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도 사실 학부때 재미로 했던 토맛저녁모임에서 다룬 도서 중 하나였다. 그 때 처음 읽어보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 2018년에 문득 생각나서 전자책을 사서 다시 읽었다. 덕분에 최소한 세 번은 읽었다. 2010년에, 2018년에, 2020년에. 처음에 읽었을 때에는, 이 얇은 책 한권을 요약정리하면 <이것은 내 새로운 감옥 설계안이고, 나를 간수로 임명해 주십시오> 인 것이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이 번역서는 영국인인 벤담이 영어로 장황하게 서술해둔 것의 축약본인 프랑스어 판본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벤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만 축약되어있어서 더 혼란스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2018년에는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으며 다시 내용을 곱씹어보게 되었으므로, 감옥시설, 병원시설, 학교시설의 감시자적인 측면에 대해서만 고민을 해 보았다. 최근 다시 읽으면서는 건축 설계 측면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고찰,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려 하는 노력과 체제의 설계,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당대 사회의 인식 등을 생각해보았다. 당연하게도, 이런 것들에 초점을 맞추며 책을 읽다보니 <파놉티콘>이 왜 고전 도서의 목록에 자주 등장하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어갈 때 즈음에는, 이 책을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인문대학의 텀페이퍼 작성 과제 정도 의 지식과 노력이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더 깊이 논문을 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관련 지식이 부족하고, 전공자도 아니지만 벤담이 서술한 것과 책 뒤에 붙어던 해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

해제에 서술된 것처럼, 이 짧고도 강박증적인 책을 이해하는 데에는 사람들의 인식이 지난 200여년 동안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가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감금 자체가 처벌인 오늘날과 달리 근대 이전의 감옥은 재판과 형벌을 받기 위한 대기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18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자본주의와 합리주의가 본격화되는 전환기 속에서 상황은 달라졌다. 변화된 사회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문제들은 기존의 사회 정의나 처벌 체계를 흔들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질서 체계가 필요하도록 했다. 

("해제 - 파놉티콘과 근대 유토피아") 


현대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과거가 어땠는지 잘 알기가 힘들다. 특히, 18세기 후반의 유럽사회나 미국사회는 나로서는 미지의 세상이다. 학생들은 역사를 파편적으로 배우지만 실제로 역사는 모든 측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데다가 어떤 사건이 수면위로 올라올 때에는 그 전에 그 사건을 유발시킨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이유들이 산재해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유럽 사회에서 "형사처벌"에 관한 시각은 어떤 변화과정을 거쳤고, 왜 그렇게 변화해야만 했을까? 


근대 이전의 감옥, 특히 앙시엥 레짐 (Ancien Regime;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 시기) 시기에 감옥은 처벌을 하기 위한 수감 시설이 아니었다. 단지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거나 형벌을 받기 위해 일시적으로 대기하는 장소였다. 그래서 주로 빛이 들지 않는 지하에 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감금시설에 수용하는 처벌이 생겨났다.


새로 등장한 감옥은 과거의 감옥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구호 시설과 관계된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동안 수감되었던 장 발장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처럼 산업사회에서는 먹을 것을 훔치는 등의 경범죄는 예전과 달리 묵인되지 않았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정신적 문제를 지닌 사람, 즉 올바른 정신을 갖도록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방랑자나 거지 등을 수감했던 구호 시설은 점차 그들에게 자본주의의 질서를 교육하는 장소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고립된 곳에서 그들이 근대적 삶을 익히는 것, 특히 노동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당시 사회가 바라던 것이었다.


