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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양말 - 양말이 88켤레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ㅣ 아무튼 시리즈 18
구달 지음 / 제철소 / 2018년 12월
평점 :
재밌다고들 해서 펼쳤는데,
처음엔 '뭐 그냥 그런데?' 했다.
그랬는데...'지네 콘테스트'부터 빠져들어 단숨에 후루룩 끝까지 읽어버렸다.
억지로 에피소드를 끌어오지도, 곁길로 새는 법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양말 얘기만 주구장창 늘어놓는데,
아, 이거 그냥 빨려든다.
거창한 의미 부여도, 지루한 반복도 없다.
문장에 멋부릴 새도 없이 이야기가 먼저 달려간다.
이야기가 88개의 양말을 신고 문장보다 먼저 달려간다!
무언가를 진짜 좋아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자신의 세계가 '그것' 하나로 전부 재조정되는 것.
삶의 모든 요소를 다 빨아들이는 자신만의 깔대기 하나를 갖는 것.
이 책을 읽기 전에 각오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양말 지름신을 피하기 어려울 거라는 것!
양말이라는 건 그저 발에 끼우는 천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몇 개 묶음으로 싸게 파는 노점상이나 마트나 지하철 상가 말고 양말을 사본 일이 없다.
그런 내가 책을 덮자마자 '삭스타즈'에 접속해버렸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양말 따위에!!) 몇 만 원이나 결제한 뒤였다.
(작가가 전작 인세 193,200원을 받고 산
G사의 20만원 짜리 양말과는 비할 바 못 되지만...)
양말 브랜드가 따로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렇게도 다양한 소재의, 다양한 디자인의 양말들이 있다는 것에
그야말로 신세계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무언가를 앞뒤 없이 좋아하는 마음은 좋은 기운을 전파한다.
그 두근거림, 수줍고도 과감한 마음,
계산 없는 순수한 몰입,
곁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덩달아 설레고 흥분된다.
모든 책이 묵직한 깨달음을 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독서라는 행위가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나에게는 차가운 물 한 바가지처럼 정신을 일깨우는 책도 필요하고,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손난로 같은 책도 필요하다.
'아무튼' 시리즈는 내가 지나치게 진지해지려 할 때,
독서라는 행위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할 때,
"워 워~ 몸 좀 녹이면서 수다나 좀 떨고 가." 말하며
슬그머니 옷깃을 당기는 편한 친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