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깔끔한 문체에,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고, 학자로서의 정신이 느껴지는 옹골찬 책이었다. 어쩌다 처음 접하게 되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 장의 제목 ('여성의 몸이 사라진 과학')을 보고 구매를 결정했다.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이 전개될 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저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으므로- 처음 몇 개의 장 제목을 보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고, 간혹은 울 뻔했다. 머릿말에서도 몇몇 구절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이 책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학자의 그 보이지 않는 노력에 빚지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그 논의가 왜, 지금, 여기 필요한 지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연구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에게 감사하다는 말 전합니다."

"전력을 다해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어, 저도 긴장을 놓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만나는 그들에게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제게는 계속 공부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학자의 교과서와 같은 표현이다. 이런 문장은 본인의 반듯한 성품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표현이라 생각했다. 진짜 학자, 가짜 학자를 가르는 것이 정당한 일은 아닐지라도, 학자다운 사람이란 이런거구나, 정화되는 기분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학자란 일상생활에 잘 등장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이미 10년 넘게 대학에서 학생 신분으로 있는 학생 입장에서, 학자라 자신하는 사람들을 보며 지내왔으므로 학자다움에 집중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사람이 쓴 글은 단순히 지식이 되었든, 지식 외에 다른 부분이 되었든 배울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학계에는 정말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종종 혼란에 빠진다.


 이 책에서 다루는 꼭지들은 지금껏 살면서 어렴풋이 생각해보기만 했거나, 혹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담론들이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건강. 계급 불평등과 재화의 불평등이 초래하는 건강 불평등. 특히 대부분의 주제에 관해서는 한국에서 지낼 때는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들이었다. 아플 때는 병원에 갔고, 아프면 집에서 쉴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 오고 나서는 병원에 가기도 망설여지고, 보험이 될 지 안될지도 모르겠고, 일단은 있는 약을 먹고 버텨보게 되었다. 소외되는 계층 중 하나가 '외국인' 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것은 소외계층 튜토리얼같은 느낌이다. (일반적인 '외국인'이라기 보다는 저소득 계층의 외국인 - 언어 장벽이 있고 금전적으로 풍족하지 않으며 종종 신분 문제까지 겹치기도 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좀 더 '소외되는 계층으로서의 외국인'에 가까울 테니.) 내가 미국에 나오지 않았으면, "주어진 것"으로 생각했던 나와 관련한 모든 조건들이 송두리째 변화하는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차별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만약은 없다" (남궁인 저) 에서 외국이 노동자가 응급실에 실려오던 에피소드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러한 제도적 차별을 인지하고 질문을 던지는 일은 간단치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조건을 주어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도가 사람을 모욕할 때" 그것을 모욕이라고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난 장소에 따라 삶을 시작하는 신체적 조건과 사망률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명백한 제도적 차별입니다. 우리가 쉽게 보이지 않는 사회적 폭력에 촉각을 세우고 질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군데군데 저자의 통찰력 있는 질문과 그에 대한 고민을 공유해주었던 부분들이다. 이 책은 저자가 머릿말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저자의 강의를 모은 자료이다. 군데군데 녹아있는 저자의 통찰은 그 수업이 얼마나 알찬 수업이었는가를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분명히 대학원 수업이었거나, 학부생들의 교양 혹은 전공 선택 과목이었을 텐데, 교과서가 없는 수업이 이렇게 까지 알차게 구성되기 쉽지 않다. 바람직한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오롯이 보여준다.


