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교보문고 강남점에 갔다가 '제리'라는 책을 발견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만으로 그냥 무심코 들었던 책이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을 좋아하는 편이다)어느새 책을 들고 읽다 보니 시간이 10분, 15분, 20분이 흘러갔다. 샌들을 신고서(;) 그렇게 보고 또 보다 사고 싶어졌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알라딘에서 책을 샀다.^^;  

 처음 장면은 바에서 남자 도우미들을 부르다 여자 주인공과 제리가 만나는 내용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언뜻 보면 자극적으로 와닿는다. 중간 중간 성애 장면은(치명적인 성애묘사;)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야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슬프고 쓸쓸한 야함이다. 에로영화와 예술영화의 차이처럼.  

파격적인 묘사, 금방 읽히는 글, 그러나 내용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다. 쓸쓸한 청춘, 몸부림치는 허기와 외로움을 섹스와 자기 파괴, 피어싱, 그리고 단절된 관계 등에서 보여진다. 쓸쓸함.. 뭐가 그렇게 쓸쓸하고 뭐가 그렇게 사는 게 힘드냐고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할. 지극한 허기.    

술에 취해 혼자 들어가는 게 버겁기만 한 22살의 주인공의 모습속에 나를 본다. 결국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이해없이는 그 누구와도 제대로 소통하고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바로 나 자신과의 진정한 이해와 사랑을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하고 관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느 누구라도 잡을 수 있게끔 모두가 다 내 곁에 자리해 있기에, 나는 손을 내밀고 발을 뻗었다. 그러나 내 팔과 다리는 마치 허공에서 맴돌듯 허우적대다가 사라져 버렸다. (...) 

캄캄한 어둠 속에 그토록이나 바라던 제리가 있었고, 그의 몸이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를 잡고 싶은데, 오래도록 붙잡고 싶은데, 내 안에는 그를 붙잡고 끌어안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 - 217

책은 순식간에(?) 읽었지만, 책장을 덮고 무언가 생각하게끔 여운이 남는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슬펐고, 포근했다. 방황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통의 정서이고, 그 아픔을 끌어안아주는 풍요로움을 글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아픔까지 끌어안아 줄거야...' 라는 노랫말처럼.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제리가 들려준 아줌마 (p.97), 섹스가 전부인 양 온몸을 쥐어짜며 거친 섹스를 하는 강, 자신의 꿈이 무어냐는 질문에 "죽을 때까지 같이 술 마셔 주는 사람이 하나만 있었음 좋겠어."라는 부분, 호스트바에서 일해도 일하기 싫은 건 싫은 거라고 말하는 제리, 피어싱을 하며 아픔에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주인공(주인공 이름이 왜 생각이 안날까? 잘 안나오나..) 하여튼 이 모든 장면장면들은 이야기할 것이 꽤 많은 책이다.  

부산영화제에서 '뱀에게 피어싱'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자꾸 그 영화가 생각났다. 보다가 너무 불쾌해지고 끔찍하고, 내가 마치 가학을 당한 것처럼 나중엔 온 몸에 힘이 빠지게끔 만들던 모욕감을 주던 영화, 원작도 일본 소설이라고 했지. 문득 그 영화가 생각났다. 이 장면에서.  

 " 아프면, 말씀하세요."  
하마터면 와락 웃음이 쏟아져 나올 뻔했다. 말하면, 이야기하면,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애초부터 아프지 않게 집어넣을 방법 따위란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수록 더 강한 힘을 주어 밀어 넣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까지도.  
- 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