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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2월 19일, 오늘은 봄을 처음 느낀 하루다. 매번 봄은 어김없이 돌아오나 느끼는 기분도, 공간도, 감정도 다르다. 2011년 봄은 오늘이다. 그래서 감성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감정적이지만... 엄연히 감성적과 감정적인 것은 다르다. 어쨌든 공기에서, 햇빛에서, 하늘에서 어제까지와 다른 색깔과 냄새를 보고 맡을 수 있었다. 그렇니까 나에게 2011년 봄은 오늘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브로콜리 너마저 2집]을 듣고 있다. 그것도 '울지마'라는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듣는다. 겨울, 새벽 4시에 난 골목에서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부끄럽고 초라하고 비참하고 눈을 뜨지 못할 거 같은 그런 암담함 앞에서. 그럴 때.. 문득 영화처럼 가로등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면 아마 우는 걸 멈추지 않았을까? 아님 더 펑펑 울려나?
뭐라도 힘이 될 수 있게 말해주고 싶은데
모두다 잘 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 뿐이지 그렇지 않니
그래도 울지 마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지
그 눈물을 참아내는 건 너의 몫이 아닌데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들에 사과해야 하는지
약한 사람은 왜 더
약.한.사.람.은.왜.더
음악이나, 책이나, 사람이나 오래 두고 자꾸 보고 더 좋아지는 것. 그게 진짜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로 대상을 향한 진심일 것이다. 봄을 느끼고 마냥 설레이며 생각나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다. 아이러니하지만 오늘의 봄은 나에게 '울지마'라고 속삭였다.
part.2
몇일 전 언니가 요새 '넌 무슨 음악을 들으니?'라는 말을 했다. 약간 서먹한 자매지간에 나한테 건넨 질문이다. 소개팅에 나간 자리에서 의례적으로 받는 질문처럼 쌩뚱맞고 약간 진부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입에서 나온 가수 이름이 '가을방학'이었다.
언니는 '가을방학'이라는 가수를 당연히 모른다. 아이 둘을 키우고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이다. 그에 비해서 난... 그냥 나다.
가을방학의 '가끔 네가 미치도록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와 '호흡과다'를 들어. 계피라는 보컬 목소리가 좋아. 몽롱하게, 그러나 잔잔하게 매력있어. 마치 이 여자의 목소린 나한테 커피같아. 내가 커피 엄청 좋아하잖아. 난, 요새 이런 가수가 좋아..
브로콜리 너마저, 루시드폴, 가을방학..
수없이 많은 나날들 속을
반짝이고 있어 항상 고마웠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마음 둘 곳이라곤 없는 이 세상 속에
마.음.둘.곳.이.라.곤.없.는.이.세.상.속.에
한동안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 노래가 생각날 때가 있었다. 몇 달 간 그랬다...
언제였지. 언니가 자기가 읽기에 편하고 쉬운 책을 추천해달라고 그런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추천해 준 책은? 그때 난 정말 쉬운 책을 생각한다고 말한 게 박민규의 <카스테라>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금방 알겠지만 사실 쉬운 책은 아니다. 그래도 난 재미있게 읽어서 나름 권했던 건데(;) 그 책을 읽고 난 언니의 반응이란!(-_-;;)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작은 에피소드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제각각의 사람들에게 개인의 취향에 맞는 책을 추천해준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렇니까 선택은 자신이 하는게 맞다. 책도, 음악도, 영화도. 그리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주면 된다. 아, 요새는 컴퓨터가 자동 추천을 해주고 있기도 하지..난 아날로그가 좋은데.. 세상은 점점 더 편하고 빨라지는데 뭔가 알맹이는 없어지는 듯한 그런 기분이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언니에게 나는 이해가지 않는 엉뚱한 아이일 것이고, 나에게 언니는 현실적인 그러나 좀 재미없게 살아가는 사람인거구. 그냥 타인의 취향을 비웃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오랜만에 혼자 있다. 적당히 쓸쓸하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여유롭다. 이 빈 공간을, 여백의 시간을 만들지 않기 위해 억지로 빽빽하게 채워넣던 낙서같은 시간들... 이제는 좀 여백의 미를 살리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