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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생을 믿는다 - 위르겐 몰트만 박사의 마지막 저서
위르겐 몰트만 지음, 이신건 옮김 / 신앙과지성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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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의 슬픔을 견뎌내고 있는 한 신학자의 마지막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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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생을 믿는다 - 위르겐 몰트만 박사의 마지막 저서
위르겐 몰트만 지음, 이신건 옮김 / 신앙과지성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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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현학적인 데가 있어서 가독성이 썩 좋지는 않다. 번역도 의역보다는 직역에 가깝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심오한 구석이 있다.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갈2:20)라는 바울의 믿음을 따른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을 더 깊이 숙고해볼 수 있다. 몰트만의 마지막 사색은 바로 이 지점이다.

죽음의 기술은 우리가 오직 한번만 실천할 수 있지만, 부활의 기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항상 실천할 수 있다. - P15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생명의 기쁨을 빼앗아가며, 살아가려는 의지도 빼앗아 간다. 이것은 하나의 진정한 죽음의 경험이다. - P19

삶과 죽음 간에는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 그리스도의 통치, 이것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사귐이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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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놀 히브리어 1 (스프링) - 재미있게 배우는 그림 연상 히브리어 깜놀 히브리어 1
이요엘 지음 / 두란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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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히브리어를 공부할 사람은 신학생으로 국한된다는 점에서 많은 신학교 교수들이 전문 교재를 만들기를 꺼려온 게 사실. 그나마 내가 있던 학교는 박미섭의 <성서 히브리어 문법> 혹은 페이지 켈리의 <성경 히브리어>를 활용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의 히브리어 교재는 너무 딱딱했다는 것.
두란노 출판사와 이요엘 교수가 합작한 작품이 하나 나왔다. 파격적인 히브리어교재가 탄생했다!

딱 봐도 접근성이 좋다.
알파벳이나 단어를 외울때 발음이 우리말과 비슷한 것을 연상하면 도움이 된다. 예컨대, 어떠니? 이 말은, 변호사를 뜻하는 영단어와 발음이 흡사하다. 이 책도 기본적으로 그러하다.

또 개인적으로 히브리어 노래를 암송한거 내 히브리어 실력을 늘리는데 도움이 됐는데, 그런 요소도 책에 있으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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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엘 2020-09-0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제 책을 구입해주신 분의 평가를 보니, 너무 반갑습니다. 한동대학교에서 이번 가을학기부터 이 책을 가르치는데, 이곳에 제 강의를 올려드려요. 혹시 함께 이 책 순서대로 나가면서, 강의하니 같이 들어도 좋을듯 합니다. 책을 구입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올립니다. 이요엘 교수드림

https://www.youtube.com/watch?v=TlJ8c0gl72w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 - AI 시대, 다시 인간의 길을 여는 키워드 8
신상규 외 지음 / 아카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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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 처음 듣는 용어였다. 대학시절 너나할 것 없이 포스트모던를 언급하곤 했기에, post라는 낱말은 내게 익숙했다. post혹은 ‘~이후라는 뜻의 접두어이다. 그렇다면 포스트휴먼이라 함은, ‘-인간’, ‘인간 이후’, 이렇게 투박하게 번역할 수 있다. 그러니까 포스트휴먼은 지금 규정하고 있는 인간이란 의미가 전복되는 순간을 맞이했음을 역설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아카넷에서 출간한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는 다양한 분야에 속한 사람들이 포스트휴먼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기자, 철학자, 사회학자, 인문학자 등등이 참여해서 그 내용의 폭이 넓어졌다.

우선은,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의 부제가 그것을 환기해준다. ‘AI시대, 다시 인간의 길을 여는 키워드 8’에서 알 수 있듯, 인공지능이 전면을 이룬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삶은 늘 변화해왔음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또 인간의 삶의 형태를 어떻게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인가. ‘포스트휴먼담론의 출발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수많은 공상과학영화들은 기계지능의 시대를 예고해왔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대부분이 디스토피아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싶다. 무분별한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한 날선 비판, 경고의 메시지가 많았다. 21세기형 좀비로 추락하지 않기 위한 영화감독의 몸부림으로 보였다. 그런 예언자적 모습 덕분에 과학기술에 대한 숭배와 낙관적인 믿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나마 가치판단을 유보한 공상과학영화를 고르라면, 영화 를 꼽고 싶다. 인간과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는 로봇 사만다’, 매우 흥미로웠다. 비록 씁쓸한 결말이 되어버렸지만, 정서적으로 깊이 소통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 신상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로봇과 부딪치는 일상의 도덕 경험들을 더욱 진지하게 해석하고 고민해야 한다. 로봇과의 대면에 관한 훨씬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들과 실제로 어떻게 지내며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것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을 가짜 경험이나 범주 착오라고 비난하기에 앞서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훨씬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과 맺는 여러 관계적 양상을 기계라는 단일한 은유가 아니라 훨씬 다양한 은유를 통해 서술하고 표현할 수 있는 해석학적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138)