나의 (부족한) 경험을 곱씹어 보면 서양의 고대/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 등에서 어떤 죄인도 감금형을 받지는 않는다. 그렇게 보면 조선시대의 유배는 특이한 방식의 감금형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서양에서도 귀족들은 감금형을 받았을 지 모르지만). 어쨌든, 근대 산업사회로 접어들며, 서양 사회에서는 공리주의, 박애주의 등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때에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익혀야 했고, 그 와중에 범죄자들은 그 중에서도 익힐 것이 더 많은 사람들로 인식된 듯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도소는 <교화>가 일어나는 가장 극단적인 현장이었고, 막 태동하기 시작했던 공리주의와 박애주의를 기초로 한 이론과 가정들을 실험해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던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벤담은 범죄자들을 교화하는 방식, 수감자들의 경제적 이득을 위한 노동과 신체적 건강 유지를 위한 육체활동, 수감자들을 감시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 논한다. 그 와중에, <범죄 자체는 부끄러움에 노출되어야 하지만, 수감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라든가, <죄 없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조건보다 더 좋은 상황을 죄인에게 제공한다면 불행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수감 처벌이 오히려 유혹이 될 것이며, 적어도 죄를 범하고자 하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야 하는 처벌의 특징을 잃게 된다> 라는 식으로 근본적인 원칙에 대한 세심한 논의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최소한의 건강 유지를 위한 식단이나 신체활동 등도 언급되는데, 이것은 "감금은 감금으로써 처벌이기 때문에, 수감자가 감옥 밖에서 살았을 경우의 기대수명이 감옥 내에서의 수명보다 (의도적으로) 짧게 만드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중세/르네상스 시대와 합리성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현대 사회의 체계를 잇는 공리주의 (와 박애주의)의 영향으로 보인다.


특히, <다수의 죄인들은 과거에는 그다지 큰 범죄로 취급되지 않던 행위를 저질렀으나 새로운 처벌 제도에서 처벌 대상이 된 사람들이었기에, 이 설계에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교화의 대상으로 볼 수 있었고, 그것은 박애주의와 연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화>라는 개념을 수감자들에게 적용함으로써, 이전 시대에서부터 이어진 종교적인 죄를 저지른 죄인과 감옥에 수감된 사람들을 개념적으로 분리하게 된다. 또한, 경범죄자들을 <교화>하는 것으로부터 <아직 사회 체계에 익숙지 않은 어린 사람들>을 <교육>하는 것으로 그 개념을 확장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감옥의 관리에 있어서도 새로운 개념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데, 아마도 "감금"이 "처벌"으로 간주되기 시작하면서 한 명의 수감자가 감옥에 머무르는 평균 시간이 길어졌을 것이고, 이에 따라 관리 주체 (정부)의 지출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교화"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노동"을 경험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고, 한 명의 간수가 여러 명의 수감자를 감시하는 효율적인 감시 방법을 찾았던 것처럼 그 "꼭 필요한 경험과 교육으로서의 노동"을 효율적인 관리 방식을 통해 이루어내려고 했다. 궁극적으로 이는 경제적 이윤을 얻어내어 호혜적이고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귀결된다. 벤담이 제안하는 방식은,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단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근거들은 대부분 상당히 합리적이다.


수감자들이 석방된 후에 어떤 선택지를 줄 것인지에 관한 논의도 인상적이었다. 석방된 수감자가 사회에 다시금 적응하게 도울 수 있는 방식들을 제안하고, 그 모든 것이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시 불행에 빠지게 하거나 범죄에 노출시키는 것>을 피하고, <법이 정한 기간을 넘어서 처벌 기간을 연장시키는 것>도 피하기 위해서 규제의 정도가 완화되고 일정량의 자유가 보장되는 또하나의 보조적인 파놉티콘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이 보조 파놉티콘 자체에는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이 보조 파놉티콘을 제안하는 데에 언급된 근거들에는 동의한다.


벤담은 수십년 간 이 설계를 위해 애썼고, 나중에는 사비를 털어 실제 시설을 지으려고 애쓰기 까지 했으나, 이 설계가 실제 건물에 적용된 적은 없다고 한다. 당대 현실 (한 시설에 수용해야하는 수감자의 수가 너무 많았다)에 비했을 때 효율적인 디자인이 나오기 힘들었고, 결국엔 여러 가지 다른 건축설계안이 합쳐진 것이 실제로 적용되었던 것 같다.


나도 10년 전에는 성공적이지도 않았던 감옥 디자인에 왜 이렇게까지 방점이 크게 찍히는 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 "설계"는 건축사에 끼친 영향이 큰 것도 사실인 것 같으나 (관련 전공자가 설명해주면 좋겠다!), 건축과 관련없는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이 설계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사상"과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나아가, 격변하는 사회상에서 벤담이 평생을 던져 고찰해낸 논문은, 18세기 벤담의 파놉티콘과 20세기 조지오웰의 '빅브라더'에 대한 고찰 등, 변화하는 시대에 끊임없이 담론을 생산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