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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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책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리뷰들을 찾아서 읽을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를 가지고 각기 다른 책들을 권하고 좋아하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순간에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게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즐거운 시간들도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고 '아, 내가 읽음 정말 좋아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읽게 된 경우다.  

 결론을 말하자면, 난 사실 그리 만족하진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결코 글로 지은 사랑이 아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 애틋하고 한없는 행복감을 안겨준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사랑은 결코 글이나 말이 아닌 눈빛이고, 행동이고, 몸이고, 실체이다.  

 존재 그 자체를 바로 마주보고 시작하는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참신한 설정이다. 에미와 레오의 단 두 명의 인물이 서로를 만나지 않고 이메일로만 전적으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 나가는 이야기가 줄거리이다.  

에미의 빠르며 정열적인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서른 두 살의 매력적인 여자가 그려진다. 레오의 지적이며 논리적인 문체는 차분하면서도 내면에 깊은 애정을 감추고 있는 남자가 연상된다.  

 사랑의 시작은 똑같다. 존재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되는 것!

 저로 말하자면... 음, 그러니까, 이제부터 고백입니다. 저는 에미, 당신에게 미친 듯이 관심을 느낍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럴 만한 계기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은 압니다. 또한 이 관심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도 압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겼든, 나이가 몇이든, 그 무시할 수 없는 당신 이메일의 매력을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실제 만남에서 얼마만큼 보여주든, 글에서 묻어나는 재치가 당신 성대, 눈동자, 입 꼬리와 콧잔등에도 배어 있든, 이런 걸 다 떠나서 우리의 만남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_p.34 

상대에 대한 호기심은 결국 만나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레오와 에미도 마찬가지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다 결국 일요일 오후 후버 카페에서 만나기로 결정한다. 서로 아는 척 안하고 누군지에 관해 짐작만 하기로 약속한 상태, 그리고 이어지는 이메일의 내용은 이제 서로의 현실에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한다.

남편한테 아쉬운 게 뭡니까? 

없어요, 전혀 왜 제가 남편한테 아쉬운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당신이 나한테서 무언가를 원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방식에서 그걸 읽었어요. 당신이 나한테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나를 만나고 난 다음에야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무언가를 원한다는 사실만은 자명합니다. 달리 말하면 당신은 뭔가를 찾고 있는 겁니다. 그걸 모험이라고 합시다. 모험을 찾는 사람은 정작 모험을 하지는 못합니다. 맞죠?

행복한 결혼생활, 완벽한 배우자를 곁에 두고도 에미는 이메일 안의 레오를 통해 자신의 에미라는 존재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약간 들뜨고 몽롱한 상태로 항상 레오의 이메일을 기다리고 그의 이메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에미는 북풍이 불면 잠이 안온다며 레오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그리워하고 간절함은 더욱 치닫는 듯 하다. 그러나 정작 레오와의 만남에서 물러서는 건 에미이다. 블라인드 속에 사랑의 달콤함이 깨지는 것이 두려운 걸까? 아니면 자신의 이메일 안의 레오를 현실의 레오보다 더 사랑하게 되버린 걸 까? 결국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둘의 모습은 안타깝고 나중에는 '이게 뭐야'라는 약간의 허탈감도 느껴진다.  

 레오,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어요. 제 감정이 모니터를 벗어난거예요. 전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베른하르트는 그걸 알아차렸어요. 추워요.북풍이 불어오고 있어요. 이제 우리 어떡하죠?

만나지 못하는 공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에미와 레오가 풀어내는 사랑의 언어는 풍요롭고 충만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게 꼭 마음에 와닿는 건 아니다. 오히려 베른하르트의 간곡한 이메일이 마음을 울린다.  

제가 드리려는 부탁은 이렇습니다. 라이케씨, 제 아내를 만나주십시오! 이 소동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이제 제발 아내를 만나주십시오!  

라이케씨, 당신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만질 수 없고, 따라서 실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은 제 아내의 환상이 만들어낸 존재일 뿐이지요. 한없는 행복감, 세상과의 절연 상태에 기인하는 몽롱함, 글로 지은 사랑의 유토피아.... 이런 것들이 만들어낸 환상 말입니다. 저는 그걸 막을 힘이 없습니다.  

독일의 독특한 로맨스 소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는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안개처럼 자욱한 책이다. 그러나 안개를 걷어 올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게 더 맑고 선명하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 뒤에서 숨는 게 아니라 앞에서 서로 손을 잡고 시작하고 싶다. 블라인드 사랑은 이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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