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중환자실은 일시적인 문제로 생명이 위독해진 환자들이
의학적인 시술의 도움으로 위험한 시기를 넘기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원칙은 그렇지만 현대의료에서는 이런 원칙이 너무나 빈번히 깨져버린다.
누구도 "이제 그만"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을 말하기 싫어하는 의사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환자 가족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중환자실은 환자가 임종을 맞기 위한 장소로 급속히 변질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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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할머니의 말은 온전치 못한 의식에서 한 말로 치부되어 아무도 귀담아 듣는 이가 없었다. 보호자조차. 그런데 그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힘겹게 뱉은 말은, 그건 사실 정말 할머니가 간절히 원했던 게 아닐까. 그러나 먼 친척들까지 몰려와 둘러 모인 보호자들의 표정들이 하나같이 냉담했기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구해서 몰래 할머니의 손에 쥐어주고 싶은 마음은 내 몫이었다. 아니, 이런 걸...... 이런 걸 치료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일이 반복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러한 일상을 견딜 수 없었던 건 내가 무르고 유약한 탓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내가 한 행위는 치료도 간호도 아니었다. 어찌됐던 할머니의 상태는 악화될 수밖에 없었고, 중환자실로 이실된지 일주일만에 할머니의 부고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