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로 돌아오다 - <벼랑에서 살다> 조은의 아주 특별한 도착
조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인지라 기억을 되짚어 보니 뭔가 김이 샌다.
삼십해의 시간을 넘어오며 매년 한 해가 시작되면 이런 저런 계획들을 세우며 결심하는 것 중 하나가 '여행'이지만 올해도 별 소득없이 그냥 넘기는 듯 싶다. 여행이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닌데 나와는 꽤 인연이 없는 것 같다. 물론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아쉬움을 보상하려는 마음일지는 몰라도 눈에 띈 산문집 하나를 집어들었다.
여행이 주는 낯선 설렘과 아름답지만 소박한 풍경, 사색을 담은 책.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이 책은 화려하지 않으나 여행을 통한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작가의 깊이가 느껴지는 책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과 풍경은 처음에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인 듯 불편하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다보면 오히려 내가 돌아갈 그곳 - 현실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작가의 고백처럼 내가 돌아가야 할 집이 있는 곳이 낯선 여행지처럼 느껴진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올 해 여름, 무작정 경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훌쩍'이라는 표현대로 그냥 몸과 마음이 쉬고 싶어 택한 여행이였고, 카메라와 한명의 친구가 동승했던 여행이었다.
천년고도의 도시 - 경주. 어릴 적 수학여행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그곳이 삶에 지친 나에게 무슨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약간은 염려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이였지만 나는 그곳에서 기대치 않았던 많은 것을 얻은 듯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소음 가득한 도시 서울과는 너무나도 다른,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유구한 역사와 고풍스러운 모습을 간직한 도시 경주의 솔숲을 거닐며 쉼을 얻을 수 있었고, 일상을 벗어나 머릿속을 비워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고 돌아온 것 같다.
이틀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울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경험속에 나 또한 작가처럼 서울의 빽빽한 모습이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주는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고향같은 곳이고, 서울은 너무나 낯선 곳처럼 느껴졌던 그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어릴 적의 그곳의 나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통해 세월의 흔적들을 더듬을 수 있었던 것이 참 의미 있었던 것 같다.
언제 찾아주어도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었던 그곳, 그 사람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많은 사연을 안고 찾아간 나와 나의 환경들.
달라지지 않는 사실 하나는...... 시간을 뛰어넘은 여행을 통해 쉼을 얻었다는 것이다.
여행이 아니였다면 이런 보석같은 감정들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도 그 소소하지만 보석같은 짧은 여행이 주는 사색적인 감정들이 아닐까 싶다.

 
여행도 습관이다.
새해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또 다시 머릿속엔 새해부터 짠~ 하고 시작할 거창한 계획들을 준비한다.
나는 그 계획들 사이에 또 습관적으로 '여행하기'를 적어넣을 것이고...
하지만 거창한 의미의 여행이 아니라 작가 조은처럼 함께 하면 할수록 더 좋은 친구들과 나의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하나 매고 발길이 닿는 그곳을 누비고 다닐 그런 여행을 준비한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나의 낯선 인생길도 거창하지 않고 적당한 불편함도 매력적인  여행처럼  그렇게 걸음걸음 누벼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에겐 말간 눈의 또또는 없지만...

"빨리 갔다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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