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막스 뮐러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그녀는 결정의 순간을 마냥 미루려는 듯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왜라니요? 마리아! 어린애한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꽃한테 왜 피었느냐고,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

"신은 당신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주셨지만 그 고통을 당신과 나누도록 나를 당신에게 보내신 겁니다.

당신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어야 합니다."  _p.156-8

 

 

 

<독일인의 사랑>은 언어학자인 막스 뮐러의 유일한 소설로 순수한 사랑의 의미를 전달하는 고전 작품이다.

흔히 고전이라 말하면  한 번쯤 들어봄직한데 나에게는 생소한 작품인지라 순전히 호기심만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가을이라... 웬지 사랑을 논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만. 

하지만 페이지에 비해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아무리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독일인의 사랑>처럼 지나치게 순전한, 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사랑의 모습은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스토리 또한 서서히 데워지는 물처럼 은근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지루하더라도 고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끝까지 읽는 것이 이 책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 드리는 중요한 팁이라 할 수 있다.

 

왜 고전일까.

이 책을 덮으며 왜 <독일인의 사랑>이 고전이라 불리우고, 수많은 명사들에 의해 추천되어 왔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 비밀은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다고 보여진다.

 

 

"고요하고 밝은 저녁이었다. 산봉우리들이 저녁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산 중턱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계곡에서 회색 안개가 올라와 높은 지대로 떠오르면서 갑자기 환해지더니 구름바다처럼 하늘로 뭍결쳐 올랐다."   _p.107

 

시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듯 이 책의 언어들은 마치 시를 읽고 있는 듯한 운율과 묘사로 넘쳐난다. 한국어로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었겠지만 책에서 느껴지는 운율이 독일어로 묘사 되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라는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사랑의 감정이 그러하리라.

마치 새가 노래하듯이, 또 마치 춤을 추듯이 세상의 사물이 온통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사랑의 감정을 고스란히 언어로 담아내었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고뇌하고, 때로는 격정적인 사랑의 모습 또한 언어로 잘 표현되어 있다.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머릿 속에 그려보게 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직설적이고 과한 사랑의 언어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보석처럼 빛나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이다.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되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은 사랑의 감정과 더불어 성숙해 가는 인간 내면의 모습인 것 같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서툴다. 소유하고만 싶고, 그것은 나의 전부여야만 하는 이기적인 사랑이지만 숱한 여정을 통해 성숙해가지 않는가.  이 책의 주인공 또한 마리아와의 교감을 통해 서툴고 미숙한 사랑의 모습에서 점차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너의 오빠라도 좋고

너의 아버지라도 좋다. 아니 너를 위해 세상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 "

 

나의 것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랑이 아니라 그 '무엇이든 너의 것이 되고 싶은 사랑'. 

이 사랑의 모습은 두 주인공의 대화에서도 옅볼 수 있듯 기독교적 관점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자기희생적이며 숭고한 사랑의 모습은,  마치 십자가 위 그리스도 예수의 조건없는 자기희생적 사랑을 전달하고 있는 듯 하다.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기적인 사랑이 넘치는 지금, 가치있는 사랑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인의 사랑>은 분명 지루한 소설이지만 - 기승전결이 극적이기 않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책을 덮고 곰곰이 그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 보고 있노라면 분명한 감동과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메시지의 전달은 직설적이지 않다. 은근하고 깊게 우려진다. 그렇기에 <독일인의 사랑>은 명불허전, 바로 고전인 것이다. 

인색하고 때로는 과하게 넘치는 우리 방식의 사랑, 그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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