"그럼, 우리는 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제게는 오랫동안 그 질문이 큰 숙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시를 만났습니다. 1963년 김수영이 발표한 <거대한 뿌리>의 세 번째 연입니다. ... 제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승리한 강자의 시간만 역사일 수 없다고, 지배받고 비참하게 통과한 시간도 함께 역사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더러운 진창"인 역사에 뿌리내린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역사 속에 거대한 뿌리를 박고 그 위에 서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 역사를 미화하지도 폄하하지도 않으며 그 뿌리를 직시할 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과 함께 우리 길을 열 수 있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600년 전 중세 유럽에서 유행하던 흑사병에 대해 왜 공부할까요? ... 앞으로도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설사 원인을 알더라도 당장은 치료법을 가지고 있지 못한 치명적인 전염병이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그 무지의 공포 속에서 계속해서 선택을 해야 할 겁니다. 그 때 흑사병과 제 2의 흑사병이라고 불리며 등장했던 수많은 전염병 유행의 경험을 기억하며 우리가 조금 더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실은, 내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아주 자주 생각하게 될 지는 미지수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나는 나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이런 문제들은 부차적인 문제들로 치부 되겠지만, 내 인생에서 이런 것들을 만난 작은 변곡점 하나하나가 모여 나의 사고 체계에 변화를 주고, 더 성숙한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나도 계속해서 공부하고 고민 해보고 싶다.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절치부심하여 계속 하고자 하는 학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었고, 내가 계속해서 김승섭교수님의 연구를 응원하고 싶은 이유이다.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학생 입장에서, 또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맹목적으로 학문의 세계에 머물기 보다는 세상과 소통하는 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다음의 내용이 나의 심금을 울렸다.


"박사과정 학생 때, 학위를 받고 나면 어떤 주제를 연구할 지 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HIV 감염을 다루는 전문가가 되겠다고, 또 다른 친구는 인종차별과 건강에 대해 계속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제게 그 질문은 '당신은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은가?'라고 묻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망설임 끝에 "한국에서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사람의 수는 적고, 필요한 연구는 너무나 많다. 이곳에서 배운 방법론으로 한국사회의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는 깊이 동의했다.


"한국어로 연구 논문을 출판하는 것은 오늘날 대학 연구업적 평가에서 가장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라에서 한국어로 쓰인 논문이 가장 낮은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어 학술지는 영어학술지라는 '메이저리그'에 밀린 '마이너리그'가 됩니다. ...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학자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까지도 해외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결과를 영어로 작상해 발표하고 외국 학자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 내용이 한국 사회에서 공유되지 않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없게 되고, 그래서 검토하고 논쟁하고 또 활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연구결과를 영어와 한국어로 모두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두 가지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영어로 출판하지만 원할 경우 부록으로 한국어판을 함께 출판해주는 <<한국역학회지>>에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한국어판으로 논문 심사를 받고 출판이 확정된 이후, 영어 초벌번역을 학술지에서 도와주었지만, 저희 연구팀은 모든 영어 문장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지만, 연구 실적은 한 편으로만 계산됩니다. 또 하나는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진행하며 배우고 고민했던 내용을 묶어, 연구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과 <오롯한 당신>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입니다. 기존의 출판 논문을 모은 게 아니라 글을 새로 써서 책을 출판하는 작업이었기에 논문을 쓰는 일보다 몇 배의 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행본 작업은 대학 순위 평가에 항목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도 학부 시절부터 깊이 고민하던 일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로 논문을 내면서 낭비되는 자원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점이다. 가장 큰 손해는 (나는 공학 계열을 공부하고 있어 관련 분야의 사정만 어설프게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한 연구 결과를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유롭게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저널 측에서 논문을 유료 공개를 주로 하는 것이 제 1의 이유이겠으나 -그래서 또 open access 관련한 담론이 나오고 있으나- 논문이 무료 공개된다고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논문을 읽는 데에 크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로 문장 단위의 해석은 어렵지 않겠으나, 전공 지식이 난무하는 논문을 통째로 읽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 (전공자인 대학원생도 처음에는 영어 논문 읽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국문으로 쓰인 논문을 읽으면 전혀 다른 분야의 논문이라도 어느 정도 내용 파악이 된다.) 저자 입장에서도 논문을 써보면 "의미가 통하는 문장을 쓰는 것" 외에도 "영어 식의 논리 전개"법을 배우는 데 상당한 시간이 든다. 전공자인 대학원생 입장에서도 그런 과학 외의 것들을 익히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고 어쨌든 간에 어른이 되어 언어적인 것을 배우다 보니 영원히 원어민들처럼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라는 식의 좌절감이 시시각각으로 몰려온다.


 가장 시급한 것은 한국 사회나 문화를 연구하는 분야에서 출판되는 논문들이 한국어 사용자들이 읽기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가장 먼저이겠다. 그러나 그 이후로 차차 모든 분야 학문 출판이 한국어로 더 많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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