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는 선배가 페이스북에 인용해둔 몇 줄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구매해서 읽었다. 나는 장르문학에는 영 취미가 안 생겨서 작가 심너울님이 쓴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지.
나는 여러 모로 각종 마감과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었다. 집에서 혼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며칠이고 혼자서 일하다보니 미칠지경이 된다거나. 이런 상황에는 내 머릿속 회로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면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뒤틀어지곤 한다. 그럴 때면 타인과의 교류가 내 머릿속 회로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원래대로 고쳐주곤 한다.
어쨌든 혼자 있으면 서서히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전염병 시국에 비슷한 경험을 했을거고, 그러니까 교도소에서도 독방형이 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독방형을 고안해낸 사람은 스스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걸 형벌로 만든걸까?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가 조금 풀렸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고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문화를 묘사한 부분도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까지는 판데믹이 만들어낸 생활 루틴 때문에 가능한 밖에 안나가고 교류도 가능한 하지 않으려고 했었지만 (그리고 새로운 지역으로의 전입과 함께한 그 사이클을 깨기가 너무 어려웠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앞으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날 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
심너울 지음
위즈덤하우스
2021. 06. (ebook)
가능하면 겸손하고 싶지만, 나는 확실하게 비범한 재능이 있다. 머릿속에 든 작은 불안의 씨앗을 소중하게 가꾸어 장대한 아름드리 불안의 나무로 키워내는 것. 가장 철저하고 효율적으로 멸망하는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것. 그에 대해서만큼은 전 세계에서도 상위권에 달하는 훌륭한 재능이 있다고 자신한다.
왜 이렇게 첫 문장을 쓰는 것이 힘든가? 그 이유는 첫 문장을 쓰는 순간이 글을 쓸 때 가장 자유로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들지 않으려고 한다. 또 지나치게 파국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려고 한다. 친구들이, 동료들이, 협업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괜찮다고 하면 그 말을 믿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지나치게 별로인데 나와의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좋게 말을 해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물리치고자 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할 때는 시야가 너무 좁았다. 물질적으로 지나치게 부족하니까 괴롭고, 괴로우니까 생각을 폭넓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돈을 아끼기 위해서 온갖 저울질을 하느라 인지적 자원을 소모할 일이 없다는 게 중요하다.
여전히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상승 욕구가 크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프리랜서인 것만 해도 갑갑해지는데 수익 모델이 글 쓰고 팔아서 돈 버는 거라니, 담담한 사실 묘사만으로도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모든 인간에게 결점이 있지만, 그 결점을 어떻게든 보이지 않게 숨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위선이 아님을, 그것이 우리 사람들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앞으로 추진시키는 힘인 것을. 그 자명한 사실을 모를 정도로 나는 무지했다.
나는 서울에서 받은 게 상처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울에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있었고, 서울에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있었다.
사람과 얼굴을 보고 나누는 대화 그 자체가 마법이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사람을 못 만나고 있었다. 중간중간 줌으로 몇 번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매일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하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누군가와 대면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타인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가깝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지레짐작과 거절당하는 데 대한 극심한 공포. 이것이 발전하여 사람들과의 더 나은 관계를 갈구하면서도 정작 진짜 관계에서는 항상 철수하던 나의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불합리함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당시에 나는 작가로 막 데뷔하고 책을 한 권 냈다. 그런데 삼촌이 "그게 돈이 되니?" 라고 물어보았다. 그에 대한 객관적인 답은 당시나 지금이나 "그럴리가요 (아련한 웃음)" 이긴 한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종이에 손을 베인 느낌과 비슷했다. 어쩌면 나만 기억하는 일이고 나만 갈등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잘 쓴다고 현자 취급을 받는 건 아닌데 못 쓰면 확실하게 욕을 들어먹을 수 있었다. 에세이도 칼럼보다 분량이 좀 더 자유로울 뿐 매한가지 아니겠나. 나는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어떤 실수를 했을지 몰라 덜덜 떨고있다. 인도네시아로 도망치는 꿈, 마감을 주구장창 미루는 꿈, 내 책이 진열된 서점에 불을 지르는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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