 

기계지능의 진보와 로봇의 상용화를 막기는 어렵다. 과학기술이 제공해주는 이기에 인류는 길들여져 버렸으니까. 애완기계의 시대의 도래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석이다. 궁극적으로 로봇이 아니라 로봇과 관계를 맺고 있는 개개인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붙들어야 한다.

내면적인 변화 외에도 외적인 변화도 상상해보자. 포스트휴먼이란 사이보그를 뜻하는 것일까. 휴 허 교수처럼 신경계가 연결된 의체를 달아서, 반 인간 반 로봇이 된 존재, 그게 포스트휴먼을 지칭하는 것일까. 언젠가 성형수술을 하듯, 자기 다리를 자르고 로봇다리를 연결하려는 이들이 등장할지 알 수 없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유기체와 기계 사이의 존재가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니 인간에 대한 정의는 다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이 바로 포스트휴먼담론 중 하나다.

한편,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구현해냈듯, 기계지능에 의한 가짜뉴스와 범죄들이 일어날 것이다. 알고리즘이 신종 재앙을 일으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로 상사인 목소리를 구현해 큰 돈을 빼돌렸다거나, 알고리즘의 자동적 매매로 투자자들을 속인다든지. 초보적인 알고리즘도 무시할 수 없다. 저마다의 취향 안에 사람들을 가두고 있는데 성공했으니까.

기타 기계지능에 대한 소소한 정보들도 흥미로웠다. 기계지능은 자각 없는 수행을 한다고,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또 알파고가 인간과의 대국에서 그 바둑을 왜 둬야하는지, 승리든 패배든 그 사회적 파장이 어떻게 될지 등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다른 한편, 기계지능은 다양한 가사일보다 법률문서를 정리하는 일을 더 잘 해낸다고. 또 기계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서 인간의 단순노동, 그것도 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런 그림자 역시 곱씹어볼만 했다.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 다양한 담론들이 뇌의 회로들을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지적으로도 만족스럽고, 무비판적인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지점도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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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훈 교수가 쉽게 쓴 종교개혁자들 이야기
홍지훈 지음 / 신앙과지성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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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훈

 

책 제목 그대로다. 종교개혁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소한 오해들이나 용어들을 바로 잡는 것도 있고, 다양한 종교개혁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사상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특장점이다. 특정 개인을 심도있게 파기보다 종교개혁의 큰 흐름을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 책을 추천한다.

 

루터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선행하는 데 약점이 있다거나, 츠빙글리는 가톨릭과의 전쟁에 참여할 정도로 무력사용을 지지했다거나, 칼빈은 세르베투스 같은 반삼위일체론자를 처형하는데 앞장을 섰다거나, 종교개혁의 근원주의자들은 모두 폭력적이라는 등의 기존 주장들은 너무나 단순화된 가설이다. 그래서 한 종교개혁자의 사상을 이해할 때에도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그런 주장을 했는지 함께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며, 종교개혁자 그룹의 성격도 한 가지로 쉽게 묶을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19)

 

결국 교회의 개혁은 성서가 차지해야 할 위치를 회복시키는 운동이었으며, 성서의 주인공인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리를 회복하도록 하는 운동이었다.”(21)

 

이 책에서는 알려지는 유명한 종교개혁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었지만, 조금 알려진, 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교회개혁자들의 유산이 있었기에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이 가능했다.”(194)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성경의 위치, 하나님의 자리를 회복하도록 종교개혁운동을 했던 이들, 그리고 여전히 그런 운동을 하고 있는 개혁가들을 응원한다. 나 역시 거기에 동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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