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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창비 / 2021년 8월
평점 :
이 소설은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굉장히 강렬하다. '최애, 타오르다'라는 제목도 예사롭지 않은데, 심지어 "최애가 불타버렸다."라는 문장으로 글이 시작된다. (물론 '불타버렸다'는 표현은 정말 말 그대로 불에 타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지만.)
누군가를 '최애'로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겪게 된 주인공 '아카리'의 이야기는 책장이 넘어갈수록 점점 그 불씨를 키워간다. 옮긴이의 말을 빌려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삶의 의미를 최애를 좇는 데에서 찾으려 했던 주인공 아카리가 최애의 폭력 논란과 연예계 은퇴로 충격을 받는 이야기이다." 소재가 극적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그만큼 충분히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뒤통수를 때리는 듯 강렬한 반전보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카리의 심리 묘사에 집중한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느낀 것은 통증이었다. 순간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예리한 통증, 그다음엔 밀쳐졌을 때 오는 충격과도 비슷한 통증. 창틀에 손을 올린 소년이 방 안으로 몰래 들어와 짧은 부츠를 신은 발끝을 달랑달랑 흔들었을 때, 그의 작고 뾰족한 부츠 끝이 내 심장을 파고들더니 무심하게 걷어찼다. 그 통증이라면 잘 알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나에게 통증이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내 살 속에 익숙하게 웅크리고 있다가 이따금 생각났다는 듯이 저릿저릿할 뿐이었다. 그랬던 것이, 넘어지기만 해도 자연히 눈물이 나던 네 살 때처럼 아팠다. 하나의 통점으로부터 쫙 퍼지듯이 육체가 감각을 되찾았고, 조악한 영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과 빛으로 세상이 선명해졌다." (15-16쪽)
소위 '덕통사고(덕질+교통사고, 교통사고처럼 순식간에 일어나는 덕질 입문의 순간을 비유하는 말)'라 말하는 상황이다. 그저 주인공의 어릴 적 스쳐지나갔던 낯선 인물 중 한 명이었던 타인이 주인공의 '최애'로 탈바꿈하는 극적인 순간을 묘사하는 작가의 표현에 감탄하며 읽는 걸 잠시 멈추었던 것도 같다.
제목부터 대놓고 '최애'라는 용어를 쓰고 있고, 이야기 내내 '덕질'을 하는 '팬'이 주인공인 만큼 읽으면서 나의 덕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아카리를 완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카리 같은 팬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시절에는 나에게도 최애가 전부였던 시간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아카리처럼 자기 자신을 다 바쳐 최애를 사랑하기에는, 최애를 통해 내 존재의 의미를 찾기에는 나에겐 나도 너무 소중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최애를 볼 수 있었던 시간들 대신 내 일상을 살아갈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아카리를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아카리처럼 최애가 보는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이고, 나처럼 최애를 좋아하지만 나의 일상 역시 소중한 사람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들 어렵지 않게 해내는 평범한 생활도 내게는 쉽지 않아서, 그 여파 때문에 구깃구깃 구겨져 괴롭다"고 말하는 아카리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 괴로움을 양분 삼아 있는 힘껏 쏟아부었던 그 애정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중단되어야 했다는 것도.
아마 누군가에게는 이 이야기가 그저 한심해보일지도 모른다. 팬들의 사랑을 받는 당사자들조차 자신의 팬들에게 "내가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절대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팬들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못하지만, 때로 누군가는 아카리처럼 그 좋아하는 마음을 붙잡고 힘겨운 자신의 여생을 겨우 살아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마음이 동기부여가 되어 진로를 결정하게도 하고, 아무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그 마음으로 위로와 힘을 얻기도 한다. (나에게도 최애의 노래와 목소리를 통해 수많은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함부로 아카리의 이야기를, 그 차갑고도 뜨겁게 타오르는 마음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 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 창비 가제본서평단 참여로 발간일 전 가제본을 제공받았음
아하, 이 사람이구나. 어린잎을 지나온 바람이 그즈음에 자꾸만 늦어지던 체내 시계의 나사를 조여 나를 움직였다. 체육복은 못 찾았지만 단단한 심지 하나가 몸속을 꿰뚫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다. - P19
다들 어렵지 않게 해내는 평범한 생활도 내게는 쉽지 않아서, 그 여파 때문에 구깃구깃 구겨져 괴롭다. 그래도 최애를 응원하는 것이 내 생활의 중심이자 절대적인 것이라는 점만은 세상 그 무엇보다 명확했다. 중심이 아니라 척추랄까. 공부나 동아리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해서 번 돈으로 친구와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사거나, 대부분은 그렇게 인생을 꾸미고 살찌움으로써 더욱 풍족해질 것이다. 나는 역행하고 있다. 무슨 고행이라도 하듯이 나 자신이 척추에 집약된다. 무의미한 것을 깎아내고 척추만 남는다. - P43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에는 혹은 무대와 객석에는 그 간격만큼의 다정함이 있다. 상대와 대화하느라 거리가 가까워지지도 않고 내가 뭔가 저질러서 관계가 무너지지도 않는, 일정한 간격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끝없이 느끼는 것이 평온함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최애를 응원할 때, 나라는 모든 것을 걸고서 빠져들 때, 일방적이라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충족된다. - P69
최애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불러 일깨운다. 포기하고 놓아버린 무언가, 평소에는 생활을 위해 내버려둔 무언가, 눌려 찌부러진 무언가를 최애가 끄집어낸다. 그래서 최애를 해석하고 최애를 알려고 했다. 그 존재를 생생하게 느낌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고 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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