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의식주의 한 구성요소로서 인간 생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내가 어디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 와서 집을 구할 때. 그 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중학교때까지 살았고, 고등학교 부터 유학나오기 전까지는 기숙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크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학 시절 한 가지 고려했던 것은 어떤 기숙사동이 기숙사비가 싸고 비싼가였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는 그 생각이 크게 달라졌는데, 어떤 집에 사는지에 따라 생활 패턴과 심리적인 안정 등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기준 여러 개를 늘어놓고 집을 고르기 시작했던 기억이 났다.
이런것들을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거주 공간 보다는 건축 전부를 아우르는 내용이였다. 내가 가장 주의깊게 보았던 것은 학교 건물 이야기였는데, 실제로 공립학교들은 모두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감옥 건물처럼 생겼다. 이 책을 읽으며 같이 읽었던 책이 '파놉티콘'이어서 더더욱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외에도 주변에 있는 소소한 건축물과 건축물의 구성요소 (단상, 계단, 광장 등) 을 보며 깨닫는 바가 많았다. 그 중에 하나가, 로마와 몽골 제국의 건축과 지속 햇수를 논하는 부분이었다.
"통일된 디자인의 대형 벽돌 건축물들은 로마의 상징이 되어 어느 곳에서나 로마제국의 권력을 느끼게 하였다."
건축이 로마제국의 위력을 광고하는 좋은 매개체가 되었고, 문화를 전파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그에 반해 몽골 제국은 빠른 속도로 모든 곳을 점령하기는 했으나,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므로 원주민들에게 전쟁 이상의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고대 건축물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여기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점은 과시를 하려면 쓸데없는 데 돈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 마찬가지로 피라미드 같은 건축도 쓸모가 없어서 과시가 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한 돌무더기를 만드는 데 20년 넘게 국가의 모든 재원을 낭비했기 때문에 과시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피라미드가 꼭 필요한 건축물이었다면 과시가 되지 않는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고인돌은 특별한 기능이 없다. 그래서 고인돌이 과시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시형 건축물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가 제안한 '위치에너지' 개념도 흥미로웠다. 어쩌면 좀 추상적일 수도 있는 개념을 수치로 나타내려는 저자의 기회가 엿보이는 시도였다.
그 외에도 건축가의 시점에서 본 도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저자가 인용해온 부분은 사실 경제학자의 주장이었지만)
"하지만 하버드대학 경제학과의 에드워드 글레이지 교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라고 말한다. 다양한 사람이 도시에 모여들면서 생각의 교류가 많아졌고 그로 인한 시너지 효과로 혁신적인 발명과 발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건축가가 세상을 보는 방법을 엿볼 수 있어 재미있었고, 나와는 매우 다른 접근이라 신선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건축가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개개의 시도들이 흥미로웠고, 글 쓴이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아쉬운 점이 두가지 있었는데, 첫번째로는, 전체적인 내용이 '건축 업계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설/사실들'을 기반으로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참고문헌이 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이 학술서라기 보다는 대중서라 그래서 아마도 참고문헌을 굳이 더 많이 넣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가끔씩 논리 전개가 치밀하지 않은 구석이 보이는게 아쉬웠다. 경수필처럼 완전히 가벼운 신변잡기적 주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면서 치밀한 전개가 돋보이는 책도 아니라서 조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다. 친구들과 가볍게 토론한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괜찮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