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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 ㅣ 사이언스 클래식 16
칼 세이건 지음, 박중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7월
평점 :
고대 그리스나 고대 중국의 철학자가 쓴 인간에 대한 통찰은 지금의 관점으로도 탁월한 경우가 많다. 또한 인간사를 다룬 문학 작품역시 시대를 초월에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사랑 받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자가 쓴글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는 쉽지않다. 과학은 지난 수백년간 그야말로 미칠듯한 속도로 발전 했으며 어제는 하나의 '법칙'으로 존중 받던 사실이 오늘에 와서는 발전된 과학기술에 의해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이 1985년 글래스고 대학에서 한 기퍼드 강연을 바탕으로 씌여진 이 책은 그런 맥락에서 특별하다.
무신론자 보다는 불가지론자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칼 세이건(그는 '증거의 부재'와 '부재의 증거'를 엄격히 구분한다.)은 리처드 도킨스의 날카로운 필체와 대비되는 온건한 화술과 인내심의 소유자이다. 그는 종교 자체를 부정하기 보다는 그 긍정적인 기능을 인정하고 존중하려고 한다. 하지만 종교가 "종교적인 권위"를 근거로 잘 알지 못 하는 분야 - 예를 들면 과학 - 에서 부당한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근본주의 기독교와 종교적 쇼비니즘이 판을 치는 현대 사회에는 심지어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 과학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 나는 반증 가능성에 열린 태도로 임하고 과학자들 사이에 끊임없는 검증과 실험을 특징으로 하는 과학과 맹목적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를 같은 레벨의 진리(?)로 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둘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물론 굉장히 많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지만 칼 세이건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신념은 한층 견고 해졌다.
이 얇은 책을 통해 새삼 깨달은 것은 과학을 통해서도 충분히 광대한 우주와 자연앞에서 경외심과 겸손함을 느낄수 있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과학자는 무한한 인류애는 물론이고 생명에 대한 사랑과 경회심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 밑줄 긋기
p.243
어마어마한 불의가 이루어질 때, 공권력과의 충돌에서 종교 - 특히 기성종교 - 가 앞장서는 경우는 얼마나 드뭅니까. 반면 종교 지도자들이 안전한 길을 택하거나 우물쭈물 사태를 관망하고, 내세에 관해 이야기를 하거나, 흥분을 가라앉히자고 하거나, 또는 이것은 종교의 적절한 기능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흔합니까.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성 종교가 과학의 문제, 즉 있는 그대로의 사실의 문제, 즉 다음번의 발견으로 인해 자신들이 반증될 수 있는 절망적인 위협과 마주칠 수도 있는 문제들에 대해 권위적인 선언을 발표하는 일은 또 얼마나 흔합니까?
p.271
여러분도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신다면, 그야말로 놀라실 것입니다. 국경이라고는 전혀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지구상에 이른바 적도라는 것, 또는 남회귀선이니 북회귀선이니 하는 것이 실제로 있는 듯 말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지구는 실제입니다. 지구상의 생명 역시 실제이며, 오늘날 이 지구를 위험에 처하게 한 정치적 분열은 하나같이 인류의 고안품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직접 내린 계명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작은 세계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은 상호 의존적입니다.
p.337
따라서 저는 우리가 맨 처음 해야 할 일이 바로 정부들이란, 즉 모든 정부들이란 최소한 가끔씩이라 하더라도 거짓말을 하게 마련임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어떤 정부들은 항상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며 - 또 어떤 정부들은 무슨 발표를 할 때마다 하나 걸러 한 번꼴로 그렇게 합니다. - 나아가 대개의 정부들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실들을 교묘히 왜곡하게 마련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