집이지만 손수 집을 짓던 아버지의 마음은 시인 전남진의 마음과 많이 다르진 않을 것같다.
바람과 추위를 막고 세상의 온갖 두려운 일들에게서 가족을 보호하는 집을 짓는 일은 삶의 정수이다. 판자집이건 흙집이건,통나무주택이건 현대식 벽돌집이건 상관없다. 몇달 몇년에 걸려 집을 짓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행이고 자기 성찰이고, 고도의 지옥훈련이다. 또한 삶의 피로에 지친 사람들에게 훌륭한 재충전 방법이 되기도 한다.
[흙집일기]는 단순히 집짓기 비망록은 아니다. 겉으로 보면 전통흙집짓기 방법과 구들놓는 방법을 이용해 5평의 작은 주거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인의 마음 속에 세계와 같은 크기의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딸과 아내를 생각하며 돌과 나무 쌓고, 치매에 빠진 할머니를 보며 흙으로 벽을 막으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남향으로 창을 낸다. 또한 언어로 집을 만들어 시를 써내듯이 마음으로 흙을 발라 집을 만든다. 그 모습이 때로는 위험하고 때로는 남루해 보이지만 시인의 영혼은 아궁이에 매운 불을 때다 올려본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 빛난다. 박상우가 그랬던가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고....혼자지만 외롭지 않고 아름답다. 집짓는 그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대문이다. 이쯤되면 그는 집만 짓는게 아니라 삶의 시를 애틋하게 지어나간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닌듯 하다.
12년간 근무하던 직장을 때려치고, 아내와 딸을 부양해야하는 현실을 감내하며 시인이 집을 짓고자 했던 그 어떤 절박함. 나에게도 그런 절박함은 있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 속에 요동을 위해 강철같이 단단한 현실을 쉽게 벗어버릴 수 있을까? 아직도 쉽게 그 답을 얻지 못했다.
*사진설명:시인의 흙집 사진은 못올리고 다래골산방의 흙집사진을 올렸습니다(출처-목천흙집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