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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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는 휘몰아치는 서사를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는 재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80세가 넘어 발표한 <여름의 끝>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이런 여유와 담담함은 세월이 준 것일까. 국내에도 노년까지 오래오래 쓰는 작가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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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반려병 - '또 아파?'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도 아무튼 시리즈 35
강이람 지음 / 제철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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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골‘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공감하며 읽었다. 아픈 자신과 아픔을 제공한 자신을 분열된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며 따뜻하고도 유쾌하게 그려나간 시선이 자주 나의 상황과 겹쳐졌다. ˝몸이 아프든 아프지 않든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하고, 내 몸의 근원적인 목적은 살아 있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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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과 자긍심 -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일라이 클레어 지음, 전혜은.제이 옮김 / 현실문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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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미디어가 보여주는 장애인들은 하나같이 ˝슈퍼장애인˝들이었다. 우리는 장애를 이기고 (비장애인 못지않은) 성취를 이룬 이들에게 감동하고 박수를 보내지만, 사실 그것은 ˝비장애 몸과 정신의 우월성˝을 재확인하고 안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모하고 대단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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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닝 -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
이라영 외 지음 / 동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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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어린이, 장애, 성소수자, 여성 등의 주제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가운데 ‘채식‘에 대한 이슈도 강경해지고 있다. 아직은 채식을 실천할 준비가 안 된 내게 이 책은 다양한 시선과 입장을 보여주고 있어 도움이 되었다. ˝흉내내기도 반복하면 습관이 되고 인생은 결국 습관의 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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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홍승은 폴리아모리 에세이
홍승은 지음 / 낮은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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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

 

나 역시 한때 이 질문을 붙잡고 늘어진 적이 있다.
대체 사랑이란 게 무엇이기에
나 자신을 이토록 초라하고 볼품없이 만드는지.
저 사람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아니게 될까봐
끝없이 불안해하면서 나의 온 에너지를 한 사람에게 쏟아붓다가
지레 내가 먼저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만약 일대일 독점이라는 정상연애 문법에서 벗어나
조금 달리 생각해볼 수 있었다면
나는 그때, 덜 집착하고
관계의 넓이를 확장하는 데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을까.

 

연애할 땐 세상에 오로지 둘밖에 없다는 듯
세상과 단절하고 둘만의 성을 높다랗게 쌓느라 바빴다면,
결혼은 또 달랐다.
주 7일을 매일같이 만났더라도 '같이 살기'는 연애와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었다.
애쓰던 마음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상대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기보다는 상대의 말 한마디에 뾰족해지곤 했다.
나보다 커보이기만 하던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못마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독점적 관계가 연애 때는 '불안'의 요소였다면,
결혼한 뒤에는 '불만'의 요소가 되었다.
긴장 없는 관계는 쉽게 권태로 미끄러져버렸고,
불안 없는 불만은 사랑의 텐션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는 '폴리아모리'라는 비독점 관계를 살아가는
홍승은 작가의 세 번째 책이다.
작가의 앞선 두 권과는 상당히 다른, 생소한 주제여서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책을 펼쳤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이 책은,
폴리아모리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사랑에 대해, 함께 살기에 대해, 모든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준 책이었다.
누구와 만나든 나와 다를 수밖에 없는 타인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정치적인 부분에서까지 다양한 질문과 생각을 일으킨다.

 

 

세 사람은 상대를 소유할 수 있다, 소유해야 한다, 는
익숙한 연애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대화와 합의와 이해의 과정을 밟는다.
무엇보다 사랑은 '노동'이라는 말,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노동이 서로를 살아 있게 한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 마냥 편안하고 행복할 것 같지만
사랑한다는 그 이유로 다른 어떤 관계보다 갈등이 첨예해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갈등은 어느 한쪽이 노동(감정 노동이든 물리적 노동이든)을
소홀히 할 때 일어난다.
사랑한다면 노동하라!
서로를 위한 노동을 멈추는 순간, 사랑도 멈춘다.

 

책에 수록된 두 편의 인터뷰는
그동안 내가 관계에 대해 얼마나 게으르고 좁은 상상력에 머물러 있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함께 사는 두 애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콕콕 박혀왔다.
"노력을 통해 가꾸지 않는 관계는 폭력이나 불평등으로 연결되기 쉽다"는 말,
"남들도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사는 거지, 라는 태도가 가장 손쉬운 자기 합리화"라는 말.

 

 

"세 분은 폴리아모리 모범 사례"라는 누군가의 말에
세 사람은 손사래 쳤다지만,
이들의 배우고자 하는 태도, 타인에 대한 감각, 차별에 대한 예민함,
평등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관계라는 점은 분명하다.
자극적인 소재로 미끄러지지 않고 '관계' 자체에 대한 공감의 접점을
이토록 풍부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세 사람의 자질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가 폴리아모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누구나 그런 방식의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누구와 어떤 형태로 살든 이들처럼 관계의 평등과 사랑의 지속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이렇게 소란스러울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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