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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SF를 쓰는가 -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에서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양미래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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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은 우리 삶에서 운명으로 등장한다.」

칼 구스타프 융

《시녀 이야기》를 집필할 때 따랐던 규칙은 간단했다. 역사상 인간이 언젠가 어딘가에서 이미 해본 적이 없는 일이나, 인간이 그런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이미 동원해 보지 않은 수단은 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시체 매달기조차 선례를 바탕으로 삽입한 부분이다. 시체 매달기는 일찍이 영국에서 자행된 적 있고, 집단 돌팔매 처형은 아직도 몇몇 국가에서 행해진다. 그보다 더 먼 과거를 들여다보면, 마이나데스 신들이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던 도중 광기에 사로잡힌 나머지 사람들을 맨손으로 갈가리 찢어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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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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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 “상상해보렴. 262년이야. 그게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란다. 넌 이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거야.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야. 네가 알게 될, 네가 사랑할, 네가 빚어낼 누군가의 시간이기도 하고. 너의 맨손으로 262년을 만질 수 있어. 할머니가 네게 가르친 것을 너는 손녀에게 가르칠 거야. 2186년의 미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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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시경 강의 1 : 주남·소남 고전완독 시리즈 1
우응순 강의, 김영죽 정리 / 북튜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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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안연」(顔淵) 편을 보면,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군주는 ‘바람’이고, 백성들은 ‘풀’이라고 비유한 거지요. ‘군주가 정치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백성들은 영향을 받고 그런 것을 노래로 부른다.’ 이런 뜻이 ‘바람 풍’ 자에 들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를 ‘풍요’(風謠), ‘민요’(民謠)라고도 하는데, 동양에서는 모든 노래가 정치상황과 연결되어 있어요. 나라가 편안하면 백성들의 노래도 편안해요. 나라가 위태해지면 노래도 심란합니다. 망한 나라의 노래는 슬프고 애달파요. 『시경』을 읽다 보면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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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등급 영화
김선향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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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불꽃 속으로 탐스러운 긴 머리를 담그고 기억을 용접하는 시인. 그 따사로운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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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등급 영화
김선향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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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회초리, 바깥 바람은 맵다. 


내 좁은 방엔 책상 대신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다. 방구석에서 혼자 잘 놀아보려고, 최근에 중고 피아노를 들여놓았다. 피아노포르테~ 건반 위로 모처럼 시집 한 권을 펼쳐본다. P로부터 F까지, 여리고 거친 감성의 손가락들이 걸어가는 시선이 악보다. 장르는 F등급 영화음악.


시인의 집에도 피아노가 있는 걸까? 시집 속의 여자는 그랜드피아노를 치지도 않으면서 악어처럼 콱 물고 있다. '끼니를 거르더라도 내다 팔 수는 없'는 피아노는 '그녀의 마지막 허영'이라고 한다. 아찔하다. 이건 명백한 피아노 학대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악기는 서럽다. 꿈결에 그녀의 혼곤한 불행으로 빨려들까봐 두렵다.


나 역시 무서워서, 방 바깥으로 작은 소리도 차마 내보내지 못한다. 내벽은 몹시 얇고, 바깥 바람은 맵다. 방음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원룸에서 헤드폰을 꽂은 채 오롯이 나만 듣는 전자피아노의 음색은 매정하게도 저렴한 축에 든다. 그래도 나는 이 자그마한 방에서 책상을 빼고 피아노를 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밤의 음계를 하나 둘 누를 때, 검붉은 줄무늬가 여러 갈래로 바스라진다. 밤이 으슥해지면 시인의 목소리도 여자들의 아우성으로, 보랏빛 귀곡성으로 변한다. 쿠마리 여신이 되어 세속의 무지개를 건넌다. 거미가 새된 손톱으로 실연의 바닥을 찍고 일어난다. 이윽고 선로에 오른 굴다리 여자는 ‘한밤처럼 줄어들고, 지렁이처럼 납작해’진다. 


이토록 혹독한 겨울날, 실비아 플라스가 죽었다. 바깥 바람은 여전히 차고 맵다. 바깥으로 소리를 내지 못하는 나의 피아노에게 그녀의 시를 가만히 읊조리듯 읽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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