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믹으로 집에 갇혀 지낸 지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인생이 무언가 정체되어있다고 느꼈다. 꾸준히 일은 하고 있지만 생활에 무언가 스파크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내가 최근에 구입한 세 권의 '운'과 관련된 책 중에, 이 책은 다른 두 권의 책과 비교했을 때, '타인과의 교류' 등 나로부터 외부세계로 향하는, 어떠한 행위를 할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자세를 '세렌디피티'를 얻기 좋은 태도로 바꿀 것을 권유한다. (완전히 '세렌디피티'에만 초점을 맞춘 책!)


'세렌디피티'란 무엇인가? 영미권에서 널리 쓰이는 단어이지만, 우리말로는 번역하기 쉽지 않다. 의미 설명을 굳이 하자면 '우연히' 찾아온 작은 '행운' 이라고 해야할까. 이 책은 그 세렌디피티가 과연 '우연히' 찾아오기만 할 것인가, 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자기계발서나 위인전, 평전 따위를 읽어보았다면, 어떤 우연한 기회에 커다란 과학적 발견이나 금전적 이득을 얻었다는 내용을 종종 봤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처럼 과학하는 사람들에게는 닳고 닳은 예시 중 하나인 페니실린의 발견이나, 3M의 포스트잇 개발 비화같은 것들. 이런 것들이 '세렌디피티'가 작용한 예시가 될것이다. 그런데 그 일화들은 흥미롭게 들린다는 것 외에, 난관에 봉착해도 창의적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상황을 타개하라는 것 외에는 특별히 어떤 메시지가 있을까? 사실 이 일화들과 완전히 같은 상황은 나에게는 생기지 않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 차원에서는 '세렌디피티'가 왔을 때 포착해서 행운을 얻을 수 있는 생활습관이나 태도를 기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고, 집단적 차원에서는 개개인이 '세렌디피티'를 잡을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고, 나아가 집단에 이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라는 것이 이 책의 골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내가 주의깊게 보았던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장의 제목인 경우도 있고 절의 제목인 경우도 있다) 


- 성공은 계획된 것이라는 착각 

- 치밀한 목표보다 야심찬 목표에 세렌디피티가 있다 

- 다양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라 

- 좋은 에너지를 유지하면 일어나는 일들 

- 세렌디피티가 넘쳐흐르는 환경은 따로 있다

- 아웃라이어들의 행운과 성공의 비밀 


나정도면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걸까? 어떤 기준에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 맞고, 다른 기준에서는 전혀 아니다. 어쨌든, 나는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매 순간 힘껏 살아왔고, 항상 주변을 잘 살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려고 애썼다. 어떤 때에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세세하게 작은 목표로 액션플랜을 만들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혼란의 중심에서 멀고 추상적인 목표만을 가지고 나아갔다. 혹시 내가 지금 내 인생에 있었던 성공 하나를 바탕으로 '성공스토리'를 만들면 어떤 모양새일까? 


​많은 경우, '나는 이런 것을 하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서 이것 저것 그것을 했다' 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성공' 스토리니까, 그래야 폼나보이니까. 특히, 내가 만약 어떤 연구성과를 이야기하면서 재단에 연구비를 위한 제안서를 쓴다면, 그렇게 써야 내 제안서가 더 설득력있어 보이니까. 


같은 이유로, 작년에 갑자기 판데믹 때문에 연구실에 못가게 된 사람들이 많아서 저널마다 리뷰논문이 많이 나왔다. 나중에 2020년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과연 

'아. 판데믹이어서 랩에 못하게 되서 울며 겨자먹기로 리뷰논문을 썼어' 라고 할까, 아니면 

'아. 안그래도 ##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판데믹이 터져서 시간을 갖고 문헌조사를 하고 리뷰논문을 썼어' 라고 할까? 

(어떤 사람은 '그 분야 앞으로 잘 될 것 같아서 그 때 리뷰논문을 쓴거야' 라고, 판데믹의 ㅍ자도 꺼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나가는 사람들이나 위인들의 인생을 따라가려 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이미 한 '위대한' 일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런 식으로 포장되어있을 확률이 높다. 그들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들의 사정을 속속 알기 어려우니까. 오히려 롤모델은 본인과 가까이 있지만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로 잡는 게 좋다. 


똑같이 어려움이 닥쳐도 어려움 속에서 작은 가능성이나 행운의 기회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크게 불운한 상황이 아닌데도 본인의 처지가 불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가능성이나 행운의 기회를 발견하는 사람들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상황을 본다. 그리고 그들은 주변에 좋은 에너지를 전파한다. 이런, 일견 추상적으로 보이는 생활의 태도를 통해, 그들은 작은 행운을 자주 발견하고, 그 행운들이 쌓여서 그들은 점점 더 발전하고 나아진다. 


​구체적인 행동 지침들이 있었다면 아마도 더 명쾌한 도서가 되었을테다. 그렇지만 저자가 책에서 밝히고 있다시피, 아직 연구가 많이 되지 않았고, 이 책은 연구 내용들에 기반해서 서술된 책이다. 시간이 없고 책을 다 읽고 싶지 않다면 책 말미의 '나오며 - 당신만의 세렌디피티 코드를 완성하라' 만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장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읽고 나니 앞서 나왔던 내용들에서 좀 아리송했던 부분들이 퍼즐 맞춰지듯 들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특정한 사상이나 종교에 빠져 허우적대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이 책은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세렌디피티 사고방식과 세렌디피티 영역을 개발하고 관계와 의미, 소속감을 존재의 핵심에 두길 바란다.


결국, 이 책은 '행운' 을 가장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논하는 책이었다. (다른 책들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놨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삶의 자세를 생각할 때에,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서 '좋은' 에너지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건실한 사람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세렌디피티 코드』

 크리스티안 부슈 지음, 서명진 옮김

 비즈니스북스

 2021.04. 






* 전자책으로 읽어서 기기에 따라 쪽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밑줄긋기'에는 쪽수를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문제를 풀 뜻밖의 해결책에 가능성을 열어두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게 된다.

예기치 않은 일에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은 행운과 세렌디피티의 핵심 요소다. 마틴과 같은 사람은 여러 이유 덕분에 늘 운이 좋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연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이 능력 덕분에 예기치 못한 우연을 거머쥘 확률이 더 높다. 이들에게 우연이 더 자주 일어나서가 아니다. 세렌디피티를 기대하기 시작하면 세렌디피티의 순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들과 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더 운이 좋아지는 비결이다.

당신은 무엇을 예상하는가? 평소와 다름없는 만찬회를 예상하는가? 지루한 사람 옆에 앉아서 따분한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눈에 안 띄게 빨리 나갈 방법을 궁리 중일 것 같은가? 이렇게 예상했다면, 당신은 딱 그정도의 경험만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에서 세렌디피티의 흔적을 지워버리면 다시 세렌디피티가 일어나도 알아채지 못한다. 세렌디피티란 단독으로 벌어지는 특이한 사건이 아닌 일련의 과정이자 오랜 잠복기를 거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합하고자 처음부터 모든 일을 ‘계획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의 한 CEO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저 운이라고 말하거나 사실 계획되지 않은 우연이었다고 말하면 투자자나 직원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능력이 부족해 보이고 의존적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그와 동료들은 "이것이 바로 회사의 목표였습니다. 저희는 늘 이런 일을 계획하고 있었죠." 와 같은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왜 그랬을까? "이런 이야기는 잘 팔리니까요. 투자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죠. 그래서 ‘공식적인 이야기‘를 짜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한다. 많은 전환점이 있었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닌 ‘계획된‘ 이야기를 더 편하게 여긴다.

와이즈먼은 실험을 통해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미신을 따르거나 점쟁이를 찾아가는 등 불운을 바꾸는 데 효과 없는 방법에 집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주도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보통의 학생은 대개 확실한 로드맵과 정해진 목표를 가진다. 어떻게 해야할 지 정확히 알고 있기에 결과물이 확실하다. 하지만 특출한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고자 한다. (...) 함께 작업을 한 학생 대부분이 스스로 이런 애매한 상태를 약점으로 여기지만 진정한 창의력과 독창성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 유쾌하지도, 편하지도 않은 상태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성과에 이르는 잠재적 시발점이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나 영감이 필요할 때 좋은 에너지를 내는 사람 곁에 있으면서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 적 없는가? 혹은 계속 하품만 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서 더 힘들어진 적은 없는가? 에너지는 멈춰있지 않고 늘 흐른다는 점을 기억하라.

조직에서 실직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제시간에 회의에 참석하려는 사람으로 가득한 사람에 둘러싸여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세렌디피티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빈곤한 상황에서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훨씬 더 커지고 의사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해야 상대방이 안정감을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방향감과 자신감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다. 누구나 합리적인 절차로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진실을 마주할 때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나치게 특출나 보이는 사람을 너무 우러러볼 필요 없다. 그들은 대개 초기 운이 좋고 뛰어난 성과 역시 임의적인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유리한 시작점에서 출발해 불균형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이다.

비범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을 뛰어넘는 아웃라이어다. 그들을 성공적으로 따라 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성공에 ‘우연한 기회‘나 ‘특권‘이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사실은 이런 아웃라이어보다는 ‘2인자‘에게서 배울 점이 가장 많다. 비범한 성과는 비범한 운이 작용해야 하므로 뛰어난 성과가 나온 후에는 보통 평범한 성과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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